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쫓던 닭’의 최후…하림이 HMM 품지 못한 세가지 이유
1.6조 현금 들고 6.4조 인수가 제시
“JKL 포기하라” 해진공 요구에 난색
경영권 개입 과도…“재매각 쉽지 않을것”
[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의 HMM 인수가 끝내 무산됐다.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와 이견을 좁히지 못 하면서다. 만료일을 한 차례 연기한 협상 기간 내내 양 측은 여러 합의를 이뤘지만 끝내 뜻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인수 측인 하림 컨소의 자금조달 능력과 매각 측인 산은·해진공의 무리한 경영 개입,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를 포기할 수 없었던 하림의 속내 등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이번 딜을 깨뜨린 배경으로 꼽힌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산은과 해진공 등 매각 측과 하림-JKL 컨소는 HMM 매각을 위한 협상을 벌여오다 지난 7일 새벽 최종 결렬을 발표했다. 매각 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6일까지 기한을 2주 연장했지만, 자정을 넘긴 협상에도 결국 합의를 끌어내지 못 했다.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인수 대금으로 6조4000억원을 써내며 경쟁자 동원그룹(6조2000억원) 보다 많은 가격으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림 컨소시엄의 자금 조달 능력은 애초부터 의문을 낳았다. 6조4000억원의 인수 가격 가운데 하림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조6000억원에 그쳤다. 이마저도 전부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머지는 3조원 규모 팬오션 유상증자와 대주단을 통한 2조원 규모 인수금융, JKL파트너스의 펀딩(6000억원) 등으로 조달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유상증자와 인수금융 모두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팬오션이 3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하려면 현재 시가총액의 1.5배 규모 신주를 발행해야 했고, 인수금융 역시 높은 금리 탓에 이자비용이 매년 수천억원에 달할 것이 뻔했다. 때문에 하림이 HMM에 있는 10조원 규모 현금성 자산을 인수 자금으로 충당할 거란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형국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한 셈이다.
②매각 급했던 산은…해진공과 동상이몽
더 큰 문제는 매각 측에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우선 산은과 해진공의 입장부터 달랐다. 산은은 지난해 HMM의 연내 매각을 반드시 끝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산은은 한국전력의 대규모 손실 탓에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방어가 절실했다. 이에 HMM과 KDB생명 등의 매각을 추진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해진공은 HMM 민영화에 대해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매각 자체보다는 HMM을 성실하게 키워낼 만한 기업에 넘기겠다는 의도였다. 때문에 해진공은 산은보다 더 깐깐하게 하림 컨소를 검증하려 했다. 해진공은 하림 측이 요구한 영구채 주식 전환 3년 유예 조건도 반대했고, 하림 인수 후에도 해수부와 해진공 차원의 경영 감시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하림 입장에선 HMM을 인수하더라도 독립적인 경영권을 갖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③JKL과의 혈맹, HMM 인수 포기 배경?
협상 결렬의 불씨를 지핀 쪽도 해진공이었다. 해진공은 하림의 인수 파트너인 JKL에 향후 5년간 지분 매각 제한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컨소시엄에서 빠지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익 실현을 추구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5년간 지분 매각 제한은 수익률 관리에 치명적이다. 하림은 JKL만이라도 지분 매각 제한을 배제해달라고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결국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6조4000억원의 인수 대금 중 JKL이 담당하는 자금은 6000억원 남짓이다.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림은 다른 사모펀드로 빈자리를 채우는 대신 결렬을 택했다. 하림은 2015년 팬오션 인수 당시부터 JKL과 끈끈한 유대를 이어왔다. 일종의 혈맹이다. 김홍국 하림 회장의 장남 김준영씨가 JKL파트너스에서 시니어 파트너로 재직 중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결국 HMM 인수와 JKL과의 혈맹 유지 중, 하림은 JKL을 택한 셈이다.
업계에선 이번 거래 무산으로 향후 HMM의 재매각도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절차에 따라 인수 계획을 제시하고 협상을 이어왔음에도 과도한 요구로 인해 거래가 어그러진 전력을 남기면서다. 애초에 적정 후보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유찰이 맞았다는 지적도 있다. 산은이 HMM 매각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생긴 실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허지은 (hurj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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