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좀 버려 주세요"…15살 서아의 '겨울방학'[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기자 2024. 2. 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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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에 나 스키 탔어"라고, 기죽지 않을 추억 만들어준 섬세한 어른들
주로 학대 피해 당한 '그룹홈' 아이들 51명 데리고 무주 덕유산 리조트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1000만원 지원해 '스키 캠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니까요, 자존감도 높아지고 성취감 느낄 수 있기를"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세상이 처음 불편해졌지요. 직접 체험해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며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가 보이도록 힘쓰려합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가 후원한 '스키 캠프'에 온 그룹홈 아이들. 넘어지고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걸 보며, 삶도 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겨울방학에 쌓여야 할 추억이, 짧은 삶에서 겪지 말았어야 할 아픔을 덮을만한 좋은 기억이, 아이들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그게 이 글에 담고 싶었던 마음이다./사진=스키는 못 타고 바라만 보던 남형도 기자
"와, 눈이다!"

겨울 눈 구경이 귀한, 남쪽에서 달려온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학교 수업할 때도 눈 오면 멈춘다던 따뜻한 곳에 사는 아이들. 보이던 건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덕유산 자락. 새벽 5시 반부터 출발하느라 쌓인 고단함을 번쩍 깨워주는 눈부신 설원. 영하 강추위에 몸을 부르르 떠는 녀석들도 있었다.

태어나서 첫 스키장이었다. 지난달 25일, 무주리조트에 모인 10여 명의 아이들 대부분 그랬다.

"날 춥지? 그러게, 레깅스랑 외투랑 옷 따뜻하게 입으라고 했는데 말 안 듣고."

아이들이 서로의 신발을 신겨주던 모습. 그 또한 배움이었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덜덜 떠는 아이들을 보며 엄마가 말했다. 겉은 핀잔이었으나 이면엔 걱정이 담겼다.피를 나누진 않았어도 엄마였고, 가족이었다. '그룹홈'이라 불리는 엄마와 아이들의 집. 어릴 적 학대를 당해 분리됐거나, 힘든 사정으로 부모와 살 수 없는 아이들을 감싸 안아 함께 사는 곳.

15살 서아(가명)도 그리 그룹홈에 살게 됐다. 서아 엄마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집을 나갔다. 아빠는 방임 학대를 했다. 신생아 때 거의 죽기 직전에 구해졌다. 아빠와 분리돼 그룹홈에 왔다.

그런데 신생아 때부터 자랐기에, 그룹홈 시설장이 친엄마인줄 믿고 컸다.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야 알게 됐단다. 자기도 다른 아이들처럼, 친자식이 아니란 걸. 시설장은 맘이 아팠다.

하루는 서아 친엄마가 서아를 만나러 왔다. 서아는 친모에게 "엄마, 그냥 나 좀 버려주세요"라고 청했단다. 살던대로 그룹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거기서 쭉 살고 싶다고.

차에서 졸던 서아가 내려서 스키장을 가만히 바라봤다. 가늘게 뜬 아이의 눈 사이로 하얀빛이 쏟아졌다.

"겨울방학엔 스키장 가자"는 약속…지킨 좋은 어른들
태어나 처음 제대로 배워보는 스키. 처음엔 힘들다는 걸, 힘들지만 꾸준히 애쓰면 익숙해진단 걸, 그러면 또 좋아지게 된단 걸 배우는 아이들. 그런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룹홈 운영비 등 사정이 여의치 않다./사진=남형도 기자
"야, 너 스타일 좀 멋지다. 와, 스키 선수 같은데."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이하 대아협) 대표가 아이들을 보며 우렁차게 칭찬했다. 아동학대 재판이 열리는 법원 앞에서 큰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처벌하라며, 사자후로 아이들을 대변하던 사람. 그러나 다친 아이들 앞에선 이리 순해졌다.

그는 지난해 여름, 찬란한 남해바다에서 아이들과 약속했었다. 겨울엔 스키장에 데려가겠다고. 10대에 떠올리면 좋을,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 거였다. 스키장 같은 추억은 비싸서, 부족한 운영비에 시달리는 그룹홈에는 비싼 스키 비용은 부담이었다.

의식주만 해결된다고 다가 아니란 것. 어떤 섬세한 어른들은 거기까지 바라봤다. 이수진 대아협 대리가 말했다.

"애들이 방학 때 누워서 뒹굴뒹굴하는 거예요. 늦잠 자고, 침대 위에서 과자 먹고, 계속 핸드폰만 보고요."

