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PICK!] ‘오토바이의 나라’ 베트남
전국에 오토바이 6500만대, 가구당 2대 이상
매연으로 숨 막혀…여행 땐 마스크 필수
‘점점 가까워지는 나라’
바로 베트남 이야기다. 베트남은 비행 시간이 길지 않고 물가도 저렴하다. 한류 열풍이 여전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도 우호적이다. 이런 이유로 단기 여행은 물론 한달 이상 장기 체류를 위해 베트남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자 역시 최근 1년새 여행과 취재를 목적으로 두번이나 베트남을 찾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방문하고 싶은 나라의 문화와 역사, 현지 분위기, 생활상 등을 미리 공부해두면 여행의 깊이가 달라질 터! 2024년 달력을 보며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도전! 베트남 한달살이 A to Z’를 연재한다.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도로 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오토바이 행렬이다. 베트남 사람들의 오토바이 사랑은 유별나다. 두명당 한대 이상의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오토바이가 도로를 점령해서일까. 베트남 대도시는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하노이나 호찌민에서 중장기 체류를 하겠다는 여행객·비즈니스맨이 있다면 열악한 교통환경부터 적응하는 것이 먼저다.
◆교통신호 무시하는 오토바이, 사고 안나는 게 신기할 따름=하노이나 호찌민 같은 대도시의 공항에 도착한 후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생경한 광경이 펼쳐진다. 도로 위를 활보하는 엄청난 숫자의 오토바이가 봄철 숭어 떼처럼 같은 방향을 향해 유영하듯 내달린다.
‘오토바이의 향연’은 새벽이라고 예외는 없다. 이곳 직장인의 출근 시간은 보통 오전 8시다. 그래서 그런지 6시만 돼도 골목마다 오토바이를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다.
한국의 도로 위에선 버스와 승용차가 주인공이지만 여기선 오토바이가 대장 노릇을 한다. 오토바이 홍수 속에 버스와 트럭, 승용차가 가물에 콩 나듯 보일 정도다.
베트남인의 오토바이 사랑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베트남 도로교통부 통계를 살펴보면 2022년 기준으로 오토바이는 6500만대를 넘어섰다.
베트남 인구는 대략 1억명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베트남의 한 가구당 평균 가족 수는 3.5명이다. 이를 고려해봤을 때 한 가구당 2대 이상의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도심 교통 상황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승용차나 택시를 타고 가면 전후좌우에 오토바이들이 바짝 붙어 있다.
오토바이 운전자의 실력은 가히 ‘신의 경지’에 다다른 듯하다. 대형차량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칼치기’로 끼어드는가 하면, 사람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차량과 간격을 유지하다 총알처럼 튀어 나가기도 한다.
작은 오토바이에 자녀 셋을 매달고 달리는 사람, 오토바이보다 더 큰 짐을 싣고 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위태로워 보여 손에 땀이 날 정도다.
◆한국엔 ‘콜택시’, 베트남엔 ‘콜오토바이’=베트남엔 왜 이렇게 오토바이가 많은 걸까?
답은 간단하다. 대중교통 체계와 도로 인프라가 취약해 개인용 이동수단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가인 승용차를 사긴 어려우니 저렴한 오토바이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베트남의 1인당 국민총소득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4010달러다. 이는 한국(3만5990달러)의 9분의 1이 조금 안되는 수준으로 원화로 따지면 520만원(1달러 1300원 기준)에 불과하다. 1500만원대인 한국산 경차를 사려 해도 월 소득을 한푼도 쓰지 않고 3년을 모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개인 이동수단으로 가장 만만한 오토바이를 선택한다.
베트남에선 오토바이가 택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택시를 부르는 어플리케이션(앱)엔 오토바이도 부를 수 있게 설계됐다. 당연히 택시를 이용하는 것보다 싸다. 스마트폰을 보다가 자기가 잡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 이유다.
◆사람이 먼저다? 아니 ‘나중’이다=베트남 대도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은 난도가 상당히 높다. 우리나라처럼 ‘사람 중심’의 교통질서가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도로 곳곳에 건널목과 신호등이 있지만 이를 신경 쓰는 차량은 거의 없다. 어떤 야박한 운전자는 녹색 신호인데도 “왜 자기 앞길을 막느냐”며 귀청이 떨어지게 경적을 울려댄다. 보행자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도로 중간에 미아처럼 놓였는데도 공안(경찰)은 본체만체한다.
그럼 어떻게 건너야 한단 말인가. 일단 녹색 신호가 안전하다는 생각부터 버리자. 먼저 운전자와 눈을 마주쳐 ‘길을 건널 테니 양보해달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멈추는 오토바이가 있으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식이다. 기자는 아예 초등학생처럼 손을 번쩍 들고 길을 건넜다.
차량간에도 교통신호를 무시하긴 매한가지. 가령 직진 신호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좌회전하는 운전자가 부지기수다. 신호를 지키면 더 빨리 목적지로 갈 수 있겠건만, 서로 먼저 가겠다며 사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으니 비염이 걸린 듯한 ‘차막힘’에 저절로 고개를 떨구게 된다.
◆오토바이 매연과 ‘하노이 스모그’=베트남 대도시엔 또다른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영국에 ‘런던 스모그’가 있다면 베트남엔 ‘하노이 스모그’가 있다. 최근 찾은 하노이는 체류 기간 내내 갠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흐렸다. 그만큼 대기 오염이 심각하단 뜻이다.
대기오염을 논하려면 다시 오토바이 얘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오토바이가 쏟아내는 배기가스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거의 모두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활보한다.
대기오염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하노이에 온 지 2년 가까이 된다는 한 기업 주재원의 말이다.
“달력이 바뀔수록 대기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예요. 낮에도 심한 스모그 탓에 양질의 일조량을 기대할 수도 없거니와, 탁한 공기를 마실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니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요.”
환경을 오염시키고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오토바이를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베트남 정부가 2030년까지 하노이 전 지역에서 오토바이 운행과 진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2025 도시경제 개발 계획’을 최근 승인했다.
하지만 이같은 희소식은 올해 베트남 도심을 여행지로 계획하는 이들에겐 먼 이야기다. 하노이나 호찌민에 오랫동안 체류하고 싶다면 폐 건강을 지킬 마스크, 사방의 오토바이를 감지할 수 있는 ‘초식동물 수준의 폭넓은 시야’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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