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하고 후원금 돌려주고...억대 연봉 자진 삭감하는 의원들
국회의원은 매달 1300만원씩, 연 1억 5700만원의 세비를 받는다. 매년 1억 5000만원씩 후원금도 걷는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씩 후원금을 모은다. 억대 수입을 올리는 출판기념회는 별도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최근 사견임을 전제로 “국회의원의 억대 세비를 국민 중위 소득만큼 깎자”고 ‘제안’했다. 헌법을 고쳐야 폐지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에 대해서는 “포기 서약서를 쓰지 않으면 공천 주지 않겠다”며 강제로 밀어붙인 것과 대조적이다. 불체포 특권 폐지보다 세비 삭감에 대한 의원들의 반발이 크다는 방증이다.
세비를 삭감하려면 법률을 고처야 한다. 세비 삭감 여론이 높아질 때마다 국회는 “삭감하고 싶어도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며 상대방을 핑계 삼았다. 하지만 불체포 특권 폐지처럼 굳이 법을 고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서약서를 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 세비를 스스로 삭감하는 의원들도 있다.
◇스스로 세비 삭감하는 의원들
국회 사무처에서 법률에 따라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세비를 의원 개개인이 “나는 얼만큼만 받겠다”고 할 수는 없다. 대신 전액을 지급 받은 뒤 이를 개별적으로 사무처가 아닌 다른 곳에 기부하는 방식은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문진석 의원은 2020년 21대 국회 임기 시작부터 “세비 30%를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왔다. 작년 말까지 대한적십자사에 매달 세비 30%를 기부한 금액이 1억원을 넘었다. 여야가 법 개정을 하지 않아도 개인적으로 세비 30%를 줄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 재선 김병욱 의원은 20대 국회 당시 “세비 50%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를 실천해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했다. 민주당 재선 박정 의원도 지난 국회에서 2년간 매달 세비 일정액을 따로 모아 1억원을 기부했다. 4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3선 김민기 의원은 2006년 용인시의원 시절부터 꾸준히 세비 일부를 기부해왔다.
국민의힘 이종성·조수진·김미애 의원, 민주당 박찬대 의원 등도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현직 의원들이다. 이들은 모두 기부라는 방식을 통해 사실상 개별적으로 세비를 삭감했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2022년 국회 형사사법체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여야 대치로 특위는 9개월간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고 개점휴업 상태에서 종료됐다. 그러자 정 의원은 같은 기간 국회 사무처로부터 위원장 몫으로 받은 활동비 4000여만원을 반납했다. “일을 안 했는데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위원장 몫의 직급보조비 1000만원은 따로 모아 작년 6월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에 기부했다. 위원회 실적과 상관 없이 여야가 관행적으로 써왔던 활동비를 자체 절감한 것이다.
◇세비 자진 삭감 공약하는 후보들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세비를 자진 삭감하겠다고 공약하는 예비후보들도 있다. 국민의힘 박재순 경기 수원무 예비후보는 “이번에 당선되면 의원 임기 4년간 받는 세비 6억원을 지역 발전과 아동들을 위해 전액 기부하겠다”고 공약했다. 9대 경기도의원 출신인 박 후보는 이미 도의원 시절 세비 2억 5000만원을 전액 기부했다.
국민의힘 손범규 인천 남동갑 예비후보는 “의원 4년간 받는 세비 중 2억원을 기부하겠다. 세비 삭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세비 50%를 취약 계층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 도태우(대구 중남), 김희창(대구 달서을), 이영풍(부산 서동), 권우문(부산 기장), 정상모(부산 사하을), 전성하(부산 해운대갑) 등 영남권 국민의힘 예비후보 6명도 “꼭 필요한 권리가 아니면 국회의원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세비 삭감이 제도화 되기 전에 나머지를 기부하겠다”며 의원 세비를 50%만 받겠다고 공동 선언했다.
◇”정치 후원금 10만원씩만 받겠다”
여야의 법 개정 없이도 자발적으로 국회의원 특권을 포기하는 다른 사례도 있다. 서울 마포갑에 출마하는 국민의힘 신지호 예비후보는 “당선되면 정치 후원금을 10만원씩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18대 의원 출신인 신 후보는 “의원할 때 후원금을 받아보니 500만원 고액 후원금은 부적절한 민원이나 청탁 목적이 있더라”며 “돈 받고 그걸 모른 체 할 수도 없고 곤혹스러웠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연말정산에서 환급되는 10만원 이하로만 정치 후원금을 받겠다는 것이다.
신 후보는 예비후보 단계부터 이를 실천하고 있다. 총선 예비후보도 1억 5000만원까지 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 신 후보는 “귀찮기는 하지만 지금도 누가 50만원 후원금을 보내오면 계좌 내역을 확인해 40만원을 다시 돌려주고 있다”며 “이렇게 해서 후원금 한도를 채우기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한번 해보려 한다”고 했다. 그는 “정치 혁신의 핵심으로 정치인들이 ‘권력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당선이 되면 외국과 비교해 과도한 9명의 의원 보좌진도 절반(5명)만 채용해 국민 세금을 아낄 예정”이라며 “국회에서 여야가 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개인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정치 개혁부터 해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