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고국 그리움 달래러" 한국에 뜬 네팔 인기가수의 '설 공연'
국적, 종교 따라 다른 이주 노동자 설 풍경
자국 인기 가수 공연 보고 전통 음식 먹으며 휴식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는 2023년 말 법무부 통계 기준 약 92만 명으로 불법 체류 노동자를 합하면 100만 명이 넘을 것이라 추산된다. 정부가 올해 외국인 인력 규모를 역대 최대로 늘리겠다고 공언한 만큼 보다 더 다양한 해외 문화가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이주 노동자 100만 시대를 맞아 우리 곁에 공존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설 연휴 풍경을 담았다.
네팔 인기 가수 총출동, 한국서 느끼는 네팔의 흥
설 연휴가 시작된 9일 전남 순천시 율촌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욘전 만바하둘(35)은 이른 오전 숙소를 나섰다. 같은 회사 동료 네 명과 함께 연휴 기간 서울에 머물며 고향 네팔에서 한국을 찾아온 인기 가수들의 공연을 즐길 예정이다.
네팔에서도 사람들은 한국의 설처럼 매년 음력 1월 1일, 소남 로차르(Sonam Lhosar)란 이름의 명절을 쇤다. 이는 네팔의 주요 민족 중 하나인 따망족의 설날이다. 만바하둘은 "로차르 기간을 맞아 한국에 사는 네팔인들이 주한 네팔 대사관과 함께 네팔의 인기 연예인을 초청했다"며 "전통 민요와 랩 등 다채로운 공연을 즐기고 네팔 음식점에 들러 오랜만에 고향 음식도 즐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에는 네팔의 가수 우르겐 동과 수미나 로를 비롯해 네 팀 이상의 뮤지션들이 한국에 온다. 부산 광주 등에서도 로차르 기간 재한 네팔인을 위한 다양한 행사와 공연이 열린다. 법무부의 등록외국인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있는 네팔인은 약 6만 명으로 한국계 중국인, 베트남, 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휴식, 오랜만의 상봉...국적 달라도 명절은 똑같아
대불산업단지가 있는 전남 영암군 삼호읍은 지난해 기준 인구 대비 등록외국인 비율이 25%가 넘는다. 전체 인구 네 명 중 한 명 이상이 외국인인 만큼 설을 앞둔 거리 곳곳의 풍경도 색달랐다.
삼호읍에 사는 이주 노동자들은 아시안 마트와 식당 등에서 고향의 식재료와 전통 음식을 사서 지인들과 함께 명절을 기념한다. 베트남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명절을 맞아 베트남 전통 음식 반쯩과 베트남 전통 과자 등을 한가득 차려놨다. 8일 만난 그는 "베트남에서는 새해에 찹쌀떡과 돼지고기를 넣고 쪄낸 반쯩을 먹는다"며 "고향 생각이 나는 명절이라 그런지 다른 때보다 인기가 많아 금방 팔린다"고 귀띔했다. 이 말을 듣던 A씨의 어머니도 가게 한편에서 부지런히 반쯩을 만들며 웃어 보였다.
네팔에서 온 네 사로즈(30)는 연휴 기간 전남 광양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그는 "함께 일하는 동료 15인 중 절반 정도는 부산시나 광주시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간다고 한다"며 "남은 사람들은 숙소에서 쉬며 염소고기가 들어간 카레인 카쉬 코마수 등 전통 음식을 요리해 먹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한국의 다른 지역에 머무는 가족을 찾아 나서는 이도 있었다. 전남 고흥군 시산도의 김 양식장에서 일하는 아다운 멘돈차 안토카트(30)는 이른 아침부터 육지로 나서는 배에 올랐다. 시산도는 하루 세 번 운항하는 여객선을 타야만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외딴섬이다. 안토카트는 "세 살 어린 동생이 완도군에서 일하고 있다"며 "주말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다 다시 돌아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설 연휴? 금요일은 모스크 가는 날!
전남 순천시에 사는 압두 사마디(36)도 연휴 첫날부터 바쁜 하루를 보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그는 이슬람 모스크에서 나마스를 집전하는 이맘이다. 이슬람교 신도들은 무함마드가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간 서기 622년 7월 16일을 설 명절로 기린다. 즉 금요일은 이날도 그에게 설 명절이 아닌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이날 나마스가 진행되는 순천의 한 모스크에는 오전 11시 30분쯤부터 신도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예배가 시작된 낮 12시 반에는 100여 명 가까운 신도들이 한데 모여 메카 방향을 바라보며 절을 올렸다. 이맘을 포함해 대부분은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튀르키예와 인도네시아 등 다른 국가 출신의 이주 노동자와 유학생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신도가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만큼 상당수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모자인 도프(Doppi)를 쓰고 있었다. 도프를 쓰지 않은 신도들도 비니와 볼캡, 후드티 등 각양각색의 모자를 쓰고 예배에 참여했다. 이날 한 시간가량의 예배를 마친 사마디 이맘은 "이슬람교의 휴일인 매주 금요일엔 신도들이 모여 기도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슬람교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있지만 일부 극단적이고 나쁜 이슬람교도가 만든 고정 관념"이라며 "대부분 신도는 율법을 지키며 사는 평범하고 좋은 사람들"이라 덧붙였다.
고흥 순천 영암= 정창경 인턴 기자 dbapalw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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