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곧 삶…여전히 모든 것을 갈아넣고 있는 김기동 감독

임성일 기자 2024. 2. 1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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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서울 신임 사령탑 김기동 인터뷰②]
김기동 FC서울 감독이 1일 경기도 구리시 GS 챔피언스파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4.2.1/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김기동 FC서울 신임 감독은 K리그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통산 출전기록이 501경기인데, 필드 플레이어 통산 2위에 해당한다. 1년에 꼬박꼬박 25경기씩 20년을 뛰어야 가능한 숫자다. 후배 이동국(548경기)에 의해 깨지긴 했으나 두 선수 외에는 지금까지 500경기를 넘어선 필드 플레이어가 없다. 그가 '철인'이라 불리는 이유가 스틸러스에 뛰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놀라운 탑을 쌓았으나 냉정히 말해 '스타'와는 거리가 있던 선수다. 자신의 평가다. 김기동 감독은 "차범근 감독이나 우리 세대 홍명보 감독과 황선홍 감독, 후배들로 치면 손흥민이나 이강인이 스타다. 나는 힘든 여건을 뚫고 지독한 노력으로 이 위치까지 온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괜한 겸손도 아니다.

김기동 감독의 선수 커리어를 찾아보면 최초 프로 입단은 1991년 포항으로 적혀 있으나 프로 데뷔는 1993년 유공(부천SK/제주유나이티드 전신) 시절이다. 그는 "내가 화려한 길만 걸었다면 선수들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연습생 출신이고 2년 반 동안 단 한 경기도 못 뛴 채 방출된 선수였다.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겠나"라며 웃었다.

이어 "내가 봐도 난 축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체구 자체가 그렇다. 키도 작지 그렇다고 빠르기를 하나 기술이 좋기를 하나. 머리는 좀 좋았지만"이라고 자신을 공격한 뒤 "진짜 노력으로 살아남았다. 덕분에 최고는 못 됐으나 어느 정도까지는 올라갈 수 있었다. 노력은 정말..."이라며 말을 삼켰다.

김기동 FC서울 감독이 1일 경기도 구리시 GS 챔피언스파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4.2.1/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길어야 15년, 더 뛰고 싶어도 못 뛴다

"솔직히 좀 답답하다. 프로 무대에 올라오기 위해 각자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입단'이 곧 목표 달성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절대 아니다.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매년 숱한 선수들이 들어오고 쫓겨나는 이곳인데, 프로에 왔다고 안주하면 될까.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들어오는 과정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한다."

사실 이 내용은 김기동 감독 뿐 아니라 많은 축구인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충고인데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아니, 초심을 유지하는 이들이 외려 소수다.

프로에 입단한 선수들은 대개 소싯적 자기 지역에서 공을 가장 잘 찬다는 소리를 들으며 커온 신동들이다. 그런 찬사 속 프로까지 왔으니 "난 역시 달라"라는 으쓱함이 찾아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데, 거기서부터 많이들 탈이 난다.

나이 불문, 외국인까지 포함한 고수들이 다 섞인 무리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야 선발 자리를 꿰찰 수 있는데 정작 진짜 출발선에서 노력을 하지 않으니 제자리걸음은커녕 밀려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잘했던 친구들은 좌절도 빠르다. 어려서부터 승승장구한 탓인지 실패로 받는 충격이 더 크다. 그런 연유로 스포츠판에는 '사라진 천재'들이 많다. 하늘이 준 능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김기동 감독은 이런 친구들이 안타깝다.

그는 "20살에 프로에 들어왔다고 치고 은퇴 무렵을 대략 35살쯤으로 가정하면, 길어야 15년이다. 15년 뒤에는 축구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 시간 안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쏟아서 갈아 넣어야한다. 그걸 왜 못할까 싶다"고 속내를 꺼냈다.

이어 김 감독은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한다. 선수 때 대충하다 아쉬움이 남은 애들이 은퇴 후에 조기축구회 가서 공차는 거라고. 난 현역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썼기 때문에 지금은 조기축구회고 뭐고 공차고 싶지 않다. 그럴 체력도 없다. 그 정도는 해야 미련 없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소는 좀 더 이어졌다.

그는 "누구든 일주일, 한 달은 간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100명 중 99명은 처음과 달라진다. 꾸준하지 못한 선수는 결국 도태된다"고 말한 뒤 "물론 어려운 문제다. 말이 쉽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지속성을 갖는다는 게 쉽진 않다. 하지만, 그것을 해내는 선수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다부진 목소리로 전했다.

그에게 물었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낸 이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냐고. 김기동 감독은 "그게 김기동"이라 했다.

