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경제 어디로 가나…지표는 우울한데 현실은 후끈

한겨레 2024. 2. 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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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2023년 미국 경제의 침체를 전망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 기준 미국 주식시장은 20% 이상 올랐다. 2023년 12월2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 황소상에 모인 관광객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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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침체를 전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장기에 걸친 수익률곡선 역전은 허약한 경제성장, 기업수익 악화, 주가 과대평가, 고금리 지속 가능성을 반영한다. 침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침체는 오지 않았다. 반대 현상이 두드러졌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 기준 미국 주식시장은 20% 이상 올랐다. 성장 궤도 역시 흔들림이 없었다.

이제 2024년이 밝았다. 올해 최대 관심 역시 미국의 침체 여부다. 세계경제는 물론 금융시장의 향배가 그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침체를 전망하는 이는 여전히 많다. 당연하다. 침체를 가리키는 지표는 널렸다. 경기종합지수는 둔화 국면에 있고 수익률곡선 역전은 침체를 명확히 한다. 하나, 여전히 현실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고용시장은 뜨겁고 소비는 활발하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다. 혼란스럽다.

이런 경우 투자자들의 태도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부의 효과’(주식 등 자산의 가치가 증대되는 경우 그 영향으로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어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의도해 탄생한 ‘부의 효과’는 이제 경제와 금융시장 향배의 주요 변수다. 흐름을 바꿀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현재 투자자들은 침체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연준은 금리를 내릴 것이고 시장은 오를 것이라 믿는다. 과연 이런 투자자 태도는 금융시장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부의 효과’와 ‘고전적 조건화’

‘고전적 조건화’란 특정한 자극에 자동적 조건반사가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조건반사를 발견한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는 중성 자극을 도입하면 개는 생리적 자극 기대로 침을 흘리기 시작한다는 걸 발견했다. 중성 자극(종소리)이라는 아무 의미 없는 자극을 생리적 자극(음식)과 연결해, 그것이 성공하면 자동조건반사(침 흘리기)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도록 한다. 조건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2010년 연준 의장이던 벤 버냉키는 금융시장에 ‘중성 자극’을 도입해 고전적 조건화를 시도한다. 연준의 책임에 ‘제3의 임무’를 부여했다. 부의 효과 창출이 목표였다.

“투자자들이 이번 추가적인 행동(양적완화)을 기대하기 시작하면 주식가격은 오르고 장기금리는 하락한다. 완화된 금융 조건은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다. 예를 들어 낮아진 모기지 금리는 주택가격을 더욱 접근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고, 더 많은 주택 소유자가 재융자를 받도록 한다. 더 낮아진 회사채 금리는 투자를 촉진한다. 더 높아진 주식가격은 소비자 부를 늘려 자신감을 증가시켜 소비를 촉진할 것이다. 늘어난 소비는 소득을 늘리고 수익을 늘린다. 이것이 선순환하면서 경제 팽창을 지지할 것이다.”(2010년 <워싱턴포스트> 칼럼)

부의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조건화가 필요하다. 조건화가 성공하려면 중성 자극이 도입될 때 생리적 자극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즉, ‘짝짓기’(pairing)가 완성돼야 한다. 버냉키는 성공했다. 양적완화(중성 자극)가 도입될 때마다 주식시장이 오른다(생리적 자극)는 것이 명백히 확인됐다. 연준의 대차대조표 변화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쟁이 있었지만, 둘 사이의 매우 깊은 상관관계가 입증됐다. 상관계수는 0.88로 동조화 이상이다.

2008년 이전만 해도 연준이 금리인하 사이클을 시작하면 시장은 하락했다. 부정적 금융 이벤트의 현실화가 시장에 매도 압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주식은 역사적으로 금리인하 사이클이 끝나고 치명적인 이벤트가 해결될 때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2008년 이래 연준은 투자자를 훈련했다. 금융 혹은 침체 이벤트가 시장을 위협할 때마다 금리인하와 완화적 정책이 시행된다는 것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줬다. 그 훈련은 연준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대응, 즉 거대한 통화재정 정책을 통한 시장개입으로 완결됐다. 금융시장과 경제에 도입된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화가 성공한 것이다.

현재 투자자 대부분은 약세장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을 연준이 방치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충분한 훈련 덕이다. 침체 우려가 깊어지거나 부정적 금융 이벤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때 연준이 지원하리라 믿는다. 실제 2023년 10월 미국 금융시장은 저점을 확인했고 이후 유동성이 늘어남에 따라 급하게 상승했다. 연준과 투자자 사이의 연결이 완결된 것이다. 부의 효과가 만들어지면 소비자 자신감은 지속해서 높아진다. 이는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개인소비지출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부의 효과 증대는 성장의 촉진제다. 소비가 왕성해짐에 따라 단기 침체 우려가 엷어지고 있다. 관건은 소비자 자신감을 높인 부의 효과가 연착륙을 만들 만큼 충분한가이다.

