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 프로, 마법 같은 모션 감지...15분만에 목 뻐끈 [써보니]
추억 회상 하듯 보여주는 3D 영상 인상 깊어
머리 짓누르는 무게와 수백만원의 가격은 장벽
지난 2일(현지 시각) 미국 쿠퍼티노 애플 본사에 있는 애플스토어 앞은 이날 출시된 애플의 혼합현실(MX) 기기 ‘비전 프로’를 사용해보려는 고객들의 줄이 길게 넘게 형성돼 있었다. 애플워치 이후 9년 만에 새로운 하드웨어를 출시한 만큼, 애플은 비전 프로 출시와 함께 미국 전역의 애플스토어에 대대적인 데모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사전 예약을 통해 애플스토어 직원과 1:1로 30분 넘게 주요 서비스를 두루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테크 업계에서는 “수백만 원이 넘는 고가품인 만큼, 당장의 수익을 노리는 대신 일단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비전 프로를 체험하게 하는데 집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체험을 위해 착석하자, 담당 직원은 아이폰을 건내며 두상 스캔을 하라고 안내했다. 아이폰에서 안면 인식 서비스를 쓰기 위해 폰 전면 카메라로 머리를 상하좌우로 흔들며 스캔하는 것과 똑 같은 과정이었다. 담당 직원은 “두상 스캔은 비전 프로를 썼을 때 틈새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경우는 최대한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비전 프로는 아주 다양한 사이즈로 출시됐고, 눈이 나쁜 고객을 위해 도수렌즈도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법 같은 모션 감지…3D 영상 인상적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우측 후면에 있는 다이얼을 돌리면 밴드를 머리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처음에 깜깜하던 화면은 비전 프로 작동과 함께 원래 보고 있던 현실세계가 다시 눈 앞에 환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허공에 다양한 앱 아이콘을 펼쳐놓은 ‘시작 화면’이 둥둥 떠있는 것이 보이게 된다. 사진, 사파리, 애플뮤직, 애플TV 등 13개의 아이폰·아이패드에 탑재돼 있는 기본앱들을 비전 프로에도 똑같이 쓸 수 있는 것이다.
비전 프로는 메타가 출시한 가상현실(VR) 기기 ‘퀘스트’ 시리즈와 다르게 가상 화면을 조작하는데 쓰는 물리적 리모컨을 아예 없앴다. 대신 비전 프로 내외부에 장착된 센서들로 시선과 손동작을 감지한다. 눈이 컴퓨터의 ‘마우스 커서’ 역할을 하고, 엄지와 검지를 살짝 집는 동작으로 마우스 좌측 버튼을 ‘클릭’하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실제로 사용해보니 비전 프로 내 가상 화면 속 앱 아이콘들은 눈길이 가는 즉시 도톰하게 부각 되며 마치 마우스 커서를 앱 위에 갖다 댄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엄지와 검지를 집는 동작은 굳이 크게 할 필요 없이 무릎 위에서 살짝 동작을 취하는 정도로도 인식이 됐다. 화면을 집고 위아래로 움직이면 화면이 ‘스크롤’ 되고, 양손을 써서 화면을 확대·축소 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에 두 손가락을 갖다 대고 화면 크기를 조정하는 대중적인 손동작을 처음 업계에 도입한 애플인 만큼, 모든 모션 조작 과정이 직관적이고 간단했다. 이 간편성 하나만으로 시중의 다른 경쟁 기기들을 모두 압도한다고 느껴졌을 정도다.
이날 체험은 사진앱을 실행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손을 살짝 집어 왼쪽으로 쓱 움직이면 다음 사진이 보이는 식이었다. 특히 콘텐츠의 깊이와 입체감을 살린 ‘스페이셜 이미지·비디오’가 인상적이었다. 3D로 제작된 영상으로, 아이들과 엄마가 웃으며 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짧은 영상이 재생됐다.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배경에 있는 현실 세계는 어두워지고, 3D 영상은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생생함을 살렸다. 담당 직원은 “3D 콘텐츠의 가장자리를 블러처리했는데, 이는 마치 ‘추억 방울’을 통해 중요한 순간을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비전 프로 전면 우측에 있는 ‘크라운(원형 버튼)’을 돌리자, 눈 앞의 현실 세계가 사라지고 광활한 산맥과 연못의 이미지로 변환됐다. 마치 야외 캠핑을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완벽한 가상 세계에 진입한 것이다. 이 배경에서 사파리 브라우저를 실행해 정보를 검색하다가,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떠 있는 사진을 구경할 수 도 있다. 아이폰이나 맥북이 2D 화면에서 각종 서비스를 열고 끄며 써야 한다면, 비전 프로는 동시에 수많은 창을 3D 공간에 열어두고 몸을 돌려가며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애플이 비전 프로를 ‘공간 컴퓨팅’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싸고 무거워…뚜렷한 한계
다만 한계도 뚜렷했다. 집에 있는 TV보다도 크게 화면을 키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기능은 좋았지만, 경쟁 기기들의 기능과 크게 차별화되진 않았다. 눈 앞 가득 펼쳐지는 화면으로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몰입형 영상’은 실제로 눈 앞에 미국 팝가수 알리시아 키스가 노래를 하고, 공룡이 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뿐이었다. 화질이 극도로 선명하진 않아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현실과 아예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쟁 기기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않은 무게감은 가장 큰 장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30분이 넘는 데모가 절반도 지나지 않았을 때 이미 머리와 광대가 비전 프로의 무게를 견디느라 아프기 시작했다. 목이 뻐끈해지는 느낌도 뒤로 갈수록 심각했다. 후반 데모는 손으로 비전 프로를 지탱하면서 진행해야 할 정도였다.
비전 프로의 가격은 기본으로 3500달러(약 500만원)을 넘는데다, 각종 액세서리를 구매하면 600만원을 훌쩍 넘게 된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말대로 ‘내일의 기술을 오늘 체험하는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체험 이상의 의미는 당장 크지 않아 보였다. 특히 유튜브, 넷플리스,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히트 서비스들이 애플을 견제하기 위해 비전 프로용 앱을 만들지 않는 것도 비전 프로의 활용성을 크게 낮추는 장애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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