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그 앞에선 식은땀?…동대문에 뜬 여명 [금배지 원정대]
여명 전 대통령실 행정관, 동대문갑 출사표
서울대 나와 사시 패스한 낙하산 대신
평범한 중산층이 보수의 미래가 돼야
野 4선에 與 3선 대결 너무 뻔하지 않나
국회 가면 ‘기회 사다리’부터 세울 것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
여명 후보를 주목한 이유는 서로 이해관계가 없는 여러 명의 국회 보좌진이 한 목소리로 그를 정치 유망주라며 추천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여야 의원실, 지방자치단체 파견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여명 후보를 응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만남을 청했고, 최근 이문동 선거사무소에서 3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여 후보는 본인이 청년 보수의 ‘전형(典型)’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 후보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같은 미국 하버드대 출신 고스펙자가 아닌, 나처럼 반지하 주택서 시작해 조금씩 자산을 모아온 평범한 중산층 출신이 보수의 미래여야 한다”고 했다.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잘 나가는 엘리트 고위 공무원으로 살다가 보수당 중진 눈에 들어 ‘양지’에서 화려하게 정치에 데뷔하는, 그런 ‘젊은 꼰대 보수’ 말고.
일단 여 후보는 어릴 때부터 정치를,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봐왔다. 여 후보 아버지는 국회 보좌관과 국방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한 여운모 씨다. 부친은 지난 20여 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 근무했다. 여명 후보는 “아버지는 본인 직업이 ‘누군가의 그림자이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법을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또 국회 의원회관에는 여명 후보의 정치 데뷔를 응원하는 ‘언니·오빠’ 보좌관들이 즐비하다. 국회의원 의정 생활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좋은 보좌진을 꾸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런 면에서 여 후보가 갖는 경쟁력은 매우 높다.
배지를 안 달았을 뿐이지, 적지 않은 정치 경험도 있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혁신위원, 서울시의회 의원,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 홍준표 대선후보 대변인, 윤석열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청년본부장, 대통령실 행정관 등 다양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MBTI도 정치를 하기에 적합하다는 ENTP(논쟁을 즐기는 변론가)란다.
국민의힘에서 서울 동대문갑에 공천을 신청한 예비후보는 6명이나 된다. 강력한 경쟁자는 3선(18·19·20대) 경력의 김영우 전 의원이다. 예전 선거구인 포천의 현역이 같은 당 최춘식 의원이다 보니 김영우 전 의원은 지역구를 바꿔 ‘험지’인 동대문갑으로 옮겨 왔다.
‘중진의 헌신’이라는 명분까지 가진 김 전 의원의 아성을 과연 여명 후보가 넘어설 수 있을까. 동대문갑에는 김영우 전 의원뿐만 아니라 국회 대변인과 국회도서관장을 역임한 허용범 전 당협위원장도 출사표를 낸 상태다.
이처럼 공천을 받는 것만으로도 ‘파란’이지만, 본선에서는 ‘기적’을 바라야 하는 게 현실이다. 동대문갑에는 5선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버티고 있다. 안 의원은 18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한 뒤 동대문갑에서 내리 3선을 한 인물이다.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이름값도 높다.
4년 전 선거에서 안 의원은 허용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에게 약 11%포인트 차이로 이겼고, 8년 전 3자 대결 구도에서도 승리를 거머쥔 바 있다.
여명 후보는 “4선 의원에게 3선 의원으로 대항하는 건 너무 식상하고 뻔한 전략”이라며 “정치를 오래 했다는 건 정치적 빚이 많고, 지역구를 옮긴다는 건 눈치 볼 일 또한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또 “무너진 ‘기회의 사다리’를 다시 세울 수 있도록 교육제도 개편에 나설 것”이라며 “여기에 취업시장에서의 공정성을 회복하는 게 오래 걸리더라도 확실한 사회보장제도”라고 밝혔다.
지역구 공약 중에서는 도시를 재생시킬 ‘한국판 테이트 모던’의 구축을 약속했다.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영국 런던에 있는 현대미술관으로 연평균 방문객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한다.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테이트 모던은 도시 재생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여명 후보는 “단 하나의 문화시설이 지역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며 “지난 12년간 민주당이 동대문갑의 주인 노릇을 했지만, 명소는 여전히 경동시장 하나뿐이지 않냐”고 꼬집었다.
그밖에 여명 후보는 “동대문갑에는 한국외대와 경희대가 있고, 고려대 학생들도 이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며 “대학생들이 졸업한 이후에도 떠나지 않도록 문·이과 융합형 산학연구단지를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캠퍼스 밸리에 대학생만의 전유물이 아닌, 지역 주민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게끔 평생교육 시설을 유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명 후보는 “내가 원조인데 좀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3년 한국대학생포럼 회장 시절부터 386 운동권 출신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발전도 미래 개혁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며 “386 카르텔은 이념 카르텔이 아니라 이권 카르텔”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보 운동권 인사들은 이념 카르텔을 명분으로 약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자기네 이익만을 추구하는 위선적인 집단”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기업의 일자리 창출 활로는 막아놓고는, 취업에 어려움 겪는 청년에게 푼돈 나눠주며 지지를 요청하는 게 386 운동권 본질”이라며 “정말 역겹다”고 덧붙였다.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당 비상대책위원장과 3선 출신의 같은 당 예비후보는 물론, 윤석열 대통령조차 여명 후보의 거침없는 지적을 피해 가지 못했다.
지난 2022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여명 당시 대통령실 행정관이 직접 청년정책 관련 보고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윤 대통령 앞에서 10여 분 간 “청년정책으로 청년의 삶이 1도 나아지지 않았다”, “20대 여대생, 30대 워킹맘, 40대 싱글남, 취업준비생이 모두 청년이다. 그런데 이들을 청년이란 이름으로 묶어서 지원을 한다는거냐”고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보고를 다 들은 윤 대통령은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문제 인식에 공감한다”고 했다는 게 같은 자리에 있었던 대통령실 관계자 전언이다.
‘여명의 시간’이 이번 총선이 될지, 혹은 다음 총선이 될지는 향후 몇 주 안에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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