마지막 금리인상에 팔아라?

월스트리트에는 흥미로운 공리 하나가 있다. “마지막 금리인상에 팔아라.” 이는 연준의 피봇(금리인상에 마침표를 찍고 금리정책을 전환하는 움직임)이 강세장을 뜻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1970년 이래 연준의 금리인하 사이클은 모두 일곱 번이었다. 이때 시장은 어김없이 하락했다. S&P500지수 기준으로 첫 금리인하 시점에서 시장 저점까지 평균 하락률은 27.25%였다. 최근 세 번의 금리인하 사이클에서 하락폭은 평균보다 높다. 2000년 초반 닷컴 거품이 붕괴할 때는 약 45%, 2008년 금융위기 때는 57%, 코로나19 위기 때는 28% 하락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투자자들은 금리인하 사이클을 반기지 않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금리인하는 디플레이션적 경기 사이클이나 부정적 금융 이벤트에 대응하기 위해 행해진다. 주식시장이 하락하는 건 자연스럽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개인소비지출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소비는 성장의 촉진제다. 2023년 12월15일 미국 뉴욕 맨해튼 시내가 쇼핑객들로 붐비고 있다. REUTERS

한데 의외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3년 11월 초 이래 시장은 급격히 올랐다. 연준이 2024년 1분기에 금리를 내릴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경제 데이터가 악화할수록 투자자들은 정책 전환을 기대하며 더욱 공격적으로 됐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금리인하는 성장 둔화와 낮은 인플레이션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 시장이 취하는 기업에 대한 높은 이익 추정, 높은 밸류에이션과 어울리지 않는다. 주가는 장기 성장 추세를 이탈해 높게 형성됐다. 과매수 구간일 수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 그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연준의 ‘제3의 임무’가 작동하는 걸 투자자들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시장만이 아니다. 펀더멘털(기초체력) 측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침체가 올 수 있다는 많은 경제지표가 있지만 성장은 긴축적 통화정책을 부정하며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침체를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2024년 침체 가능성이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지만 연착륙을 전망하는 전문가도 늘어나고 있다. 침체가 아니라 둔화나 최악의 경우라도 완만한 침체를 예상한다. 두 개의 핵심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인플레이션은 잡히고 있고 시장금리는 하락세다. 임금 성장률 역시 둔화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 데이터는 금융위기 이후 추세선 위에 형성돼 있다. 인플레이션과 임금 성장이 플러스라는 건 침체를 암시하지 않는다. 시장금리까지 하락해 경제를 지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둘째,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행해진 통화와 재정 투입 잔여물이 여전히 시스템에 남아 있다. 광의통화(M2)는 GDP 대비 줄어들지만, 1960년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긍정적 통화 유동성, 낮아지는 금리와 인플레이션은 성장동력을 2024년까지 지속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들 핵심 요인은 연착륙을 강하게 지지한다. 연준의 공격적 금리인상에 기인한 깊은 침체 전망, 은행 대출 기준 강화,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은 의심할 바 없이 유효하다. 그러나 높은 통화 유동성 수준과 부의 효과로 인해 개선된 소비자 자신감은 성장이 침체 영역으로 진입하는 걸 막아낼 수 있다.

소비자 자신감 촉진 효과

사실 미국 경제는 지난 24개월 이상 급격히 수축하고 있다. 미국의 성장률 추이를 보면, 2021년 5.8%, 22년 1.9%, 23년 2.1%(국제금융기금 전망치)로 21년 정점에 비해 수축한 상황이다. 2000년 이래 발생한 미국의 침체는 대략 성장률 고점이 2.5~3%인 상황에서 발생해 마이너스 영역으로 진입했다.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 2021년 고점인 5.8% 성장률에 비해 3%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이를 고려해야 한다. 절대 성장률 하락 추이는 과거의 침체 양상과 비슷하다. 마이너스성장은 아니지만 절댓값 하락 측면에서 침체를 이미 겪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금융시장 흐름과 그 궤를 같이한다. 금융시장이 상승하면 오르고 하락하면 내린다. 금융 부의 변화가 소비자심리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부가 감소하면, 소비자지출은 수축하고 경제성장은 느려지며 기업 이익도 줄어든다. 이는 금융시장 하락으로 연결된다. 반대로, 금융 부가 늘어나면 소비자는 더욱 부자가 된 느낌에 지출을 기꺼이 한다. 이게 바로 부의 효과다. 2023년 11월 이후 시장의 상승은 소비자 자신감을 촉진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그 결과 경제활동이 늘어 침체 기운을 지우고 있다. 벤 버냉키의 말대로 됐다. 2022년 10월 저점 이래 소비자 자신감 상승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은 연준의 고전적 조건화를 기대한다. 연준이 과연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있을까? 급작스러운 부정적 금융 이벤트가 없다면 2024년 우리는 어쩌면 미국의 침체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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