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무장 갱단만 100여개.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엔 무슨일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Haiti)의 수도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젖먹이를 안고 대피하고 있습니다. 머리 위에는 살림 도구를 담은 포댓자루를 얹었습니다. 초등학생보다 어려 보이는 어린이도 무거운 짐에 힘겨운 모습입니다. 간단한 살림 도구만 챙긴 모습에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최근 아이티는 아리엘 앙리(74)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시위 못지않게 조폭들의 약탈도 국민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치안 불안 속에 정상적인 국가 기능을 잃어버린 무정부 국가가 됐습니다.
인구 1100만의 아이티는 예전부터 이렇게 황폐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사탕수수와 커피를 재배하는 유럽 최대의 생산지였습니다. 이를 위한 노동자가 70만 명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했지만, 이 과정에서 백인 농장주들이 죽거나 본국으로 도망쳐 사탕수수와 커피의 수출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아이티 사람들은 사탕수수와 커피를 재배하고 생산은 했지만, 수출 방법은 몰랐습니다. 쌓여가는 재고로 국가 경제는 급락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2010년에 닥친 지진으로 30만 명이 사망하고 18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합니다. 국가적인 재난 속에서도 부패한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각국에서 온 후원금을 횡령해 잇속을 채웠습니다.
2021년 7월, 아이티 대통령 조브넬 모이즈는 사저를 습격한 무장 괴한에게 살해됐습니다. 함께 있던 부인 마르틴도 팔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2년이 넘는 수사 끝에 아이티 검찰은 마르틴이 당시 암살에 관련돼 있다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목격자들과 진술이 엇갈리고, 그녀가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고 싶어 했다는 다른 용의자의 주장을, 검찰이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대통령 살해 이틀 전에 임명된 현 앙리 총리는 정당성에 대한 의문 속에도 대통령 권한 대행까지 맡았습니다.
앙리 총리의 집권 이후 최근까지 80여 명의 경찰들이 갱단에 의해 사망했지만 경찰 지휘부의 대처는 미온적입니다. 현재 아이티에는 무장 갱단만 100개가 넘고,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60%를 이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2022년 9월에는 아이티 갱단 G9(포르토프랭스에서 가장 강력한 9개 갱단 연합) 조직원들이 연료 저장고를 봉쇄하고, 연료 공급 차단해 도시 기능 마비 시키기도 했습니다. 갱단 두목이 방송에 출연해 앙리 총리의 사퇴를 요구할 정도였습니다.
지난 5일부터 열린 시위는 2024년 2월 7일까지 정권 이양을 약속했던 앙리 총리가 물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갱단들은 시위대를 가장해 슈퍼마켓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갱단은 세금 명목으로 주민들의 돈을 뜯어내고 살인과 납치, 성폭행을 일삼고 있습니다. 아이티 국민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과 자비심 없는 관료들, 그리고 갱단들에 둘러싸인 삼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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