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도 박상우도 질타한 전세제도, 폐지될 수 있나

CBS노컷뉴스 장관순 기자 2024. 2. 10.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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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은행에 월세 내기" "이제 수명 다했다" 장관들 문제제기
전세대출 규모 확대가 전세가격 재상승 야기하는 악순환
다만 월세 보편화할 때까지 장기간 존속 불가피
연합뉴스

"보증금 70~80%는 대출이다. 은행에 월세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다."(박상우 제8대 국토교통부 장관)
"갭투자를 조장하고 사기범죄가 판치게 됐다. 이제는 수명이 다한 게 아닌가."(원희룡 제7대 국토교통부 장관)

전·현직 가릴 것 없이 현정권 주택정책 수장들은 전세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현직 장관은 전세의 금융구조적 본질을 지적했고, 전직 장관은 전세의 범죄 취약성을 짚어냈다.

전세는 집값의 최대 70% 안팎 목돈을 보증금으로 부담만 하면 집주인에게 추가 임차료 지급 없이 거주하는 임대차 제도다. 집주인에게는 집을 내주고 확보한 목돈을 굴려 다른 곳에서의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준다. 월세 등 다른 방식으로 집을 빌릴 때 물어야 할 세입자의 임차료, 보증금만큼의 목돈을 대출받을 때 물어야 할 집주인의 이자, 두 비용이 상계된다.

이랬던 통념은 이제 달라졌다. 세입자는 임차료 대신, 보증금 대출받느라 생긴 은행 이자를 월세마냥 낸다. 저금리 탓에 집주인은 과거처럼 보증금 은행 예치를 통한 이자수익 실현이 어렵고, 전세값(집값)이 오를 때까지 '지급불능'을 고집한다. 시세 하락 때는 '깡통전세' 위험이 있고, '갭투자'에 전세사기 등 시장교란이나 범죄마저 횡행한다.

전국 세입자들의 전세자금대출 총량은 시중은행만 따져도 120조원이 넘는다. 5대 은행 합산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해말 현재 121조605억원이다. 연리 2%라면 대출자들은 매년 2조원대 이자비용을 떠안는 셈이다. 전세대출 잔액은 2016년말만 해도 34조원에 못미쳤다.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동향조사의 전세가격지수(전국, 계절조정)와 5대 주요 은행 합산 전세자금대출 잔액 비교. 각 원천자료 재구성


전세가격은 전세대출 추이에 맞춰 치솟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16년12월 94.8이던 전세가격지수는 2021년12월 102.94로 급등했다. 다만 최근 부동산 경기가 꺾여 지난해말에는 92.30으로 떨어졌다.

전세대출과 전세가격의 연동을 감안하면, 결국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받을수록 전세값(집값)은 더 오른 셈이다. 정부가 아무리 주택 매입자금 대출을 규제해도, 세입자가 받아 집주인에게 건네는 전세대출로 시중 유동성이 늘면 당연히 실물 주택의 값은 뛴다. 또 집주인들은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충분히 낼 수 있다는 인식으로 전세가격을 속편히 올린다.

이처럼 세입자가 빚을 내면 낼수록 내집 마련이 더 어려워지는 역설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 와중에 지난해를 전후해 전국적 빌라 전세사기, 금리상승과 부동산경기 침체에 따른 깡통전세 위험도 전세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불신은 수요 위축으로 이어져, 상대적으로 월세 거래가 활발해졌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임대차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4.9%나 됐다. 2013년 39.4%, 2021년만 해도 43.5%였던 비중이 2022년(52.0%) 이후 과반을 유지했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통계시스템 자료 재구성


세입자의 거주비용 경감이라는 전통적 기능이 희석되고, 가계부채와 집값을 키워 금융불안정을 야기하고, 전세사기 등 범죄 피해 우려로 월세에 선호도까지 밀리는 현실이 전세제도의 존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인위적 폐지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월세 비중이 과반이라지만, 거꾸로 45.1%라는 적지 않은 주택임차인들이 전세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한국주택학회의 세미나에서 "전세는 사금융일 뿐 아니라 주택 임대차 계약의 중요한 축이므로 제도의 존폐나 개선에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김진유 경기대 교수), "전세제도는 오랜 관행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폐지할 수 없다"(김영두 충남대 교수) 등 신중론이 나왔다.

문윤상 KDI 연구위원은 KDI포커스 기고에서 "금융제도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발달한 전세제도는 서민의 주거안정에 기여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며 "(전세 대신) 월세가 보편적인 임대차계약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얼마나 긴 기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작 전·현직 국토장관들도 문제제기 뒤 한발짝 물러섰다. 원희룡 전 장관은 "전세가 해온 역할을 한꺼번에 무시하거나,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박상우 장관은 "오랜 기간 관행적으로 형성된 제도인데, 당장 정부가 법을 만들어 전세를 못하게 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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