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전에 그가 있었다...핸디캡 딛고 '불멸의 캐릭터' 까치 창조

김성휘 기자 2024. 2. 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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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AI가 그리는 K-웹툰의 미래]②'공포의 외인구단' 히트, 모델 등 대중문화 스타로
[편집자주]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K-웹툰이 AI(인공지능)라는 새로운 전환점을 만났다. 일부 반복작업을 AI가 대체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작가의 화풍을 AI에 학습시키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AI는 보조수단을 넘어 K-웹툰의 미래를 새로 그리는 창조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자세히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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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이현세 작가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까치, 엄지, 마동탁, 오혜성. 한국 만화사에 빠질 수 없는 주인공들이다. 모두 이현세 작가(69)의 붓과 연필 끝에서 탄생한 캐릭터다.

이 작가는 자타공인 우리나라 대표 만화가. 1970년대까지 어린이·청소년 대상 명랑만화 위주이던 국내 만화계는 1980년대 들어 만화방(대본소)이 퍼지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성인들도 볼 수 있는, 극적인 전개를 갖춘 만화가 등장한 게 결정적 요인이다.

그 기폭제가 '공포의 외인구단' 등을 앞세운 이현세의 등장이다. 그런 이 작가가 화가에겐 치명적일 수 있는 '색약'이란 점은 꽤 알려진 사실이다. 분단시대 아픈 가족사를 지닌 점도 그의 가치관과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불멸의 캐릭터 창조…표현의 자유 소송 등 부침 겪어
이현세 작가는 1954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일찍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사실 큰아버지였단 사실을 어른이 돼서야 알았다. 아버지 삼형제 중 둘째는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 갔는데 한국전쟁때 홀연히 나타났다. 북한 인민군 장교가 돼 있었다. 이 일로 큰아버지가 국군 헌병대에 끌려간 후 행방불명이 됐다고 이 작가는 설명했다.

어른들은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며 어린 현세를 큰어머니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늘 자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던 작은아버지와 작은 숙모가 자신의 친부모란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1970년대만 해도 연좌제로 인해 이현세는 공무원이나 군인 등 사회진출이 어려웠다. 그림을 좋아한 그는 경주고에 다니며 미대 진학을 준비했다.

만화가 이현세 작가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이번엔 '색약'이 발목을 잡는다. 자신이 색약이란 사실을 고3때 비로소 알게됐다. 색약은 완전한 색맹과 달라 그때까지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낙담하고 좌절한 그는 매일 술에 취하는 등 방황했지만 "흑백으로 그리는 만화는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이현세 인생의 대전환, 경제용어로 '피봇'(사업전환)을 한 것이다.

고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로 상경, 만화가들의 작업실을 찾아다니며 문하생 생활을 시작한다. 1978년 데뷔한 그는 '공포의 외인구단'(1982) '떠돌이 까치'(1987) 등 큰 성공을 거둔다. "1980년대 만화 르네상스의 주역"(박인하)이라는 평가다.

만화 평론가이자 '이현세 AI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박석환 재담미디어 이사는 "한국 만화 역사에 미키마우스, 슈퍼맨과 같은 '100년 캐릭터'를 꼽는다면 까치가 빠질 수 없다는 업계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색약, 미대진학 좌절…방황 후 만화로 '피봇'
이 작가는 회화 기본기에 기존 만화를 습작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불우한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도전한다는 세계관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투영한 걸로 분석된다. 반면 남성중심 가치관, 민족주의가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고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1990년대는 성공과 좌절이 교차했다. '블루엔젤', '남벌' 등 화제작을 냈지만 '천국의 신화' 논란과 법적분쟁으로 수년간 작품활동을 못했다. 그는 1998년 성인 독자를 타깃으로 '천국의 신화'를 내놓았지만 성적 묘사, 표현 수위를 두고 선정성 논란이 일었다. 이 작가는 벌금형을 받고 항소했다.

만화가 이현세 작가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2003년 대법원에 가서야 해당 법 조항의 위헌판결에 따라 승소한다. 하지만 이 작가 스스로 "한창 일할 40대를 소송으로 보냈다"며 안타까워 했다. 또 SF만화 '아마게돈'은 성공했지만 애니메니션화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제작에도 참여했던 그는 큰 돈을 날렸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와 다르단 점도 뼈저리게 느꼈다.

그가 펜을 놓은 사이 시대는 이미 디지털만화, 웹툰으로 넘어왔다. 연재를 중단했던 '천국의 신화' 다음 부분을 웹툰으로 만들었는데 평가는 엇갈렸다. 무엇보다 스크롤해서 내려보는 웹툰의 연출 문법은 책을 펼쳐보는 출판 방식과 너무 달랐다. 이 작가는 "천국의 신화를 (웹툰으로) 연재할 때 출판 만화의 연출 방법을 그대로 썼다"고 털어놨다.

그는 마치 작품속 오혜성처럼 멈추지 않았다. 웹툰에 맞게 연출기법을 확 뜯어고쳤고, 디지털장비를 활용했으며, 결국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까지 이른다. 역사만화도 그렸다. △한국사 △세계사 △그리스로마신화 △삼국지 등 이른바 역사 4부작이다.
'기안84'보다 먼저 대중적 스타 만화가...광고모델까지
이 작가는 '올빼미 워커홀릭' 스타일로 일한다. 몰입해서 밤새워 그림을 그리고 새벽에 잠들곤 했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과로하지 않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하다. 신문, 잡지를 탐독하고 밤늦게까지 영화와 OTT도 즐겨본다.

이 작가는 "요즘 최고 관심은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라며 "어딘가 어둡고, 찝찝한 디스토피아라고 할까. 그런데 그게 내가 보는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현세 만화는 영화, 드라마로 변신했다. '원 소스 멀티 유즈' IP(지식재산) 산업을 개척한 셈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22세이던 배우 최재성이 오혜성을 연기했다. AI로 리부트 작업중인 '카론의 새벽'은 영화 '테러리스트'(1995)의 원작이다.

이 작가는 만화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 맥주 광고모델 등 대중문화 스타로 활동했다. 제품 디자인 등 산업계와 다양한 컬래버레이션도 진행했다. 작품의 인기는 물론이고 만화가 자신이 스타가 된 첫 사례였던 셈이다.

이현세 작가가 2014년 12월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현대자동차가 주최한 '브릴리언트 토크 콘서트'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김성휘 기자 sunny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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