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혐오 정치? 삶 피폐하게 한 적폐 청산보다 낫다
● 검찰 적폐 청산 집착하다 나라 이 꼴 만든 文
● 조 단위 사업 포퓰리즘은 公約 아닌 空約
● 휠체어 퍼포먼스? 장애인 차별 철폐 위해 뭘 했나
[영상] 여의도 고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무임승차 폐지' 공약은 다시 한번 혐오 정치 논란에 불을 댕겼다. 이 대표는 1월 18일 65세 이상 고연령층 지하철 무상 이용 혜택을 폐지하고 대신 연 12만 원 선불형 교통카드를 지급하는 내용이 담긴 공약을 발표했다. 현재 무임승차에 따른 적자 비용을 미래 세대에 전가하고 있으며, 지하철 없는 교통 취약 지역 시민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못한다는 게 그 이유다.
반발은 거셌다. 대한노인회는 김호일 회장 명의 성명서를 내고 "신당이 아니라 패륜아 정당을 만들겠다는 망나니 짓거리"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과 이준석 대표는 일주일 뒤 한 라디오에서 토론을 벌였다. "4호선 역 중 무임승차자가 가장 많은 역은 경마장역(경마공원역)"이라는 이 대표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전형적으로 감정을 긁는 괴벨스 화법"이라고 비난했다.
재미있는 건 무임승차 폐지가 미디어나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것에 비해 양당에서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의 공약에 딴지부터 걸고 보는 게 한국 정당 특징 아니었나. 제3지대 정당이 띄운 이슈에 전략적 차원에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으나 자신들이 제기한 정책에 대한 논의가 실종됐다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양당의 저출산 공약 발표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이의 갈등이 대두하면서 이슈 초점은 '윤-한 갈등'에 모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관권 선거 저지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 의혹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청래·서영교·장경태 등 최고위원들은 사태 원인 중 하나인 명품백 논란을 연일 부각했다. 국민의힘은 '국민 택배'처럼 공약으로 승부를 보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런 노력은 대체로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고 있다. 핵심은 아직도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86세대 운동권을 규탄하는 데 있다.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내건 한동훈 위원장 첫 일성은 이 같은 기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 중 하나는 청산 정치다. 물론 과거에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거나 정권을 심판하자는 주장이 줄곧 제기됐다. 요즘은 그 정도가 심하고 기간도 길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상대방을 청산하자고 주장하다가 임기를 마치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에는 86세대 운동권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 민주당에는 검찰과 언론이 그 대상이다.
청산 정치는 1987년 민주화 유산
청산 정치는 1987년 민주화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의 6·29 선언으로 민주화 세력은 권위주의 독재 세력으로부터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국민이 염원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엄연한 의미에서 혁명은 아니었다. 군부 정권은 몰아냈지만 새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기존 권위주의 세력과 타협했다. 그 성격을 잘 보여준 게 '8인 정치회담'. 이 회담은 6·29 선언 이후 새 헌법 기초를 마련하고자 구성한 회의체다. 여당인 민정당에서 4명, 야당인 통일민주당에서 김영삼계와 김대중계가 각 2명씩 4명이 참여했다. 김영삼계와 김대중계가 언제든 분열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야권에 불리한 구성이었다. 개헌 논의 초점도 주로 대통령 임기에 맞춰졌다. 회의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야권이 분열했다. 1987년 제13대 대선에서 1노 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구도를 형성했다. 노태우가 당선하면서 민정당은 다시 한번 여당 지위를 유지했다. 6월 민주항쟁의 두 구호,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중 전자는 완전히 달성하지 못했다.이후 정국은 '권위주의 세력 대 민주화 세력' 구도에서 '보수 대 진보' 구도로 바뀐다. 3당 합당은 중요한 분기점.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이때 일어난 프레임 전환으로 권위주의 독재 유산 청산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광복 후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가 좌우 대립 구도 속에 묻힌 것처럼 말이다.
