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료 줄이기 너무 어려워요[가계부 쓰다가]

김형욱 2024. 2. 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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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에 사회 '속병' 들고 있지만,
개개인 출산·육아부담 해법 '난망'
부모세대보다 더 잘 살게 됐지만,
올라간 눈높이에 보육비 부담 커
현금 지원만으론 부담 해소 한계,
좀 더 여유로운 사회 만들어지길…
2015년부터 8년째 가계부 쓰고 있는 월급쟁이 글쟁이의 소소한 경제이야기. 제 기사를 가장 많이 보는 ‘40대’, 특히 저와 같은 ‘보통의 급여생활자’를 중심으로 많은 독자와 돈 고민과 의견을 틈틈이 공유하려 합니다. 댓글, 이메일 등 통한 소통 환영합니다. <글쓴이>
(사진=게티이미지)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한국 사회가 끝 모를 저출산으로 ‘속병’ 들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작년 1~11월 출생아 수는 21만3572명. 이대로면 작년 출생아 수는 23만명 남짓이 될 것 같습니다. 8년 전인 2015년 53만8000명의 절반 이하입니다.

심각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나라입니다. 일할 사람을 부족해질 거고,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가 나올 겁니다. 그렇다 보니 정부와 각계 전문가가 현 상황의 심각성과 그 원인, 해법을 논합니다. 요즘 정치권에선 인구청 설립 얘길 합니다. 제가 속한 이데일리의 작년 연중 최대 행사 전략포럼 주제도 인구였습니다.

오늘은 사회적 담론은 뒤로하고, 저 개인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40대의 보통 맞벌이 근로자 가정 시점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에 대해, 최근 둘째를 포기하고 만 3세 첫째 아이만 키우기로 한 결정을 공유해보겠습니다.

돈 때문만은 아니지만…발목 잡는 건 결국 돈

절대적인 돈의 액수가 출산율 저하의 이유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집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1920년대생 조부모 세대, 1950년대생 부모 세대보다 1980년대생인 저희가 더 윤택하게 자랐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출산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통계청 합계출산율을 보면 1973년까지 4명 이상(4.07명)이던 게 1984년 2명 미만(1.74명)으로 떨어진 이래 꾸준히 줄어 2022년 0.78명이 됐습니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론 0.7명선도 무너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저희 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부모는 6남매, 부모는 2형제였는데, 저는 한 자녀뿐이니까요.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절대적 돈의 많고 적음 때문은 아니라지만, 결국은 현실적 돈 문제가 발목을 잡습니다. 우선 (조)부모 세대 때보다 윤택했다고 하지만 개개인이 안정적 일자리를 얻고 거기에서 자리 잡는데 좀 더 시간이 걸린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한 2000년대 중반에도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취업 문턱이 높았습니다. 저도 100곳가량 이력서를 넣은 끝에 서른 목전에야 취업했고, 이후 직장에 적응하고 연애하고 결혼할 때가 되니 어느덧 마흔이었습니다. 지금도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가 만만찮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제 개인 능력, 좋은 직장을 가려는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제 이하 세대 대부분이 겪는 현실입니다. 지난해 평균 첫 결혼 연령은 남자 기준 33.7세(여 31.3세)로 10년 전 32.2세(여 29.6세)보다 1.5세 늘었습니다. 관련 조사를 처음 시행한 1990년 기준 초혼 연령은 남 27.8세, 여 24.8세였습니다. 30여년 새 6세 가량이 늦어진 겁니다.

어찌저찌 결혼 후 애를 낳으면 현실 육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험상 출산휴가, 육아수당 등등 정부 지원도 많이 받았지만, 나가는 돈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증가 속도도 빨랐습니다.

제 가계부의 육아 지출 항목은 출산을 준비하던 해부터 만 3세가 될 때까지 5년 동안 8배 늘었습니다. 제 급여 중 보육료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출산 준비 땐 6.6%였으나 지난해 47.0%가 됐습니다. 번 돈의 절반은 애를 키우는 데 나간다는 겁니다. 맞벌이인 만큼 실제론 전체 가계수입에서의 비중은 4분의 1가량이겠지만, 그래도 만만찮은 비용입니다. 아이 있는 집은 피할 수 없는 층간소음 방지 매트 같은 사실상의 보육 비용도 적지 않습니다.

