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SLIM 사상 첫 그랜절 달 착륙…성공일까, 실패일까[코스모스토리]
지난해 9월 7일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H2A 47호기 로켓에 실려 달로 날아간 SLIM(Smart Lander for Investigating Moon) 달 착륙선. 일본의 세계 5번째 달 착륙국 지위를 위한 도전은 지난달 20일 0시쯤 결실을 맺었습니다.
슬림의 달 착륙 과정을 중계한 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는 모든 과정이 종료된 후 '슬림 달 착륙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20일 0시 20분(현지시간) 달 착륙 성공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발표당시 JAXA 연구진은 슬림이 월면에 착륙했지만 기체의 상단부에 장착된 태양광 발전모듈이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는데요. 전력 생산을 못하는 슬림은 배터리 충전을 못해 수시간의 방전 끝에 작동을 정지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요? 모두가 박수 치며 환호할 만한 월면 착륙 성공이지만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사뭇 어색한 기류가 가득했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미션의 끝 슬림 달 착륙선이 월면에 도달하는 순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착륙선 정상 작동이 안되는데 '성공'이라는 이유
보통 우리는 탐사선이 지표면 착륙을 성공했다고 한다면 정자세로 안정적으로 내린 뒤 기체가 정상 작동하면서 미션을 수행하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성공이라는 의미에 안정적인 작동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슬림은 착륙 기자회견 당시 탐사활동에 중요한 태양광발전 자체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수개월에 걸쳐 천문학적인 자본을 들여 달에 착륙선을 보냈지만 고작 몇 시간 밖에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를 과연 성공이라고 평가해야 할지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일본이 성공했다고 발표한 데는 슬림을 발사한 의미와 여러 단계의 성공 조건에 있습니다. 일본은 슬림을 발사한 이유를 '다가올 미래 달 탐사에 필요한 고정밀 착륙 기술을 실증하는 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밀착륙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기존의 우주 탐사선은 주로 평평하고 시야가 트인 넓고 안전한 지형, 즉 '착륙하기 쉬운 곳'을 탐사 후보지로 선정하곤 했습니다.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들여 진행하는 미션인 만큼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슬림은 '착륙하고 싶은 곳에 착륙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슬림이 착륙한 곳은 평지가 아닌 언덕이었습니다. 탐사대상이 항상 착륙하기 쉬운 곳에 존재하진 않을 것이기에 고도의 핀포인트 착륙기술은 미래 정밀탐사 미션에 반드시 요구되는 기술입니다.
일본은 슬림의 미션성공 단계를 △최소한의 성공(Minimum Success) △충분한 성공(Full Success) △초과 성공(Extra Success) 등 3단계로 구분했습니다.
먼저 △최소한의 성공은 달 착륙 하강을 실시하면서 정밀착륙에 필수적인 독자적인 항법을 검증하고 경량 우주선 시스템으로 궤도 작동을 성공시켜 달에 연착륙을 성공하는 것입니다. △충분한 성공은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기체의 작동 규칙대로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목표 포인트에서 100m이내 착륙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초과 성공은 착륙후 기체가 일몰때까지 달 표면에서 일정 기간 작동하는 것입니다.
25일 JAXA는 달 착륙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목표 포인트에서 약 55m 동쪽에 착륙했다"며 슬림의 주 미션이었던 100m 이내 정밀 핀포인트 착륙 기술을 실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착륙선 내부에 탐재된 멀티 밴드 분광 카메라(MBC)를 통해 2시간 30분 간의 기체 작동시간에 월면을 촬영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착륙미션의 초과성공 카테고리에 포함되지만 작동시간이 짧았던 관계로 슬림의 미션 달성도는 '충분한 성공' 단계에 해당됩니다.
일본 연구진이 미션 성공에도 머쓱했던 이유
슬림에는 2가지 소형 탐사로봇 LEV-1, LEV-2가 탑재돼 있었는데요. LEV-1은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오르며 월면을 이동하고 내장 통신기기를 통해 지구로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습니다. LEV-2는 원형 구체 모양에서 변형후 이동하며 광학 관측을 할 수 있는 변형형 탐사로봇입니다.
이들 기체는 슬림이 월면에 착륙하기 직전 사출돼 착륙선 주변에서 월면 방사선 측정과 착륙 지점 주변 광학 이미지 촬영을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미지 촬영 미션을 가진 LEV-2는 사출된 후 자율적으로 작동한 끝에 슬림 착륙선과 주변 월면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LEV-2는 자체적으로 지구에 데이터를 송신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는 LEV-1과 다르게 자체 내장 배터리로만 작동하는 LEV-2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작동할 수 있습니다.
태양광 발전을 하지 못하는 슬림의 작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LEV-2는 LEV-1의 장거리 통신기능을 경유해 지구로 이미지를 송신했습니다. 전력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소형 기기들의 콜라보 미션수행은 지구에 슬림의 현장 상황을 극적으로 알렸습니다.
얼마나 극적이었냐면 촬영한 이미지의 해상도를 낮춰 지구로 전송했지만 일부 데이터가 날아가 이미지의 일부가 손상됐을 정도입니다. 다행히도 손상된 부분이 이미지 중간부분이라서 연구진들은 이미지의 측면에 위치한 슬림의 착륙상황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사진 속에서 슬림은 초기 설계 당시 예측된 착륙 자세가 아닌 메인엔진 노즐이 위로 향한 채 물구나무를 서듯 거꾸로 착륙한 자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엎드려 절하는 도게자(ドゲザ)또는 물구나무로 절을 하는 '그랜절'을 연상하게 합니다.
