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1인가구 42만명…"ENFP라 더 외로워" 4인4색 명절 도전기
[편집자주] 1인 가구 750만 시대, 또다시 '명절'이다. 설렘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다. 대세가 된 1인 가구들은 이미 '자기 스타일대로' 명절을 쇠는 방식을 찾았다. 혼자 사는 취준생, 직장인, 어르신, 장애인, 외국인들의 '2024년 설 연휴'를 기록한다.
홀로 설을 보내는 이른바 '혼설족' 중에는 외국인 1인가구도 있다. 결혼 이민 등으로 한국에 이주한 외국인과 달리 유학생이나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들은 대다수는 나홀로 명절을 보내야 한다.
멕시코에서 온 로살린다 리베라씨(26)는 6개월째 한양대에서 한국학을 공부하고 있다. 멕시코에서도 한국학을 전공해 한국어가 유창한 그는 이번 명절에 '박물관 투어'를 할 생각이다.
로살린다씨는 한국학을 공부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유물을 볼 수 있는 박물관에 자주 가고 싶었다. 하지만 학기 중엔 시험 공부를 하고 수업을 듣느라 가기 어려웠다고 한다. 경기도 안산의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사는터라 서울에 자주 가기도 어려웠다.
유학생 입장에선 박물관 입장료도 부담이었다. 반갑게도 이번 연휴에도 국립현대미술관 4개관과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경복·창덕·창경·덕수궁이 무료 개방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도 무료 개방한다.
로살린다씨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박물관 투어를 다닐 것"이라며 " 제기차기와 윷놀이도 해보고 떡국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학을 전공했지만 한국에서 보내는 설날은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가 크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운현궁에서는 서울시 문화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오는 10일 12시 '설맞이 민속 한마당 행사'가 열린다. 제기차기, 윷놀이, 투호, 고무줄 놀이 등 전통 놀이와 체험을 무료로 할 수 있다.
걱정되는 점도 있다. 로살린다씨는 아직 한글이 어렵다. 홀로 떠나는 서울 나들이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이다. 그는 "내 MBTI는 ENFP(성격유형검사 결과 중 활동가 유형)"라며 "한국인 친구 없이 혼자 서울에 가는 게 외롭기도 하고 표지판이나 안내를 읽기 어려울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통계청의 2023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국내 외국인 상주인구는 143만명으로 전년 대비 12만 9000명(9.9%) 늘었다. 이중 1인가구는 41만2000명으로 전체의 28.8%였다.
한국인 연인의 '고향집'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있다. 페루 출신의 자스민 나자로씨(28)는 한국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있다. 2019년 입국한 자스민씨에게는 5년간 사귄 한국인 남자친구가 있다.
매년 설과 추석에는 남자친구의 할아버지댁인 경북 영덕에 갔다. 남자친구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6시간 걸려 도착하면 갈비와 양념게장, 잡채 등 명절 음식을 먹고 남자친구 친척들과 '고스톱'도 쳤다.
자스민씨는 "올해는 남자친구와 내가 바빠서 영덕에는 못 간다"면서 "이번엔 인천의 남자친구 외할아버지댁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올해도 자스민씨는 남자친구와 친척들에게 세배하고 덕담을 나누며 세뱃돈을 받을 예정이다.
자스민씨도 남자친구 가족과 일정이 없었다면 동대문구 신이문동의 원룸에서 설 연휴를 보냈어야 했다. 한국외대에 재학중인 외국인 학생 대다수는 연휴에 서로 모여서 파티를 하거나 주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연휴기간 동안 여행객이 몰려 숙박비가 비싸서 유학생 입장에선 서울에서 멀리 가기 쉽지 않다고 한다.
연인이 고향에 내려가 혼자 여행을 떠나는 외국인도 있다. 서울 강서구에서 마곡동에서 전기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기업에 다니는 우크라이나인 로만 야마노프씨(36)는 이번 설에 강원도 정동진으로 여행을 떠난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한국인 여자친구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로만씨는 "다행 미리 기차표를 사서 정동진에 갈 수 있다"며 "4년 동안 부모님을 못 봤는데 정동진에서 영상통화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오는 9일에 여행을 떠아냐하는 로만은 실질적으로 8일 오후 중으로 업무를 끝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외국거래처와 연락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로만씨는 "금요일과 월요일이 한국 휴일이라고 이미 오래전에 외국 거래 회사들에 공지를 해놨는데도 연락이 계속 온다"며 "아마 일이 계속 있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타지에서 고향음식을 먹으러 가는 이들도 있다. 성신여대에 한국학을 배우러 온 로살리아 가르시아 라모스씨(26)는 설 연휴에 오랜만에 서울에 간다.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근처에 살던 그는 월세가 너무 높아 경기도로 내려왔다. 김치찌개와 흰쌀밥 등을 주로 먹는데 이번 연휴엔 남산의 서울타워를 구경하고 멕시코 음식점에 갈 예정이다.
로살리아씨는 "얼마 전에 경기도 수원 근처로 이사를 왔다"며 "한국인들이 설을 어떻게 보내는지 구경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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