설레지도, 외롭지도 않은 설…대세가 된 1인 가구의 '나혼자 쇤다'
[편집자주] 1인 가구 750만 시대, 또다시 '명절'이다. 설렘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다. 대세가 된 1인 가구들은 이미 '자기 스타일대로' 명절을 쇠는 방식을 찾았다. 혼자 사는 취준생, 직장인, 어르신, 장애인, 외국인들의 '2024년 설 연휴'를 기록한다.
민족 대명절 설이 다가왔지만 고향을 찾지 않고 홀로 설을 쇠는 '혼설족'이 대세로 자리잡는다. 북적이는 명절 대신 밀린 잠을 청하거나 미뤄왔던 취미생활을 하는 등 각자의 방식대로 명절을 보낸다.
젊은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홀로 명절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어르신, 장애인, 외국인들도 적잖다. 조부모부터 손주까지 3대 이상의 가족이 모이던 모습은 교과서에 나올법한 옛날일이다. 젊은 세대 뿐 아니라 상당수의 어르신들에게도 '명절은 곧 쉬는 날'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명절을 쇠는 모습에도 변화가 생긴 결과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인 가구는 750만2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34.5%를 차지했다. 1인 가구는 2015년 520만3000가구에서 꾸준히 늘어 2021년 처음으로 700만을 돌파했다. 2022년에는 가구 수와 비중 모두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또 다른 직장인 박모씨(33)는 "차멀미 때문에 고속도로 정체를 견디지 못해 홀로 명절을 보낸 적이 많다"며 "연휴 기간 집 안 대청소도 하고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해보고 싶었던 베이킹도 도전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가족과 만나지 않더라도 명절 음식을 직접 하거나 가까운 지인들과 모여 명절 분위기를 느끼려는 이들도 많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씨(29)는 떡국을 끓이기 위해 연휴 직전 마트에서 장을 봤다.
김씨는 "일이 있어 연휴에 본가에 내려가진 못하지만 명절이니만큼 음식만은 잘 챙겨 먹기로 했다"며 "떡국을 끓여보는 것은 처음인데 유튜브로 만드는 법을 검색해 고명까지 올려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지 못한 이들에게 고향의 친척들 관심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가뜩이나 취업 준비로 스트레스가 큰데 어른들의 잔소리로 연휴를 채우긴 싫은 마음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자발적인 '혼설족'을 택하는 배경이다.
강원도에서 혼자 사는 대학원생 이모씨(28)는 자취방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설 명절을 보낼 예정이다. 이씨는 "아직 불안정한 위치이다 보니 고향에 가면 친척들이 미래 계획에 관해 묻는데 진이 다 빠진다"며 "취업하려면 졸업해야 하고 졸업하려면 논문 작성을 하루빨리 끝내야 하니 일찍부터 논문을 고치며 설 연휴를 보내려고 한다"고 했다.
올해 공무원 시험 3수를 결심한 신모씨(28)도 고향 방문 계획이 없다. 신씨는 "작년부터 명절을 혼자 보내기 시작했다"며 "재작년에 고향에 갔다가 눈치를 많이 봤고 자취방에 돌아와서도 마음가짐이 많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처지가 비슷한 이들끼리 모이기도 한다. 3년간 일하다 지난해 퇴사해 재취업을 준비하는 이모씨(29)는 "상반기 공채를 준비하려면 미리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한다"며 "같은 업계 취업을 준비하는 스터디원들과 카페에서 모일 것"이라고 했다.
멕시코에서 온 로살린다 리베라씨(26)는 이번 설에 박물관 투어를 할 예정이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로살린다씨는 관련 유물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지만 여유가 없어 박물관을 찾지 못했다. 마침 설 연휴 기간 국립현대미술관과 경복궁, 덕수궁 등 고궁이 무료로 개방된다.
로살린다씨는 "이번 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박물관 투어를 다닐 것"이라며 " 제기차기와 윷놀이도 해보고 떡국도 먹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학을 전공했지만 한국에서 보내는 설날은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연인의 '고향집'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있다. 페루 출신의 자스민 나자로씨(28)는 한국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있다. 2019년 입국한 자스민씨에게는 5년간 사귄 한국인 남자친구가 있다.
자스민씨는 "매년 남자친구 할아버지 댁인 경북 영덕에 갔지만 올해는 시간 인천에 있는 남자친구 외할아버지댁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자스민씨는 남자친구와 친척들에게 세배하고 덕담을 나누며 세뱃돈을 받을 예정이다.
조씨는 "연휴 기간에는 활동지원사가 없어서 미리미리 알아둬야 한다"며 "예전에는 편의점에서 누룽지를 사 먹거나 무작정 굶었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 요리를 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불이 날 수 있어 안 하기로 했다"며 "이번에는 배달을 이용하고 식당도 가려고 미리 사전 조사를 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미리 준비해도 걱정되는 건 한둘이 아니다. 조씨는 "혼자 사는 장애인은 집에 사고가 나도 발 빠르게 도와줄 사람이 없다"며 "그게 지금 가장 큰 걱정"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달 새벽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당시 늦은 밤이라 도와줄 사람이 없어 애를 먹었다.
119에 신고하면 병원 이송은 해주지만 그밖에 진료, 행정 업무 등은 홀로 처리해야 해 조씨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그는 "몸도 아픈데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서럽고 울적하곤 했다"며 "이번 명절은 제발 아프지 않고 넘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도 또다시 명절이 찾아왔다. 아내와 사별한 뒤 서울 금천구에서 혼자 사는 김모씨(84)는 "어차피 혼자이기 때문에 설이라고 특별히 다를 건 없다"며 "아들 하나를 일본으로 유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켜놨더니 연락이 없다. 혼자 사는 게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에서 혼자 사는 어르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늘고 있다. 2017년 19%이던 독거 어르신 비율은 지난해 21.1%까지 늘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독거 어르신 이모씨(68·여)는 벌써 혼자 산지 10년이 넘었다. 전라도 신안이 고향인 이씨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서울에 있는 친척을 따라 상경했다. 이후 모종의 일로 사이가 틀어지고 지금까지 혼자 살게 됐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씨는 매달 80만원이 조금 안 되는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이씨는 "경로당에서 점당 10원씩 하는 고스톱을 치는 것이 하루일과"라며 "설날은 혼자 보내기 싫어 교회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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