그래서 여름엔 남해에 데려가 놀이기구 5종을 태워주었다. 일찍 철든 어른처럼 지냈던 친구들도, 물에 풍덩 빠지니 아이가 됐다. 공 대표는 그런 추억을 늘려주고 싶었다. 한여름 남해에서, 겨울 스키장을 약속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엄마, 아빠랑 스키 탔어, 보드 탔어.' 방학 끝나고 애들이 얘기할 때 말 못하고 슬그머니 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왜 나만 이래야 해'하며 자괴감과 열등감이 될 수 있고요. 우리 때 나이키 신발하고 똑같은 거예요. 못 신으면 부끄러웠던."

그 약속을 지킨 거였다. 대아협은 1000만원 넘게 지원해 그룹홈 아이들 51명에게 '스키캠프'를 해줬다.

'넘어지면 잘 일어나는 법'부터 배웠다
넘어져도 괜찮다. 넘어질까봐 아무 것도 안 하진 않았으니.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사진=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준 남형도 기자
뽀드득, 뽀드득, 뽀득. 자기 키만큼 크게 느껴지는 스키를 신은 아이들이 눈 위를 걸었다.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듯 넘어질까 뒤뚱뒤뚱, 그러다 앞으로 쭉 미끄러져 꽈당하기도 했다. 그게 부끄럽고 싫었던 몇몇은 쥐며느리처럼 몸을 만 채 눈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무서움과 힘듦, 추위와 어려움. 손꼽아 이날을 기다렸던 아이들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넘어질까 봐 걱정되는지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삶에서 처음인 게 많을 나이. 다 괜찮다는 듯 강사가 말했다.

"잘 넘어지고 또 잘 일어나는 법을 배울 거예요. 열심히 배우면 돼요."

자주 넘어지고 자주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할 나이. 무섭고 두려운 마음도 자연스러운 거라고.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사진=남형도 기자

발이 너무 시리다고, 움직일 때마다 발 아프다고, 이거 언제 끝나느냐고. 아이들은 자주 투덜거렸다. 넘어졌을 때 몸을 옆으로 돌려 일어나는 법도 배웠으나, 맘처럼 잘 되질 않았다.

못하겠다고 주저앉을 때, 꼼짝없이 정지됐을 때. 엄마들이 애타게 바라보면서도 홀로 서라며 도와주지 않을 때. 아이들은 고민했다. 서아도 별수 없이 그랬다.

그리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옆으로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주저앉고 또 좌절했다. 그러다 마침내 일어났을 때 박수가 쏟아졌다. 영하 8도 추위에도 이마엔 구슬땀이 흘렀다. 서아도 환히 웃고 있었다.

배움이 느려도, 아이 곁을 쭉 지키던…'엄마'
스키를 배우는 속도가 느린 아이의 등을, 곁에서 가만히 지탱해주던 그룹홈 시설장님. 아니 엄마, 그리고 가족./사진=남형도 기자
실수할까 두려워하던 아이들이 넘어지는 것에 익숙해졌다. 홀로 또 일어나며 서아도 자신감을 채웠다.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 이제 우리는 앞으로 가는 법이 아니라, 속도를 줄이고 잘 멈추는 법도 배울 거예요."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걸 기대하던 아이들이 조급해하는 게 보였다. 놀고 싶은데 뭘 좀 해보지도 못하고 시간만 가고. 몸은 힘들고 추운데, 이젠 멈추는 걸 배운다니.

넘어져본 뒤에야 배운다. 걷는 법을./사진=남형도 기자

강사가 폴대를 끌고, 안 갈 거라 버티는 듯 에이(A)자로 멈추는 걸 배웠다. 배움이 빠르거나 이미 타봤던 몇몇은 초보자 코스로 갈 준비를 했다. 잘하는 그룹과 늦어지는 그룹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아, 재미없어!" 뜻대로 안 되자 참다못한 서아가 짜증을 부렸다. 친구들보다 늦어지자 조바심도 났으리라. 꽤 길어지는 시간 동안 아이 가족이자 그룹홈 시설장인 엄마가 곁에 늘 있었다. 등을 부축하고 괜찮냐고 물어보고 그마저도 사진으로, 추억을 찰칵찰칵 남겼다. 아이는 자꾸 넘어지느라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아빠에게 길바닥에 두 번 버려졌던…'다빈이' 이야기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와 그룹홈 시설장님(오른쪽)의 점심 식사. 공 대표는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란 말이 있는데,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며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의 빈틈을 메워주는 게, 우리가 꾸는 고래의 꿈"이라고 했다. /사진=남형도 기자
정오가 가까워 점심시간이 됐다. 평일인데도 식당은 몹시 북적였다. 김치찌개·돈가스·우동·짜장면. 온몸을 쓰느라 굶주렸던 아이들이 허겁지겁 취향의 밥을 주문해서 먹었다.

