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라져도 까치는 산다? 통쾌"...거장 이현세도 매료시킨 AI
[편집자주]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K-웹툰이 AI(인공지능)라는 새로운 전환점을 만났다. 일부 반복작업을 AI가 대체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작가의 화풍을 AI에 학습시키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AI는 보조수단을 넘어 K-웹툰의 미래를 새로 그리는 창조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자세히 짚어본다.
[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만화계 거장이 AI(인공지능)의 바다에 직접 뛰어들어 화제다. '공포의 외인구단' '아마게돈' 등 수많은 히트 만화를 그린 이현세 작가(69)다.
이 작가는 웹툰 기업들과 손잡고 자신의 기존 작품을 AI에 학습시키고 있다. 그는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의 화실 겸 집무실에서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와 인터뷰를 갖고 지난해부터 야심차게 진행중인 '이현세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이 작가는 재담미디어, 라이언로켓과 손잡고 '이현세 AI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작업은 투 트랙이다. 이현세의 과거·현재·미래의 화풍을 AI에 학습시키는 것, 또 AI를 통해 '고교 외인부대'(1984) '카론의 새벽'(1994)을 리메이크(리부트)하는 것이다.
이 작가가 AI와 손잡은 이유는 한마디로 '까치의 영생' 때문이다. 자신은 사라져도 AI에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영원히 남고, 앞으로도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된 것이다.
이 작가는 "리메이크 작업은 잘 되고 있다. 언제든 발표해도 괜찮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단 "학습은 아무래도 아직은 힘드니까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재담미디어에 따르면 우선 기존 작품을 이미지로 입력한다. AI가 이를 바탕으로 '까치'를 그리면 이 작가가 수정보완해서 다시 모델링한다. AI는 다시 이전 작품들과 현재 모델링한 부분을 학습, 더 나은 캐릭터 모습을 도출해 낸다. 이 작가는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식과도 같은 캐릭터들을 웹툰 시대에 걸맞게 재창조하는데 열정을 쏟고 있었다.
그는 "AI가 이현세 작품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통쾌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현세의 생각과 화풍과 작품 세계관이 그대로 이어져서 (미래에도) 사람들하고 같이 소통한다는 것이 매력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AI의 비약적 발전을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했다. 이 작가는 AI가 만화, 웹툰 등 온갖 분야에 활용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미래"라며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쓰나미처럼 이미 와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갈등에 대해 "인터넷 만화가 등장했을 때 출판만화 작가들이 출판만화에 남을 것이냐 인터넷을 수용할 것이냐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 지금과 똑같다"고 말했다.
이 작가에 따르면 현재 웹툰으로 유명한 후배작가 또한 당시엔 출판만화계 입장에 서 있었으나 이내 인터넷시대에 적응했고, 그의 작품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등 IP 경쟁력까지 확보했다. 이 작가는 이 일화를 들며 "작가들이 AI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순간에 도태돼버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웹툰 작가들이 AI를 활용하기 시작했지만 결과물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견도 적잖다. 완성도는 물론이고, 인간의 미세한 창의적 감각을 과연 따라갈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 작가는 이에 대해서도 "시간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혁명의 목적은 완성도에 있는 게 아니고 혁명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돈만 보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대환영"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웹툰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속앓이도 있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 작가 혹사와 처우 개선 문제 등이다. 이 작가는 그 점에서도 거침없었다.
그는 "문화 '산업'이란 측면으로 보면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글로벌 시장이 열리는 순간 산업으로서 그 폭주를 막을 수가 없다"며 "카카오와 네이버에 사람들이 매달리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플랫폼이 혹사를 방조할 수는 있어도 혹사를 조장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작가에게 만화가이기 이전에 인생 선배로서 독자들에게 덕담을 부탁했다. 그는 "우리가 맞이해야 될 세상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삶은 번갯불처럼 빨리 지나가는 찰나와 같다. 하루하루 즐겁게, '툭툭' 치고 '껄껄껄' 웃으면서 즐겁게 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현세 작가와 일문일답.
-AI의 발전이 놀랍습니다.
▶인공지능은 어떻게 보면 판도라의 상자 같은 거죠. 인간은 오래전부터 진짜 이 인간의 몸 중에서 뇌를 가장 궁금해 했어요. 결국은 그 노력이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버린 거잖아요. 그러니까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버렸다고 보는 거죠. 이제는 인공지능에 대한 선택권은 인간에게 이미 없는 거죠. 신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고 그 세상의 결과에 대해서는 인간이 이제 책임져야하겠죠.
-거부하거나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말씀 같네요.
▶절대 못 돌아가요. 나는 거기서 살아남는 전쟁, 내 방식으로 전쟁을 치르는 중이에요. 지금 시점에선 내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봐요.
-젊은 작가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AI를 받아들인 걸 보면 '이현세를 그릴 수 있는 건 이현세뿐'이라는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저는 비교적 그런 쪽으로는 자유로운 사람이죠. 리메이크를 한다든지 영화, 드라마 판권을 주면 저는 전혀 거기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넘어가는 순간 그것은 그 사람들 작업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영화 '아바타'의 모든 컴퓨터그래픽을 만든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바타를 카메론의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AI를 활용한 웹툰 작가가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요.
▶낯서니까, 낯선 걸 지금 얘기하고 있을 뿐이지 그 혁명을 거부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이건 잠시 과정이에요. 인공지능이 그렸는지 사람이 그렸는지 10명이 그렸는지 금방 아무도 문제삼지 않을 겁니다. 독자는 재미만 즐길 것이고 그게 독자의 권리죠.
-AI 웹툰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박이라든지 혁명이라는 건 완성도에서만 오는 게 아니예요. 그런 면에서 보면 스타트업 기업들이 콘텐츠 제작의 기획이든, 완성된 결과물이든 뛰어드는 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찬성합니다. 단지 돈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죠.
-작가 혹사라든가, 플랫폼 의존 문제는 어떻게 보세요.
▶'산업'으로 보면 어쩔 수 없어요. 글로벌시장이 열리는 순간 이미 그 전쟁은, 폭주를 막을 수 없는 것이고요. 다만 플랫폼에게 그건 요구할 수 있죠. 작가주의라든지 또 중고 신인에게 수익의 일부를 투자를 해야 될 이유는 충분히 있죠. 중고신인이란 한 번 작품을 연재하고 두 번째 작품이 없는 경우를 말해요. 카카오에서만 그런 작가가 1년에 100명이 나와요. 플랫폼이 그런 작가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은 필요해요.
-만화 웹툰을 떠나서 자기 분야를 수십 년간 해온 선배로서 청년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요. 우리가 맞이해야 될 세상이 만만치는 않을 거예요. AI가 본격적으로 보편화되면 아마 우울한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나라도 어떤 사람도 AI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야 되니까 껄껄껄 웃으면서 하루를 즐겁게 사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죠. 삶이라는 건 찰나니까, 번갯불처럼 빨리 지나가니까 껄껄껄 웃고 즐겁게 살지 않으면 정말 바보죠. '내일이 또 올 거야' 하고 툭툭 치고 가버리면 좋겠어요. 새해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김성휘 기자 sunny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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