구슬을 기막히게 엮어 보배의 가치로 바꾸는 능력을 지닌 김기동 감독이 FC서울의 새로운 사령탑이 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삶의 99% 축구, 그 안에 희로애락이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선수 시절을 보내진 않았으나 대신 누구보다 꾸준히 오래갔다.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스물부터 '철의 사나이'라 불리는 마흔까지, 21년 간 김기동은 한결같은 자세로 필드를 누볐다. 강산은 2번 바뀌었으나 김기동의 노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 선수 김기동의 가장 큰 자부심이다. 지도자 김기동의 가장 큰 재산이기도 하다.

"내가 현역 생활을 21년 했는데 그것이 지도자 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내가 만약 30살에 은퇴했다면 30살에서 40살까지의 경험치는 없는 것 아닌가. 내가 빨리 은퇴했다면 35살에 뛰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37살 때 가장 좋은 몸으로 우승하고 MVP를 받았던 경험을 못했을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감독은 당신이 연습생 신분으로 필드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기에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어린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했다. 불혹의 나이까지 필드를 누볐기에 35세, 36세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연령별 대표팀에 꼬박꼬박 들어가고 프로에서 바로 주전으로 뛰면서 화려한 스무 살을 보냈다면 출전이 간절한 신인들의 마음을 모를 거다. 베테랑의 고충도 안다. 고참들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은퇴할 때 됐구나' 삐딱하게 바라봐도 난 그냥 컨디션 문제로 여긴다. 1년 내내 몸 좋은 선수는 없다. 내가 선수 때 많은 것을 경험했기에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 아니까 보이는 거다."

남들보다 타고난 재주는 적었으나 축구를 향한 마음은 으뜸이었던 김기동. 원 없이 뛰어서 지금은 취미로라도 공차기 싫다는 그이지만, 사실 지금도 축구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넣고 있다.

모든 것을 축구에 쏟고 있은 김기동 감독. K리그판 '서울의 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지난 2020년 포항을 정규리그 3위를 이끌고 연말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동 감독은 "내 삶의 98%는 축구다. 1%는 골프고 1%가 가정"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참고로, 정규리그 3위팀 사령탑이 감독상을 받은 것은 K리그 역사상 그때가 처음이고 앞으로도 흔치 않을 사건이다.

당시 그의 발언은 "축구만 생각하고 살아서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고백과 함께 큰 화제가 됐는데 이제는 그 비율도 달라졌단다.

김기동 감독은 "축구가 99%가 됐다. 와이프가 자신과 가정을 위한 1%도 축구 쪽으로 가져가 서울의 영광을 위해 쓰라고 하더라"면서 웃었다. 골프에 대한 1%도 다시 측정해야한다. 그는 "예전에는 골프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는데 요샌 시간이 없어 골프 연습도 못하니 그것도 스트레스다. 이젠 골프도 안 친다"고 했다.

술도 마시지 않는다. 아내와 가끔 와인 한잔 하는 정도란다. 김기동 감독은 "술 마시는 게 즐거웠다면 꾸준히 했을 텐데, 난 그냥 몸만 힘들고 재미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꾸준하게 공들이는 건 축구뿐이다. 한 우물도 이렇게 파면 기가 찬다.

김기동 FC서울 감독이 1일 경기도 구리시 GS 챔피언스파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4.2.1/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김기동 감독은 "대화하면서 보니 내 삶은 망한 것 같다. 축구밖에는 꾸준히 뭘 하는 게 없다. 놀아본 적도 없고 지금도 놀 줄 모른다. 축구계에서 은퇴하면 나중에 정말 뭐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러다 죽을 때 후회할 것 같다. 내 아들(포항스틸러스 미드필더 김준호)은 장가도 늦게 가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좀 즐겼으면 싶다"며 마음에도 없는 당부를 전했다.

인터뷰 말미, 골프도 술 한잔도 아니면 스트레스를 어찌 해소하는가 물었다. 그는 "사실 다 축구 안에 있는 것 같다. 경기 이기면 스트레스 풀리고 지면 스트레스 쌓이고 그게 전부다. 한 경기 이기면 너무 좋고 기쁘게 다음 경기 준비한다. 지면 뭐... 결국 축구 안에 희로애락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내가 축구에게 양보하는 것도 이해된다.

2023년 겨울 극장가는 '서울의 봄'이 지배했다. 1000만 관객을 훌쩍 넘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2024년 3월 K리그에도 '서울의 봄'이 개봉한다. 은퇴를 고민했던 기성용이 다시 주장 완장을 차고 EPL에서 활약했던 '피리 부는 사나이' 린가드까지 가세했으니 흥행은 어느 정도 보장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성적인데, 메가폰을 김기동 감독이 잡았다니 일단 기대는 된다.

임성일 스포츠부장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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