태양이 떠 있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 태양광 발전 패널은 반대쪽인 서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착륙 후 태양광 발전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슬림의 착륙 당시 중계영상에서 보였던 계기판에서는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요. 왜 이런 결과가 발생했을까요?
뜻밖의 파손이 착륙이상으로 이어져
JAXA는 슬림의 착륙 결과 기자회견 당시 월면 착륙 직전까지 관측한 월면 이미지와 데이터도 함께 공개했습니다. 슬림의 월면 수직 하강은 두 개의 메인 엔진과 주변부 12개의 보조 노즐로 자세를 제어합니다. 월면의 표면을 레이더로 스캔하며 착륙하기 알맞은 위치로 이동해 하강하도록 설계됐죠. 엔진 노즐은 수직하강 호버링 상태에서 자세제어를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JAXA에서 공개한 착륙 호버링 월면 이미지에 익숙한 모양의 물체가 발견됩니다. 바로 메인엔진 노즐입니다. JAXA는 슬림의 수직 하강 단계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메인엔진 노즐 하나가 파손돼 분리됐고 착륙지점 주변에 떨어졌다고 전했습니다.
하강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며 균형을 잡기 위해 엔진 노즐의 분사가 이뤄져야 했지만 파손으로 호버링을 하던 기체의 균형은 무너졌고 예상 착륙지점을 벗어나 경사면에 '불시착' 같은 착륙을 하게 됩니다. 기체의 안정성이 무너진 탓에 월면 접촉과 동시에 자세가 기울었고 그 결과 거꾸로 착륙한 것처럼 물구나무를 서게 됐습니다. JAXA는 호버링을 하면서 착륙할 당시에는 목표로 했던 지점에서 3.4m 차이로 착륙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지만 이후 엔진노즐 분리로 인해 55m 떨어진 곳에 착륙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월면 착륙 중계당시 8비트 게임을 연상시키는 기체의 내비게이션에서 마지막 월면 접촉 후 기체가 거꾸로 넘어진 모양을 했는데 이것이 실제로 기체가 거꾸로 뒤집힌 상황을 말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확인했습니다. 중계 시청 당시에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극적인 재가동 성공…어떻게 가능했나?
슬림의 불완전 착륙으로 인한 태양광 발전의 부재로 미션 수행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선이 가득했던 가운데 기적적으로 태양광이 넘어진 슬림의 태양광패널에 닿아 전기를 생산했고 다시 가동에 성공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전력을 복구한 슬림은 재가동에 들어가 통신을 재개했습니다. 이는 달의 자전 주기에 따른 태양의 각도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구와 달리 달은 자전주기가 27.3일로 약 14일을 주기로 낮과 밤이 바뀝니다. 그만큼 태양의 각도 또한 느리게 변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에 슬림이 착륙했을 때 서쪽을 바라본 태양광 발전 패널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태양광이 도달했고 동면상태에 있던 슬림의 재기동이 가능했습니다.
JAXA는 슬림의 통신모듈을 가동하면서 내장된 카메라로 월면 관측을 추가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슬림이 가동할 수 있는 기간은 14일이 아닌 단 며칠 뿐입니다. 서쪽을 바라보지만 달의 일몰 기간 동안만 태양빛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슬림은 31일 일몰이 끝나자 모든 가동을 멈추고 다시 기약 없는 동면에 들어갔습니다. 다시 태양빛이 슬림을 바라볼 때 재가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업계의 관측은 회의적입니다.
그 이유는 달의 온도에 있는데요. 대기가 존재하지 않는 달에서는 낮에는 약 123도까지 뜨겁고 반대로 밤에는 약 -233도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온도차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슬림은 이러한 온도차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아 이미 기온 변화로 파손됐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모두가 머쓱한 가운데 두 손 번쩍 든 업체
슬림의 달 착륙과 탐사활동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모양새입니다. 미션 수행시간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미션에 참여한 상당수의 업체가 불충분한 성과를 거뒀지만 오직 한 기업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LEV-2 로봇을 제작한 '타카라토미(タカラトミー, TAKARATOMY)'입니다. 'SORA-Q'라는 이름이 붙은 LEV-2를 만든 이 회사는 본래 완구 제작회사였지만 극적으로 월면 이미지 촬영을 성공한 데다 LEV-1 경유 지구 송신을 성공시키면서 단숨에 고도의 기술을 보유한 메카닉 제조 회사로서의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타카라토미'는 슬림 발사 전 LEV-2에서 통신 스펙을 제외한 동형 모델을 출시했는데요. 미션성공에 힘입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의 우주 탐사는 넓어질 것
우주 탐사 역사를 돌아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로 미션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케이스는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슬림 달 착륙선 미션을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할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착륙 당시 문제가 발생해 불시착했지만 열악한 환경 속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당초 목표로 했던 성과를 이끌어낸 스토리는 앞으로 우주 탐사 역사에 내내 회자될 정도로 감동적인 스페이스 판타지입니다.
우주를 탐사하려는 인류는 항상 한정된 자원으로 효율적인 탐사활동을 벌여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규모의 문제가 있지만 슬림의 경우와 비슷한 상황 속에서의 탐사활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한정된 자원과 무한한 공간을 탐사하는 간극을 기술의 발전으로 극복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기술적인 도전이 계속 성과를 거둬 인류의 우주 탐사를 비약적으로 넓이는 그 과정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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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원철 기자 chwch@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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