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찔이는 상상도 못할 일…"실비김치 사러 대전까지 갑니다"

안혜원 2024. 2. 1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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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닭·마라 등 매운맛 인기
SNS선 '매운맛 챌린지'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박모 씨(35)는 김치를 사 먹으러 주말에 대전까지 가곤 한다. 최근 몇년 사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매운맛을 강조한 ‘실비김치 챌린지’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면서다. 그는 평소에도 매운 라면이나 마라탕을 즐겨 먹는 ‘매운맛 마니아’다. 그는 “대전에서 매운맛 맛집으로 유명한 매운 두부조림을 먹고 매운 김치까지 사온다”고 말했다.

'신길동매운짬뽕', '송주불냉면', '디진다돈까스' 등은 최근 SNS나 유튜브에서 관심을 끄는 매운맛 음식들이다. 신길동매운짬뽕의 경우 청양고추와 중국 일초, 베트남 땡초 등 전세계에서 매운 맛을 내기로 유명한 각종 고춧가루를 넣어 만들었다. 송주불냉면은 서울 신정동에서 매운 맛으로 입소문을 타다가 전국에 60여개 매장을 낼 정도로 유명해졌다. 디진다돈까스도 미성년자나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주문을 받지도 않을 정도로 맵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처럼 20~30대 청년층에서 ‘극한의 매운맛‘을 추구하는 심리가 확산하고 있다. MZ세대 사이에선 ‘맵고수(매운맛 고수)’ ‘맵덕후(매운맛 마니아)’ ‘맵부심(매운맛 자부심)’ 등의 신조어도 생겨났다. 유명 인플루언서나 먹방 유튜버들이 매운 음식을 먹고 SNS에 인증하는 ‘매운맛 챌린지’가 활발해지면서 업계도 관련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한국인의 매운맛 선호는 그간 강도를 높여왔다. 라면류 제품에서 고추에 포함된 화학물질 캅사이신 농도를 측정한 '스코빌 지수(SHU)'를 비교해보면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2700SHU였으나 2012년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4404SHU, 2018년 나온 핵불닭볶음면은 1만SHU, 2022년 선보인 킹뚜껑 컵라면은 1만2000SHU에 달한다.

경기가 불황이면 매운맛 선호 현상이 강해진다는 분석도 있다. 스트레스를 매운맛으로 해소한다는 것. 실제로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은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해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완화해준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IMF 사태가 터진 1998년에는 매운 라면의 대표격인 신라면 매출이 20% 급증했다. 이 시기에 서울 강남에선 논현동 한신포차가 문을 열어 '매운 닭발 신드롬'을 일으켰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쇼크 때도 주춤했던 라면 소비가 늘었고, 2012년 유럽 재정 위기로 경제성장률이 둔화했을 땐 삼양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끌었다. 청년 체감실업률 20%대에 육박하는 최근엔 청년들이 불닭과 마라 등 매운맛에 열광하는 중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불닭볶음면의 누적 판매량은 53억 개에 이른다.

식품업계는 기존 제품보다 매운맛을 더욱 강화한 라면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의 매운맛 선호를 겨냥하고 있다. 농심은 기존 비빔면 제품인 ‘배홍동쫄쫄면’보다 3배 매운 ‘배홍동쫄쫄면 챌린지에디션’을 한정판으로 출시한다. 팔도도 국내 컵라면 중 가장 매운 '킹뚜껑'에 마라를 적용한 '팔도 킹뚜껑 마라맛'을 70만개 한정으로 선보였다. 이밖에 ‘신라면 더레드’, ‘맵탱’, ‘마열라면’ 등 매운맛 강도를 높인 신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매운맛 경쟁은 라면뿐 아니라 버거, 만두, 과자 등으로까지 확산하는 중이다. 버거 프랜차이즈 맘스터치가 내놓은 ‘불불불불싸이버거’는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 ‘캐롤라이나 리퍼’로 만든 크레이지핫소스를 넣었다. 롯데웰푸드는 스코빌지수 2만3000SHU에 달하는 특제 소스로 맵기를 끌어올린 ‘쉐푸드 크레이지 불만두’를 출시했다. 오리온은 ‘꼬북칩 매콤한맛’ ‘포카칩 MAX 레드스파이시맛’에 이어 ‘찍먹 나쵸 치폴레마요소스맛’을 내놔 매운맛 과자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매운맛 식품들은 일부 마니아층만 소비하는 이색 제품에 가까웠지만 최근엔 다양한 계층에서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매운 음식을 먹고 SNS에 인증을 남기는 게 젊은 세대에서 놀이 문화로 여겨지면서 먹방, 챌린지 콘텐츠 유행 등이 매운맛 열풍을 더욱 부추기는 분위기”라고 풀이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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