비용 절감 이론상 가능하지만…현실선 불가

물론 줄일 여지는 있습니다. 사실 세세히 따져보면 안 써도 될 돈도 많이 씁니다. 어린이집·유치원에서 하는 특별활동도 의무는 아닙니다. 예전 학교처럼 뭘 안 한다고 혼나지 않습니다. 방과 후 실내 체육시설에 다니는 대신 집 앞 놀이터에 가도 됩니다. 주말에 각종 체험을 안 해도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부가 ‘아이를 (남들보다 못하더라도) 적당히 키우자’는 의사결정에 합의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적게 버는 사람도 육아 비용 부담을 크게 느끼는 이유겠죠. 애를 낳는 게 당연했던 이전과 달리, 남들보다 못하게 키울 거라면 아예 낳지 않는 선택지가 존재합니다.

부모 중 한 명이 사회적 커리어를 포기해도, 보육 관련 지출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맞벌이가 기본인 사회입니다. 한 명은 돈을 벌고, 한 명은 집안, 아이를 돌보는 사회적 분업 체계는 이제 없습니다. 돈 문제도 있지만, 가치문제도 있습니다. 둘 중 누가 됐든 지금껏 쌓은 커리어를 포기하는 건 쉽지 않은 큰 결심입니다. 30~40대 근로자의 경력단절은 당장 몇백, 몇천만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 전체론 억 단위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부담입니다.

그런데 한 명뿐인 아이를 ‘부족함 없이’ 키우려다 보니, 맞벌이해도 돈이 계획대로 모이질 않습니다. 보통의 40대 직장인이 그러하듯 저희도 10년 이후의 사회적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데, 자녀가 이르면 초등학교, 늦어도 중·고교에 다닐 무렵 급격한 수입 감소를 경험할 가능성이 큰데, 그때를 대비해 돈을 열심히 모아놔야 한다는 걸 아는데, 이게 아는 만큼 잘 안 됩니다.

그저 지금 당장은 부족하지 않으니, 아이도 최대한 부족함 없이 키우려 하게 됩니다. 마음 같아선 아끼고 또 아껴서 아이가 컸을 때 방 하나 따로 줄 수 있게 집을 넓히고 싶은데, 생각처럼 잘 안 됩니다. 10년 후 자녀를 부족함 없이 키우는 건 둘째 치고, 제가 노인이 됐을 때 현 수준의 삶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더 나아가 노인 빈곤에 빠질 수도 있다는 걱정도 합니다. 물론 열심히만 산다면 아마도 저와 제 자녀의 삶은 큰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여러 고민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끝에 저희 집은 결국 둘째를 낳기를 고민 끝에 포기하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눈앞의 현금 지원보단…더 여유 있는 사회 만들어지길

이론상 제가, 우리 세대가 (조)부모 세대 때와 같은 ‘조건 없는 희생’을 전제한다면 다시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는 것도 이론상 가능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돈으로 살 수 없는 큰 가치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 이면엔 늘 이런 현실적 고민이 뒤따릅니다.

각계각층의 많은 담론을 보고 있노라면 현 초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큰 틀에선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과 함께 청년들이 1~2년이라도 더 빨리 경제적으로 안정할 수 있게 하고, 각 가정의 육아 부담을 줄여주는 것 말이죠. 출산 가정에 현금 지원책을 내놓는 건 쉬운 해법이지만 이것만으론 정답이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현실 부모로선 정부가 아무리 많은 걸 지원해도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이를 만족시키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할 테니까요.

사회 전체가 한두 세대에 걸친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를 기대해봅니다. 무엇보다 서로가 좀 더 여유를 갖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기를 꿈꿔 봅니다. 제 자녀 세대 때부턴 우리가 경험한 10대 때부터의 불필요한 출혈 경쟁 없이, 결혼·출산 후에도 지금보다는 경제적 부담이나 각종 사회적 부담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봅니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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