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한 차례상 괜찮다지만…"시어머님이 성균관보다 힘이 세다"
전문가 "'전' 올리지 않아도 무방 '홍동백서'도 근거 없는 예법"
[편집자주] 현대 사회를 일컬어 '인포데믹(infodemic)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번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 시작하면 막기가 어렵습니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수많은 정보 중 '올바른 정보'를 더 많이, 더 자주 공급하는 것이죠. 뉴스1은 '팩트프레소' 코너를 통해 우리 사회에 떠도는 각종 이슈와 논란 중 '사실'만을 에스프레소처럼 고농축으로 추출해 여러분께 전달하겠습니다. 제보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직장인 최모씨(30·여)는 지난 추석 한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내년 설에는 반드시 간소화된 차례상을 차리자"고 집안 어른께 말하겠노라고.
하지만 올해도 역시 지키지 못했습니다. "성균관에서 간소화된 차례상을…"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그게 무슨 예의 없는 짓이냐. 단 한 개도 빼먹어선 안 된다!"고 야단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최씨는 이번 설에도 전을 부쳤습니다. 고기전, 버섯전, 새우전 종류도 다양하죠. 그냥 올려서도 안 됩니다. 홍동백서(紅東白西)·조율시이(棗栗柿梨)는 지켜야죠. "왜 이런 걸 만들어가지고…" 괜히 공자님이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정부가 추산한 올해 설 차례상 차림 비용은 모두 31만9641원. 지난해보다 소폭 오르는데 그쳤지만 여전히 부담되는 금액입니다. 명절에 가족 여행을 떠나거나 "앞으로 차례는 지내지 않겠다"는 MZ세대도 점차 늘어나고 있죠.
이 때문에 성균관은 2022년부터 '간소화된 차례상'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과일, 생선, 술, 떡국 정도만 올리면 충분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성균관도 "명절에는 전을 부쳐야지"라는 철옹성 같은 믿음을 깨는데 애를 먹는 모습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어머니가 성균관보다 힘이 세다" "간소화해도 거기서 거기"라는 자조적인 반응이 수두룩합니다. 설을 맞아 팩트프레소 첫 번째 이야기로 '차례상 간소화'에 대한 팩트 체크를 준비했습니다.
◇간소화 차례상, 예의에 어긋난다?…"차례는 원래 간단"
차례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유교의 제례 규범을 집대성한 중국의 예서 가례(家禮)에는 '차례'라는 용어가 없습니다.
다만 1월 1일이나 정월에 조상에게 고하는 일종의 '정월 의식'은 나와 있습니다. 또 한식이나 단오 등 계절의 변곡점에 지내는 '속절(俗節) 의식'에 관한 내용도 담겨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오늘날의 '차례'가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월·속절 의식의 공통점은 모두 '간소하다'는 것입니다. 가례엔 정월 의식에 대해 "과일을 담은 쟁반 하나와 찻잔과 받침, 술잔과 받침을 상에 올린다"고 나와 있습니다. 속절에 대해선 "그때 나오는 음식을 바친다"고 되어 있죠. 성균관의 '간소화 차례상'은 역사적 근거가 있는 주장이죠.
반면 제사(祭祀)는 돌아가신 집안 어른을 추모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인 만큼, 다양한 음식이 차려집니다.
'간소화 차례상'을 시작으로 유교 문화 개혁을 이끌고 있는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차례상을 간소화하자는 건, 본래대로 돌아가자는 의미"라고요.
최 회장은 "사람들이 제사상 차림처럼 차례상을 만들면서 음식이 너무 많아졌다. 과거에는 음식을 집집마다 나눠 먹었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도 "지금 차례상은 상당히 거품이 끼어 있는 모습"이라며 "전통 예법에서는 차례상에 제사 음식을 차려 놓으면 '비례(非禮·예의에 맞지 않다)'로 간주했다"고 설명합니다.
◇전, 차례상에 올리지 않아도 돼요…'홍동백서' 역사적 근거 없는 예법
차례상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전'이죠. 전문가들은 이 역시 차례상에 올리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강조합니다. 가례에 따르면 정월 의식에는 술 또는 차, 그리고 과일만 올라가기 때문이죠. 김 연구위원은 "원래 차례에는 밥조차 올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차례는 물론 제사에서도 '기름'을 쓴 음식을 올리면 안 된다는 과거 문헌도 있습니다. 유교 경전 '의례(儀禮)'엔 "전물(奠物·제사 음식)로 쓰는 가루음식(糗)은 모두 기름에 볶지 않는다. 기름으로 볶으면 설만하게 되는 바,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돼 있습니다. '설만하다'는 무례하다는 의미입니다.
성균관도 지난 2022년 '전'을 제외한 간소화 차례상을 발표하며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를 지내는 건 맞지 않다"는 조선시대 유학자 사계 김장생의 '사계전서'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최 원장은 "차례는 원래 간소한 게 맞는데, 제사상도 좀더 간편하게 차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차례상의 공식과도 같은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역시 역사적 근거가 없는 예법입니다. 가례에서 예시로 든 제사상 맨 앞줄에는 '果(과일 과)'로만 되어있습니다. 이때의 과일은 '시과(時果)', 즉 그 시절에 맞는 과일을 의미합니다. 배와 사과를 고집할 필요 없이 딸기나 귤같이 요즘 제철인 과일을 올려도 된다는 것이죠.
실제 종갓집 설 차례상은 단출합니다. 떡국과 과일, 그리고 지역 특산물 정도가 전부입니다.
◇"여성 독박 노동, 유교 사상과 맞지 않아"
명절마다 제기되는 여성의 독박 노동 문제. 유교가 비판받는 지점이죠. 이 글을 쓰는 저 역시도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최 원장은 '유교의 몰이해'에서 나온 현상이라고 꼬집습니다. 그는 "과거엔 남성이 제사에 바칠 짐승을 사냥하면, 여성이 음식을 만드는 등 분업이 되어 있었다. 제사에 사용한 기물도 남성이 정리를 했다"고 설명합니다.
요즘에는 사냥할 일이 없어진 만큼, 다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 원장은 "장 보는 것도 같이, 음식을 만드는 것도 같이 해야 한다. 그게 올바른 유교 정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정신과 예법이 조화를 이룰 때 올바른 유교 문화가 확립된다고 지적하는데요. 지금은 잘못된 형식을 따르는데 급급한 나머지 차례의 의미를 되새길 시간조차 없어 보입니다. 차례상 음식을 줄이는 대신 가족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조상님들의 뜻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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