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공룡 설날은 어저께~고요~?” [설날엔 공룡]
설은 정말 특별한가? 이번 기고 글에서 김상욱 물리학자가 묻는다. 뜻밖의 사유가 누군가의 갑갑한 설 연휴를 버티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것 말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독자들에게 과학자, SF 작가, 〈시사IN〉 기자들이 명절에 즐길 만한 콘텐츠를 엄선했다. 설날과 까치에게 유쾌한 질문을 던지는 김상욱 물리학자, 박진영 공룡학자의 과학 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보여주고, 듀나 SF 작가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조명한다. 남다른 취향을 가진 〈시사IN〉 기자들의 추천작들에서 “올해를 버티게 해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순간을 만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설을 조금이나마 의미 있게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며, 아래 여섯 편을 싣는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왔다. 그런데 까치의 습성을 연구해보니 사실은 그 반대였다. 자기 동네에 낯선 존재가 나타나면 까치는 경계한다. 우렁차게 짖어댄다. 까치는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다. 설 연휴 때 친척들이 모이면 동네 까치들이 야단법석인 건 이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영장류들의 어려운 문화를 까치에게 알려줄 길이 아직 없다. 명절 기간 내내 까치는 긴장감 넘치는 날들을 보낸다. 알고 나면 달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까치에게도 설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지구상에 그 어느 까치도 이 사실을 모르겠지만. 까치들의 설날은 우리 설날보다 하루 더 빠르다. 딱 100년 전인 1924년에 작곡가 윤극영 선생이 지은 동요에 따르면 그렇다. ‘까치 설날’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다. 설 전에 준비하는 저고리가 까치 무늬와 비슷해서 생겨났다는 가설, 그리고 신라시대에 왕을 살린 까마귀를 위해 정해준 ‘까마귀의 날’이 와전됐다는 가설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됐든 상관없다. 까치는 설 연휴의 귀여운 마스코트가 돼버렸다. 포켓몬으로 치면 설 명절의 피카츄 같은 존재다. 길쭉한 두루미와 함께 연하장에 빠지면 섭섭한 녀석들이다.
까치는 사실 새이기도 하지만 공룡이기도 하다. 조류는 공룡의 한 무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인 1974년에 공룡학자 로버트 바커가 이 사실을 저명한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새를 공룡에 포함한 이유는 간단하다. 공룡을 정의하는 해부학적 특징이 모든 새에게서 관찰되기 때문이다.
골반뼈에서 허벅지뼈와 맞닿는 오목한 부위를 ‘흡반(acetabulum)’이라고 부른다. 고관절에 해당하는 부위다. 다른 동물은 이 흡반이 뼈로 막혀 있다. 하지만 공룡은 이곳이 뻥 뚫려 있다(〈그림〉 참조). 흡반이 뚫려 있는 동물은 지구상에 공룡뿐이다. 그래서 공룡학자들은 이것을 공룡을 정의할 때 사용하는 중요한 특징으로 삼는다.
공룡은 흡반이 뚫려 있기 때문에 허벅지뼈의 윗관절 부위가 안에 쏙 들어맞는다. 이런 구조는 공룡이 다리를 양옆으로 벌리지 못하게끔 해준다. 그래서 공룡은 항상 다리가 아래로 뻗어 있다. 아래로 뻗은 다리 덕분에 걷거나 뛸 때 도마뱀처럼 몸통을 오른쪽, 왼쪽으로 구부릴 필요가 없다. 잘 걷고, 잘 뛸 수 있는 다리 구조를 갖게 됐다.
약 6600만 년 전, 에베레스트산만 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 이 사건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고, 햇빛이 가려지자 식물이 죽고 생태계가 붕괴했다. 당시 생물의 75%가 멸종했는데 이때 공룡의 95%가 사라졌다. 살아남은 5%는 새였다. 이들은 1만 가지가 넘는 종으로 진화해 살아가고 있다. 공룡은 멸종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공룡 중 하나가 까치다.
까치밥이란 게 있다. 새들이 먹을 수 있게 과일을 나무에 남겨두는 풍습이다. 선조들은 몰랐겠지만 그들은 공룡과 공존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알고 나면 달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세상은 이미 ‘쥬라기 월드’였다.
박진영 (공룡학자·〈박진영의 공룡 열전〉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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