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죽고 이상해진 아빠…자꾸 동물원 사겠다는데 ‘꿍꿍이’ 있었네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2. 10.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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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11]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슬픔은 극복의 대상일까.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2011)는 슬픔을 다른 각도로 보게 하는 영화처럼 읽힌다.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내와 사별하고, 그 슬픔을 넘어서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심지어 ‘동물원을 살’ 정도로 갖은 노력을 하지만 슬픔을 완전히 털어내는 데는 끝내 실패한다.

영화는 슬픔을 극복하고자 도전했던 주인공의 좌절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함으로써 어떤 슬픔은 우리의 일부로 인정하는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작가 벤자민 미의 실화를 담았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아내 잃은 남자는 왜 동물원을 샀을까
이야기는 주인공 벤자민 미(맷 데이먼)가 얼마나 도전적인 사람인지를 비추며 시작된다. 모험 작가인 그는 위험한 일을 직접 해보고, 그 경험을 글로 써서 먹고산다. 말벌 수천마리에 둘러싸이기도 하고, 독재자도 인터뷰했으며, 특급 허리케인 중심부로 날아 들어가 보기도 했다.
물론 동물원 운영 경험이 없는 벤자민 미가 혼자서 동물원을 이끌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해당 동물원에서 원래 일하던 사육팀장 켈리와 팀원들을 고용한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러나 벤자민은 정작 자기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자 무너진다. 투병하던 아내가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난 뒤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아내와의 추억이 묻어 있는 장소는 지나치기도 힘들어할 만큼 고통스러워한다. 의욕을 잃은 그는 충동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있다면 극복이 좀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가혹하게도 우리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14살 아들은 매일같이 반항성을 키우고, 7살짜리 딸은 점점 더 손이 많이 간다. 자기 슬픔을 추스르기도 어려운 벤자민은 자녀들을 넉넉히 감싸지 못한다.

“동물원을 샀다”고 말하는 천진난만한 딸의 모습. [이미지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는 양육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슬픔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아내와 시간을 보냈던 공간에서 멀어지면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도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벤자민은 여러 집을 구경하던 중 한 집에 꽂히는데, 그 집에는 운영이 중단된 동물원이 달려 있다. 동물원을 함께 인수하는 조건으로 그는 새 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하고많은 집 중 동물원 달린 집을 고른 것은 슬픔을 더 빠르게 벗어던지기 위해서다. 벤자민은 인간의 보살핌이 필요한 동물들을 돌보는 동안 자신과 자녀들의 상처도 어느 정도 치유될 것이라고 기대한 듯하다. 그는 로즈무어라는 이름의 그 동물원을 재개장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로즈무어 동물원을 산다는 아버지의 계획에 아들은 반대한다.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만 좋은 일일 뿐이라고 맞선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별이 남긴 상처는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았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명랑한 톤으로 연출됐다. 서투른 사육사였던 벤자민과 두 자녀가 동물들을 점점 더 잘 돌보게 되고, 허름했던 동물원이 점차 번듯한 모습을 갖춰가게 되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애초 관객이 이런 영화를 보며 기대하는 ‘성장 서사’가 이 작품엔 결여돼 있다. 아마도 아내를 잃은 뒤 더욱 강해졌을 그의 권위주의는 영화 후반부까지 지속되며 아들과 마찰을 빚는다. 동물원 일에 집중하는 동안 슬픔에 매몰되는 시간은 줄었지만, 아내와의 사별 이후 조금 어긋나버린 그의 성격은 완전히 제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아들 역시 계속해서 반항적이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부자가 서로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여전히 충돌하지만, 동물원 재개장을 위해 시간을 같이 보내는 동안 서로의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아들은 아내를 떠나보내고 다소 괴팍해져버린 아버지의 성격을 받아들이게 됐고, 아버지는 아들이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고 있음을 인정한다.

영화 속에 로즈무어란 이름으로 등장한 동물원의 실제 이름은 다트무어다. 영국에서 여전히 운영 중이다. 벤자민과 가족들은 9년 간 다트무어 동물원을 운영하다가 ‘다트무어 주로지컬 소사이어티’(DZS)라는 자선 단체를 설립하고, 해당 단체에 동물원을 기부했다. 벤자민은 여전히 DZS의 CEO로서 동물들을 돌본다. [사진=다트무어 동물원 홈페이지]
그토록 멋진 사람이 나와 대화해주던 시기가 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는 아버지가 두 자녀에게 자신이 엄마와 만난 첫날을 설명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식당을 지나치다 우연히 본 여자에게 마음을 뺏긴 벤자민은 용기 내 말을 건다. 대화 도중 진심으로 궁금해져 물어본다. “왜 당신처럼 멋진 여자가 나 같은 사람을 상대해주죠?”

이 장면은 절제미가 돋보이는데,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사람이 겪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묘사하기 위해 그의 눈물을 비추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대신 남자가 여자에게 받았던 사랑이 얼마나 벅찬 것이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그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남자의 슬픔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여러 실화 기반 영화가 그렇듯, 이 작품도 실제 이야기와 다른 부분이 많이 있다. 영화에서는 아내와 사별한 뒤 동물원을 산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벤자민 미는 아내가 투병 중이던 당시 동물원을 샀다. 아내에게 가장 적합한 거주지로 본 것이다. 아내의 간병과 동물원 재개장을 함께 준비했다. 실화에서나 영화에서나 벤자민 미는 아내를 깊이 사랑했던 것이다.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때로 온전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신 같이 멋진 사람’이 인생에 훅 들어와서 나처럼 부족한 사람과 상대해줬다. 그 자체로 황홀한 경험이었다. 여러 부족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나도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순간이었다.

‘그토록 멋진 사람’이 내 주위에 머물렀는데, 이제는 없다. 그 허전함을 인간이 온전히 극복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엄마와 처음 만난 이야기를 신나게 떠드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자녀들은 아버지의 아픔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어떤 슬픔은 죽을 때까지 같이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포스터. [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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