정리하지 못한 과거사, 유예한 독재 잔재 청산이 민주진보 진영의 과제로 남는다. 노무현 정부는 그 미완을 매듭짓고자 4대 개혁 입법을 강행한다.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진상 규명법·언론관계법 제정, 사립학교법 개정이 핵심이었으나 시민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 시기 대학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비정규직이 늘고 소득격차도 확대됐다. 그 와중에 집값까지 폭등하면서 "먹고살기도 빠듯해 죽겠는데 지금 그런 걸로 싸울 때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연평균 4.7%라는 준수한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비난이 쏟아진 건 그래서다. 온라인에서는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냉소가 번졌다. 온갖 의혹에도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선점한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큰 지지를 얻었다. 그의 압도적 대선 승리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文, 적폐청산·검찰개혁에만 몰두
보수는 청산 정치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 덕분에 집권에 성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청산 정치를 다시 소환한 게 보수다. 2016년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이 촉발한 국정농단 사태가 결정적이다. 정부와 재벌 기업 유착, 비선 실세 자녀 입시 부정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온갖 의혹이 고구마 줄기처럼 올라왔다. 2030세대 분노는 더 컸다. 마침 1∼2년 전 '헬조선' 담론이 시대를 휩쓸고 간 뒤다. 한국갤럽이 2016년 11월 1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만이 '잘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20대에서는 0%였다.야권의 승리는 확실했다. 선두는 단연 문재인 당시 전 민주당 대표다. 적폐 청산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이게 나라냐!"라는 분노를 빠르게 결집했다. 반대 목소리는 조금도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그게 할 소리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보수세력과 대연정을 내걸었다가 곤욕을 치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그랬다. 그는 "과거의 적폐를 덮거나 새누리당을 용서하자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의회정치의 대화와 타협 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해명했지만,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압도적 차이로 경선과 대선을 모두 이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적폐 청산에 박차를 가했다. 줄여야 한다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를 임기 첫해 25명에서 이듬해 43명으로 늘렸다. 검찰 주요 요직도 특수부 검사로 채웠다. 세월호 보고서 조작,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화이트 리스트 사건 등 '적폐 청산 작업'이 끊이지 않았다. 숨 가쁜 적폐 청산 작업에서 화룡점정은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 문 대통령은 야당의 강한 반발에도 '초고속 승진'시켜 검찰총장에 앉혔다. 그러다 조국 사태가 터졌다. 문재인 정부 상징과도 같던 조국을 향한 특수부 수사가 시작됐다. 적폐 청산 칼이던 검찰을 적폐로 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에 '올인'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년 재임 내내 윤석열 검찰총장과 다퉜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을 놓고선 '동물 국회'가 부활했다. 2022년 대선 패배 직후엔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검수완박)하는 데 매진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집권한 지 5년 만에 정권을 내줬고 지방선거에서도 크게 패했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도대체 어떤 적폐를 청산했느냐고. 김의겸·김남국 의원 사건 등에서 나타난 내부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바로잡히지 않았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편법적 부와 지위의 세습도 여전했다. 20대 남녀 사이는 전에 없던 갈등으로 두 동강 났다.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다. 비수도권은 이제 아파도 병원이 없어 '응급실 뺑뺑이'를 도는 지경이다. 검찰이 과연 이런 문제보다 더 큰 적폐였을까.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검찰이라는 적폐 청산에 집착하다가 시민의 평안한 삶을 청산해 버린 꼴이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각종 공약 패키지를 쏟아내고 있다. 유심히 살펴보면 공약은 대체로 발표 당일에만 기사화될 뿐 후속 논의로 이어지지 않는다. 철도를 지하화하고 대학을 무상화하는 데 얼마의 돈이 들 것이며 그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조차 따지지 않는다. 허무맹랑한 소리여서 그런가. 대신 정치 뉴스를 채우는 건 '검찰 독재'나 '586 운동권'을 청산하자는 이야기뿐이다. 장담컨대 선거가 치열해질수록 상대방을 심판하고 청산해야 한다는 구호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민생 논의는 뒷전으로 밀린다.
전장연과 토론한 이준석 vs 퍼포먼스로 그친 의원들
"장애인 문제가 100분 토론 주제가 되는 게 꿈"이라던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TV에서 토론을 벌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그리고 "전장연 비판은 장애인 혐오"라며 휠체어 퍼포먼스를 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민주당 국회의원들. 이들 중 누가 더 나은 정치인인가. 어느 쪽이 도덕적인지에 대해선 사람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누가 도움이 되겠는지를 따진다면 이준석일 것이다.
여러 차례의 정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지르고 보자'며 재원 조달 방안조차 마련하지 않은 수십조 원 드는 공약은 그동안 심판과 청산에만 얽매인 정치권의 빈곤한 철학을 보여준다. 그런 공약(空約) 속에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고민이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민생, 정책을 말하다가도 얼마 안 가 또 누구를 심판하자고 할 거라는 걸 국민은 모르지 않는다.
30년 넘게 이어진 청산 정치 굴레를 끊어내지 않는 한 정치를 향한 국민의 환멸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은 이준석의 혐오 정치를 비판하기 전에 자신들의 혐오스러운 정치 행태부터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준석의 정치 방식이 영 못마땅하다면 그만한 대안이라도 내놓으시라. 그땐 인정하겠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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