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원에 사온 전기 500원(비회원)에 파는 전기차 충전 플랫폼…전문가도 알기 어려운 요금 체계
충전요금 가이드도, 인프라 관리할 거버넌스 부재
산업부 “전기차 충전시설 관리 플랫폼 구축 등 ‘소비자 친화’ 정책 추진”
최근 고향 부모댁을 찾았던 김철민(38)씨는 전기차 충전을 하려다 애를 먹었다. 회원 가입 여부에 따라 충전요금 격차가 큰 데, 어플리케이션의 문제였는지 회원 가입이 안됐던 것이다. 김씨는 앱과 씨름을 하다 결국 비회원 요금으로 충전료를 결제했다.
충전 플랫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비회원 요금이 회원의 2배 수준이다. 국내 민간 충전기 설루션 점유율 1위인 ‘채비’의 경우, 완속충전 기준 1kWh 당 회원은 250원을 내면, 비회원은 500원을 내야 한다. 김씨는 “일반 승용차라고 치면 정유사 멤버십 카드 가입 여부에 따라 1리터당 1500원, 3000원을 오간다는 얘기”라며 “특정 플랫폼이 아니라 대부분의 전기차 충전 플랫폼이 이러한 요금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기반 작업으로 충전 인프라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플랫폼 간 가격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전기 사업자가 난립하면서 회원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비회원에겐 충전요금을 과도하게 받는 ‘폭리’ 문제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제기되면서다. 환경부가 20개가량의 전기차 충전 플랫폼의 멤버십 카드를 업체 간 교차 사용할 수 있도록 권고했지만, 이마저도 멤버십 회사에 따라 요금이 천차만별이다. 전문가들도 “정확한 요금은 충전이 시작되고 나서 모니터에 얼마가 찍히는지 봐야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혀를 내두른다.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총 3개의 시스템으로 운영이 된다. 충전 출력이 3~7kW로 운영되는 ‘완속’, 50~100kW인 ‘급속’, 100kW 이상인 ‘초고속’이다. 완충까지는 완속이 10시간, 급속 40~50분, 초고속 15~20분 소요된다. 충전요금은 장비나 플랫폼마다 차이가 있지만 통상 완속이 170~400원(이하 1kWH 기준), 급속이 360~500원, 초고속이 550원 정도 한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충전업체가 내는 요금은 전력판매단가가 적용된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평균 전력 판매단가는 151.58원을 기록했다. 전기차 충전 업체로선 151.58원에 전기를 사와 170~500원에 판매하는 셈이다.
전기차 업체가 회원·비회원가를 차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원 가입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자사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중이용시설 등은 법령에 따라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해야 하는데, 해당 업체들이 전기차 충전 설루션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가입 회원수와 시장 점유율”이라며 “시설 관리자 입장에선 설치비가 크게 차이가 없다면 다수의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전기차 충전업체들이 정부 지원금을 토대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설비 보급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하위 사업자들은 시장에서 도태돼 소수의 사업자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현재 충전요금에 대한 법령이나 가이드라인은 없는 상태다. 충전 플랫폼사마다 요금이 각각인 이유이다. 치열한 경쟁 구조에서 생존한 충전회사들이 경쟁제한 상황을 악용해 충전 요금을 대폭 올리더라도 이를 규제할 수가 없게 된다. 이와 관련, 전기차 충전 인프라기업 차지인의 대표인 최영석 원주한라대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교수는 “전기차 충전기는 설치 사업이다. 요금을 조금 올렸다고 해서 업체를 교체하는 게 쉽지 않다. 요금 결정권을 플랫폼 업체가 쥐고 있다는 의미”라며 “실제로 최근 한 아파트에서는 전기차 충전기 업체가 운영을 하다 계약가보다 가격을 올려 주민들과 마찰을 겪고 법정 소송까지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단계로 나뉜 전기차 충전 플랫폼 간 ‘로밍’ 요금제도 구간 단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밍 요금제는 A 플랫폼 회원 카드로 B 플랫폼을 이용할 때 책정되는 요금을 말한다. 요금 구간은 회원 요금과 비회원 요금의 중간 단계에서 설정된다. 로밍 요금은 각 충전 플랫폼 업체의 설치 충전기 수와 가입 회원 수 등을 기준으로 책정된다고 한다. 1kWh당 320원부터 485원 사이에 10개 구간이 있을 정도다. 환경부가 주도하는 충전 플랫폼 호환성 확대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제도이지만, 이용자들은 내가 가입한 카드의 로밍 요금이 얼마인지 사전에 알기 어렵다고 고충을 호소한다. 심지어 일부 충전 시설에선 비회원가보다 로밍 가격이 더 비싼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부 보조금이 충전기 설치에만 집중돼 있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는 전기차 이용에 필수 시설인 충전기의 보급을 위해 ‘친환경차 고시’를 제정해 공공시설 및 대중이용시설 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민간업체가 설치한 완속충전기 1대당 50만원, 급속충전기 1대당 500만~1000만원 등을 보조금으로 지원했다. 이러한 보급 확대 정책으로 2018년 약 2만7000기에 불과했던 국내 전기차 충전기는 2023년 11월 29만기로 5년 만에 10배 이상이 됐다.
이에 대해 최영석 대표는 “정부 지원이 충전기 시설을 보급하는 것에만 집중돼 있어, 업체들도 설치에만 관심을 두고 관리는 미흡하다”면서 “고장난 충전기가 오랜 기간 방치되는 것도 운영에 대해선 혜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전기차 충전량에 따라 ‘카본 크레딧’을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벤치마킹해 국내에도 도입, 충전기 업체가 기기 관리를 더 신경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와 요금 체계를 통합 관리할 사령탑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전기차의 최대 장점은 저렴한 유지비인데, 요금이 계속 오르다보면 연비가 좋은 내연 기관차보다 유지비가 더 비싸진다. 전기차가 1kWh로 4~6㎞를 주행한다. 1kWh 충전요금이 500원이라면 1500원으로 겨우 15㎞를 주행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 업체에 회원·비회원 차등 가격을 허용한 것은 충전 시설을 빠르게 늘리기 위한 일종의 인센티브”라며 “내년까지 전기차 충전시설 관리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소비자 친화적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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