"엄마, 엄마 옆에서 밥 먹을래요."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여자 아이가 식판을 든 채 말했다. 정신없는 인파 속에서도 눈빛은 엄마를 찾았다. 다른 남자 아이는 동떨어져 혼자 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 그게 신경 쓰였던 이 대리가 함께 먹겠다며 곁으로 갔다.

공 대표, 14살다빈이(가명)의 그룹홈 시설장과 함께 밥을 먹게 됐다. 그때 다빈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해맑게 스키를 타는 모습만으론 차마 짐작할 수 없었던.

초보자 코스로 처음 나온 아이들. 이제부터 재밌어질 차례다./사진=남형도 기자

다빈이는 고작 10살에, 필리핀 사람이었던 엄마가 도망갔다.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키웠다. 상처 깊은 아이는 심하게 방황했다. 조부모가 감당이 안 된다며 아빠에게 보냈다. 아빠도 못 키우겠다며 휑한 길바닥에, 아이를 두 번이나 버렸다. 결국 방임학대로 신고되었다. 이후 키워줄 사람 하나 없어 그룹홈으로 왔다.

밥을 다 먹고 씩씩하게 식판을 들고 오던, 다빈이를 어쩐지 더 바라보게 되었다.

"됐어, 이게 나야!"…눈밭에서도 아이들은 자랐다
초급자, 중급자 코스도 이리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게 됐다. 자꾸 넘어지기만 하던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밥을 먹으니 기운을 차린 아이들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실패와 성취의 경험이 뒤섞인 눈밭으로 다시 나갔다. 기다란 스키를 벗었다가 다시 신었지만, 이미 여길 처음 왔을 때와는 달라져 있었다.

다빈이는 배움이 꽤 빨랐다. 일명 '에이스 그룹'에 속한 편이라, 초보자 코스로 가서 타게 됐다. 친구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걸 바라보던 공 대표가 말했다.

"다빈이는 좀 성취감을 안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거기에 신경 쓰고 또 다치는 게 마음이 아파요. 내가 나를, 나로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초보자 코스는 짧아 금세 위로 올라갔다. 다빈이가 처음,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엉거주춤, 위에서도 무언가 주저하는 게 보였다. "다빈이 파이팅!" 공 대표와 이 대리와 나는 그리 함께 소리친 뒤, 내려오는 아이를 멋지게 찍을 준비를 했다.

초급자, 중급자 코스도 이리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게 됐다. 자꾸 넘어지기만 하던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첫 번째 하강은 긴장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속도도 시원스레 나지 않았다. 처음은 뭐든 쉽지 않은 법. 결국 중간에서 멈춰 엉금엉금 내려왔다. 그럼에도 추억을 남겨주려는 우릴 다빈이가 애써 외면했다. 잘한다고 하는 우릴 보지 않았다.

그러나 다빈이는 다시 리프트에 올랐다. 다시 올라갔고, 다시 같은 자리에 섰다. 그리고, 믿기 힘들 정도로 능숙하고 빠르게 쌩 하고 내려왔다.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다 내려온 다빈이가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됐어, 이게 나야! 이게 나야!"

추운 눈밭에서도 아이들은 그리 자라고 있었다.

섬세히 바라봐야 할, 상처 입은 아이들
나란히 서서 프사용 포즈./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겉으로 봐선 잘 보이지 않았던 서아다빈이,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바라본다. 또 생각한다.

이를테면 '겨울방학의 추억' 같은 건 성취감 자존감과 연결돼 있단 것. 센 척하려 애쓰는 건 약한 마음을 감추기 위한 거란 것. 타인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것에서 애정결핍을 봐야 한단 것. 잘 보이지 않는 상처들. 그러니 그룹홈에서 지내며, 시설장들과 갈등도 불거진다.

이 대리가 서울의 오래된 그룹홈 시설장 얘길 들려줬다.

