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다가 끝났다...'공든 탑' 무너진 한국 축구, 다시 웃을 수 있을까[아시안컵 결산③]
[OSEN=고성환 기자] 64년 만의 아시아 정상 도전은 말 그대로 웃다가 끝났다. 월드컵 16강의 기적이 탄생했던 무대는 약 1년 만에 비극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공든 탑은 무너져 버렸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여정을 멈췄다. 우여곡절 끝에 4강까지 오르긴 했지만, 요르단을 상대로 졸전 끝에 0-2로 패하며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결국 클린스만호는 결승 문턱을 밟지 못하고 무너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부임 직후부터 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내세웠고, 대회 중에도 자신만만하게 숙소를 결승까지 예약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모두 자신감이 아닌 자만감일 뿐이었다.
이번 요르단전이 열렸던 알라이얀은 한국 축구로선 잊지 못할 도시다. 한국은 지난 2022년 12월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황희찬의 후반 추가시간 골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그 결과 극적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당시 포르투갈전이 펼쳐진 도시가 바로 도하 서쪽에 자리한 알라이얀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같은 시각 열렸던 우루과이-가나 경기가 끝나며 한국의 16강행이 확정되자 다 같이 관중석으로 뛰어가며 기쁨을 만끽했다. 2002년 4강 신화를 오마주한 태극기 세레머니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영광의 땅이었던 알라이얀은 2024년 1월 알라이얀은 비극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87위 요르단을 상대로 90분 동안 유효 슈팅 0회에 그치며 0-2로 무릎 꿇었다. 사실 수문장 조현우의 연이은 선방이 아니었다면 0-3, 0-4로 대패해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였다.
요르단전에서 폭탄이 터졌을 뿐, 도화선에 불이 붙은 지는 오래였다.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한 이래 가장 훌륭했던 대표팀 경기는 데뷔 무대였던 콜롬비아전이었다. 그 이후로는 갈수록 방향성을 잃었고, 색깔도 사라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후 6번째 경기(사우디아라비아전 1-0 승리)에서 첫 승을 챙겼다. 역대 한국 축구 사령탑 중 가장 늦은 승리. 사우디전을 시작으로 대회 직전 이라크와 친선전까지 6연승을 달렸지만, 상대는 대부분 베트남과 중국, 싱가포르 등 약체였다. 대승에도 경기 내용을 보면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본 무대였던 아시안컵에서도 달라진 점은 없었다. 한국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만 6골을 내주며 역대 최다 실점 기록을 경신했고, 제대로 된 필드골을 만들어 내는 데도 애를 먹었다. 약속된 플레이와 조직적인 호흡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선수들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준결승까지 오른 게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2022 월드컵의 주역들은 대부분 남아있었지만, 피치 위에서 보여준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을 상대로도 결코 밀리지 않았던 한국은 어떤 팀을 상대로 끌려가도 이상하지 않은 팀이 됐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과 함께 쌓았던 공든 탑은 모두 무너져 있었다.
그럼에도 클린스만 감독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탈락이 확정됐을 때도 주장 손흥민은 그대로 얼어붙어 발걸음을 떼지 못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웃으며 요르단 관계자와 인사를 나눴다. 기자회견장에서도 전혀 아쉬운 얼굴이 아니었다.
정말 대회 내내 웃다가 끝났다. 클린스만 감독은 졸전을 펼치고도, 종료 직전 동점골을 내주고도 웃기만 할 뿐이었다. 경기 내용이나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언제나 해맑게 미소를 지어 취재진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회를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도 환하게 웃었다. 사퇴 의사를 묻는 말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다음주 다시 출국해 미국과 유럽 각지를 돌며 다가올 월드컵 예선을 준비할 계획이다.
과연 한국 축구가 클린스만 감독 밑에서 다시 웃을 수 있을까. 그와 함께하는 미래에 방향성이나 비전이 있긴 한 걸까. 선수들이 모든 걸 쏟아부으며 눈물을 흘릴 때도 클린스만 감독은 끝까지 웃음만 지었다. 감독만 홀로 즐거운 축구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일단 클린스만 감독에게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그는 귀국 인터뷰에서 "내가 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대한축구협회(KFA)에서 변화를 택하는 수밖에 없다. KFA는 설 연휴가 끝난 뒤 전력강화위원회를 개최해 대표팀을 분석하고 운영을 검토할 예정이다.
/finekosh@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