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윌버 보스마 “단맛 뒤에 감춰진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착취의 쓴맛을 잊지 마라” [김용출의 한권의책]
만약 당신이 지금 부엌의 선반에 있는 포장식품 몇 개를 꺼내서 성분 표시를 살펴보면,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식품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설탕은 현대인의 필수품이 됐다. 현재 서유럽 사람들이 소비하는 설탕과 감미료는 1인당 연평균 40kg이고, 북아메리카의 경우 1인당 60㎏에 육박한다.
5세기 전후, 페르시아의 군디사부르 병원에서 끓고 있는 사탕수수 즙에 라임이나 다른 알칼로이드를 첨가해 수소이온농도(pH)를 높임으로써 설탕 결정을 얻는 방법이 발견됐다. 사탕수수를 재배해 설탕을 추출하는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식어서 굳어가는 (사탕수수 즙과 첨가물의 혼합물) 덩어리를 삽으로 퍼서 밑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원뿔 모양의 용기에 담는다. 그러면 당밀이 떨어져 빠져나가면서 흰색 설탕 결정체만 남는다.”(20쪽)
사탕수수를 재배해 설탕을 추출하는 방법은 중동 지역으로 우선 퍼져나간 뒤, 이집트와 지중해 지역으로, 다시 중국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럼에도 사탕수수를 압착해 즙을 만든 뒤, 이 즙을 끓여서 고체의 설탕 결정을 만드는 수작업은 많은 시간과 비용, 노동력이 들었다. 그래서 이 시절 설탕은 왕궁 연회나 의식, 혹은 의학적 용도로 조금씩 사용되는 귀한 물건이었고, 상인들은 소량의 귀한 백설탕을 황제나 칼리파, 왕, 제후들에게만 팔았다.
설탕은 지중해 상인들을 통해서 유럽 시장에 공급되면서 유럽에서도 설탕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일부 유럽인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겨냥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설탕의 생산 및 유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419년, 포르투갈 사람들은 아프리카 서해에 위치한 마데이라 제도를 대서양 최초의 설탕 섬으로 바꾼 것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포르투갈에 이어서 스페인, 머지않아 네덜란드도 대서양으로 몰려 나갔다. 이들 유럽인들은 설탕 산업을 매개로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의 플랜테이션 농장과 아프리카의 노예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설탕 자본주의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즉, 아프리카 사람들을 납치해 대서양으로 건너게 한 뒤 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노예로 일하게 했다. 농장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설탕을 제조해 유럽은 물론 아시아 곳곳에 팔아서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카리브해와 아메리카는 16세기 이래 사탕수수 설탕의 중심지가 됐다.
특히 아프리카 사람들의 희생은 설탕 자본주의 세계 형성에서 결정적인 요소였다. 아프리카에서 납치돼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살아남은 아프리카인 1250만 명 가운데 적어도 절반에서 3분의 2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일요일도 쉬지 못하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고, 부족한 영양이 공급됐으며, 잔인한 처벌과 고문 역시 일상적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스스로 목숨을 하늘로 내던지려 했겠는가. 18세기 말 자메이카의 플랜테이션 농장주 윌리엄 벡퍼드의 기록이다.
1807년 노예무역에 이어 1834년 노예제가 폐지됐지만, 노예적 노동에 기반한 설탕 생산 유통 시스템은 계속됐다. 영국은 쿠바나 브라질에서 노예가 생산한 저렴한 설탕을 수입했고, 프랑스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쿠바에서 더 많은 노예를 이용해 설탕을 생산했다. 노예가 부족해진 아메리카 농장주들은 유럽 대륙의 가난한 지역 주민은 물론 중국인과 일본인, 조선인들을 데려왔다.
19세기 중반까지 설탕의 가치는 20세기의 석유와 맞먹었다. 아프리카, 라린아메리카, 카리브해, 아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 지역에서 가장 가치 있는 수출품이었다. 산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설탕은 이제 언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압착기, 보일러, 원심분리기를 갖춘 거대한 공장이 대량 공급된 사탕무나 사탕수수를 몇 시간 만에 흰색 결정으로 변화시켰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신간 『설탕』(조행복 옮김, 책과함께)에서 설탕이 대량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과정을 생산과 유통, 소비 및 지역적 측면에서 추적하는 한편, 현재와 같은 설탕 소비가 과연 바람직한지를 묻는다.
부정적인 영향도 누적돼 왔다. 먼저, 과잉생산과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개도국 설탕 생산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혔고 농장 근로자들을 저임금에 빠뜨리는 등 심각한 빈부 격차를 초래했다. 설탕의 생산 지역이 확대되면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환경을 파괴했다. 아울러 현대인들의 충치뿐만 아니라 비만과 당뇨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저자는 설탕을 둘러싼 이 같은 세계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법적이고 구조적인 변화와 함께 설탕의 과잉 소비 역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식품과 음료에 과도한 설탕 첨가를 금지하는 것은 절실히 필요한 변화의 시작일 뿐이지만, 이는 소비자의 돈을 아껴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크게 개선할 것이다. 설탕 세계의 과잉 생산과 과도한 착취, 과잉 소비라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으려면 입법부를 바꾸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497쪽)
요컨대, 책은 설탕에 관한 책이면서 인간이 만든 설탕의 역사이기도 하고 설탕을 매개로 한 세계사이기도 하다. 설탕을 매개로 세계가 어떻게 연결됐고 세계사가 형성됐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김용출 선임기자, 사진=책과함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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