"시설장님 친자식하고 그룹홈 아이들하고 나이가 같았대요. 여행도, 명절에도 다 같이 다니시곤 하거든요. 근데 하루는 친자식하고 그룹홈 아이하고 싸웠대요. 그래서 친자식을 더 혼냈다는 거지요. 근데 그 아이가 시설장님께 이렇게 말했대요. '저는 어차피 지잖아요. 쟤는 원장님 자식이고 저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고요."

그러니 시급한 건 '심리치료'다. 그러나 비용이 비싸서 꾸준히 시키기 어렵고, 지원은 부족하다. 공 대표는 "심리치료는 더 나빠지지 말라고 보내는 건데, 갑자기 한 번 확 나아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걸 믿고 꾸준히 시켜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김장 지원금 6500원, 설 용돈 1만원…교육 격차도 점점 커져
아이답게, 하루 행복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라고. 공혜정 대표는 "이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것 하나가 거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그룹홈에 지원되는 현실은, 이처럼 틈이 많고 부족해 보였다. 이 대리가 말했다.

"김장 시즌에 지자체에서 지원금이 나왔었대요. 1인당 6500원씩이라고요. 안 줄거면 말지, 듣는데 속이 확 상하더라고요. 명절엔 특별 용돈이 나온대요. 영유아부터 19세까지 다 1만원씩이래요."

앞에 아무 것도 막을 게 없는 것처럼 시원하게 나아가기를, 눈밭에서 넘어지면서도 결국엔 해냈던 좋은 기억의 힘으로./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서울은 월세가 비싸서 접근성이 열악한 곳에 얻기도 한다고. 아내와 둘이 한단 시설장은 이리 말했다. "우리 둘만 살면 교통 안 좋아도 괜찮은데, 아이들은 매일 학교 다니는데 오가기가 힘들어요."

그러니 교육 격차 역시 관심이 닿지 않는다고. 한 그룹홈 시설장은 "학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애를 못 보낼 때 제일 마음이 괴롭다"고 했다. 사교육비는 거의 지원이 안 되므로.

이 대리는 "요즘은 학원 가서 친구들이랑 모여서 놀고 파티하고 커뮤니티가 되는데, 거기서 또 소외된다""시골에서 영어, 수학만 보내도 30만원씩 든다. 그러니 사교육을 못 받는 빈 시간 동안 핸드폰만 하고 있다. 교육 격차가 또 차별이 된다"며 걱정했다.

실컷 놀고 고단해 엎드려 있는, 이 평범한 모습이 왜이리 보기 좋은 것이었을지./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어묵 간식을 먹을 시간. 스키를 열심히 타고 온 아이들이 눈 위에 주저 앉았다. 한 아이가 스키 강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선생님, 헬멧 좀 벗어도 될까요?"

"헬멧 벗으면 위험한데, 왜?"

"너무 더워서요."

눈이 잘 뭉쳐지지 않는다며 만지작거리던 아이들. 시원하다고 했다./사진=따라서 눈을 만져본 남형도 기자

영하 10도 가까운 한겨울인데, 아이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이는 장갑을 벗더니 눈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 시원해."

어묵을 국물까지 다 먹은 다른 아이는, 고단한지 그대로 엎드렸다. 잘 놀고 피곤해하는 모습이 좋았다. 또 다른 아이는 "프사(프로필 사진)로 할 거니까 예쁘게 찍어주세요"라며 포즈를 취했다.

후원이 줄어드는 재정에도, 대아협이 아이들 겨울방학 추억까지 지원한 마음은 뭘까. 공 대표에게 물었다.

스키 선수처럼 잘 나온 사진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아침에 스키복 입을 때 한 아이가 엄청 삐딱하게 굴었어요. 옷 맘에 안 든다고, 안 입겠다고 짜증난다고요. 그런데 스키탈 때 보세요. 그 순간만큼은 너무너무 순수한, 본연의 아이 모습으로 돌아가잖아요."

때마침, 한 아이가 스키를 타며 아래로 시원스레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너무나 환하게 또 신나게 웃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먹고, 자고, 입는 것 외에도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걸 채워주는 것 말고도. 현실적으로 아이들의 세계에서 정말 뭐가 가장 필요한 걸까, 그런 걸 고민해야 다른 아이들과 발 맞춰갈 거라고. "야, 스키 타보니까 별 거 아니었어. 근데 엄청 아프긴 하더라." 그런 대화가 편하게 나올 수 있도록./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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