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 인생' 진성, 아버지 무덤서 쓴 곡이 운명 바꿨다[설 연휴, 주목!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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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무명 시절을 보낸 가수 진성(64)은 힘들 때면 아버지의 산소를 찾았다.
'진성 빅쇼 복(BOK), 대한민국'을 연출한 고세준 PD는 "진성의 삶이 곧 굴곡이 많았던 우리 서민의 인생사"라며 "애환이 깃든 그의 삶과 노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시청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이 쇼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김성환은 2016년 혈액암 투병으로 진성이 사경을 헤맬 때 그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위로하고 봉투에 돈을 넣어 용돈까지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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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무명 시절을 보낸 가수 진성(64)은 힘들 때면 아버지의 산소를 찾았다. 막걸리 한 병 사 들고 가 한 잔 가득 따라 봉분에 먼저 올린 뒤 남은 술을 먹고 신세를 한탄했다. 고된 삶에 지친 그가 숨통을 트는 방식이었다.
아버지 무덤에서 막걸리 한잔 걸치고 먼 산을 바라보던 어느 날, 진성은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야, 이 녀석아. 너는 그 계통에서 그렇게 오래된 녀석이 왜 아직도 헤매고 있느냐. 누가 그렇게 태클을 심하게 걸길래... 앞으로 태클을 거는 사람 있으면 이 아비가 막아주겠다"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눈에 보이는 건 아버지 무덤뿐. 그는 이 경험을 노랫말로 옮긴 뒤 멜로디를 붙였다. 노래 제목은 '태클을 걸지마'(2005). 이 곡을 낸 뒤 그의 노래 인생엔 서서히 볕이 들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43세 때 일이었다.
10일 방송되는 설 특집 '진성 빅쇼 복(BOK), 대한민국' 공연.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녹화 공연 무대에서 이런 사연이 펼쳐진 뒤 진성이 '태클을 걸지마'를 부르자 일부 관객은 눈물을 훔쳤다.
설을 맞아 진성이 나훈아(2020) 심수봉(2021) 등에 이어 KBS 명절 특집 쇼의 새 주인공으로 나선다. 1997년 '님의 등불'로 데뷔한 그는 '보릿고개' '내가 바보야' '안동역에서' 등의 히트곡을 낸 트로트 간판스타 중 한 명. 오랜 무명 시절과 암 투병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아 뒤늦게 전성기를 맞은 '7전 8기의 사나이'로도 불린다. '진성 빅쇼 복(BOK), 대한민국'을 연출한 고세준 PD는 "진성의 삶이 곧 굴곡이 많았던 우리 서민의 인생사"라며 "애환이 깃든 그의 삶과 노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시청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이 쇼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진성은 10여 곡을 열창했다.
나훈아 특집 쇼가 트로트 톱스타의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면, 이번 진성의 특집 쇼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공연이 될 전망이다. 쇼는 그의 인생을 주제로 3부로 구성됐다. '고마운 사람들'이란 주제로 꾸려진 3부엔 배우 김성환이 깜짝 등장한다. 김성환은 2016년 혈액암 투병으로 진성이 사경을 헤맬 때 그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위로하고 봉투에 돈을 넣어 용돈까지 챙겼다. 둘의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성환이 야간 업소를 누빌 때 진성은 '땜빵 가수'였다. 진성이 야간업소에서 처음 받은 1만5,000원. 노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면 포장마차에 들러 혼자 소주를 마시던 그를 김성환은 꾸준히 챙겼다.
진성은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까마득한 후배 정동원과 '보릿고개'를 같이 불렀다.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란 노랫말이 애달픈 이 곡엔 진성의 한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세 살 때부터 진성은 친척 집을 옮겨 다니며 컸다. 호적 정리가 안 돼 그는 11세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홀로 서울로 올라와 중국집에서 배달로 생활비를 벌었다. 리어카에 과일을 담아 팔며 가수의 꿈을 키워 온 그는 50만 원을 받고 부른 노래 '안동역에서'(2008)가 4년 뒤 갑자기 입소문을 타면서 '고속도로 휴게소 스타'로 급부상했다. 진성은 "10대부터 일용직, 노점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며 "제가 희망의 아이콘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며 "외길 인생을 살다 보면 분명히 나중에 밝은 빛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쇼에선 김호중, 이찬원 등이 특별출연해 진성과 함께 노래한다. 진행은 장윤정이 맡았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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