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다큐' 흥행 참패…이 수준으로 '디올백 다큐' 넘어서려 했나?
KBS가 윤석열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내보냈다. '다큐'라는 말은 KBS가 사용했다. KBS는 8일 보도자료에서 "이날 방송은 윤석열 대통령과 박장범 앵커의 대담과 함께, 윤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과 국무회의장 등 대통령실 내부를 직접 소개하는 다큐 형식으로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다큐 형식으로 구성했을 뿐 다큐는 아니다'라거나 '다큐'와 '다큐멘터리'는 다르다는 반박이 나올까? 사직에서 야구를 본 것은 '사직 구장'에서 야구를 본 게 아닌 것처럼?)
그렇다면 다큐멘터리의 관점에서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 대한 평가를 해볼까 한다.
2022년 11월 '도어스테핑'이 멈춘 지 1년3개월여 만의 언론 통한 대국민 소통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큐멘터리로 다가왔다. KBS는 "대통령실이 지난 2022년 5월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한 이래 대통령실이 방송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는데, '구중궁궐' 청와대를 벗어난지 무려 1년9개월여 만에 '소통의 상징'이라던 대통령실이 비로소 '최초 독점 공개'됐다는 걸 우린 새삼 알게 됐다.
잘 짜여진 것처럼 보이는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기실 수차례 보도됐던 내용의 반복 소개라는 데 그쳤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윤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언론이 수백건의 기사를 통해 소개한 내용이었고, 청와대에도 있던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용산 대통령실이라고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없었다. 전임 대통령들이 청와대 곳곳을 소개하던 '청와대 다큐'들과 이번 '용산 다큐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도 알기 어렵다. 인간극장을 방불케하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책장'의 사연이나 "부부 싸움을 안했다"는 새로운 팩트가 그나마 신선하다면 신선했을까.
내용 면에서 무엇보다 역시 가장 아쉬움이 남은 장면은 대통령이 '아쉬움'을 표하는 장면이었다. "이른바 파우치. 외국회사 그 뭐 쪼만한 백" 질문에 대한 것이다.
"제가 볼 때는 거기에다가 또 저도 마찬가지고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 관저에 있지 않고 이렇게 사저에 있으면서 또 지하 사무실도 있고 하다 보니까 자꾸 오겠다고 하고 해서 제가 보기에는 좀 그거를 매정하게 좀 끊지 못한 것이 좀 어떤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되는데 그렇지만 저한테 만약에 미리 이런 상황을 얘기를 했더라면 조금 더 저는 아직도 이 26년간 그 사정 업무에 종사했던 그 DNA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에 저라면은 조금 더 좀 단호하게 대했을 텐데 제 아내 입장에서는 뭐 그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물리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되고 좀 하여튼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아쉽다. 얼마 전 있었던 한국과 요르단의 경기 내용이 좀 아쉬웠고, CJ와 최동훈 감독이 야심차게 내놓은 외계인 시리즈가 좀 아쉬웠다. 스티브잡스 시대 이후에 나온 아이폰들이 좀 아쉬웠고, 군복무로 인한 BTS의 활동 중단이 하여튼 좀 아쉬운 것이다. 설마 광범위한 '애석함'을 뜻하는 영어의 "I'm sorry(아쉽다)" 용례를 따른 것이라고, '사과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의 아쉬움의 뉘앙스는 'It's too bad'(아쉽다)에 가깝다.
이를테면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 119대 29로 참패한 사안에 붙일 형용사로 '아쉽다'를 택하면 공감 능력을 의심 받을 일이다. 이태원 참사나 오송 참사 유가족들 앞에서 '아쉽다'고 말하는 것도 적절한 용례로 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 명품백을 받은 영상이 공개된 것은 '아쉽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 발생한, 불법으로 의심되는 상황을 두고 '아쉽다'고 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사정 업무에 종사했던 그 DNA가 아직도 남아있"다면 해선 안될 말이다. 과학기술 R&D 예산을 스스로 깎아놓고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미래를 준비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만큼이나 모순적이다.
현대의 다큐멘터리가 그 내용에 있어서 논리나 스토리의 완결성을 추구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이 다큐멘터리는 그야말로 실패작이다. 영부인의 명품백 수수를 '공작'으로 확고하게 규정한 대통령과, 그 대통령에게 한껏 예의바른 태도로 접근한 KBS, 그리고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차림을 감히 지적하지 못하는 참모들의 삼각편대가 만들어낸 그림이어서, 애초에 그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형식 면에선 어떨까. 흔히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다룬 것이라고 착각한다. 다큐도 작가의 창작물이라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달리는 기차를 피사체로 '선택'해 촬영한 것에서 영화의 역사는 시작했다. 다큐 사진도 마찬가지다. 전장을 누비는 다큐 사진 작가들은 가장 극적인 장면을 뽑아내 전쟁의 참상을 말 없이 이미지로 전 세계에 알린다. 카메라를 들고 어디를 갈지, 누구의 발언을 담아낼지는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 정한다. 선점된 프레임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본질이다. 현대에 와서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다.
KBS와 윤석열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실이 합작해 만든 이 다큐멘터리의 문제는, 그에 대비되는 또 다른 다큐멘터리가 강력한 흥행 라이벌로서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다큐보다 더 다큐같은 '김건희 영부인 디올백 수수 영상' 말이다.
마이클 무어가 2014년 토론토 인터네셔널 필름 페스티벌에서 밝힌 '다큐멘터리 필름 제작의 13가지 법칙(13 Rules for Making Documentary Films)이라는 강연 내용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큐는 첫째, '영화를 만들 듯' 만들어야 한다. 둘째, 다큐는 엔터테인먼트다. 세번째, 관객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해야 한다. <서울의 소리>가 '시계 몰카'를 동원해 촬영한 영부인의 300만 원 상당 크리스찬 디올 파우치 수수 장면은 현대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흥행 공식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
물론 <인간극장>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한 듯 보이는 KBS의 '대통령 다큐멘터리'를 마이클 무어의 '법칙'에 갖다 대는 건 무리가 있겠다. 장르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법칙은 <서울의 소리> 판 '디올백 다큐멘터리'엔 아주 잘 적용된다. 마이클 무어는 합법성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취재 방식, 자의적인 편집을 통한 사실의 재구성 등 많은 논란을 몰고 다니는 작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가 만든 다큐가 내포한 주장과, 그 주장에 대한 대중적 반향까지 무시되진 않는다. '악동'으로 불리긴 하지만, 마이클 무어의 다큐 제작 방법론과 그의 다큐에 담긴 철학은 현대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인정받는다. 그렇다면 대중은 KBS 다큐와 <서울의 소리> 다큐 중 어떤 다큐에 더 관심을 가지고 반응할까.
몰래 카메라는 다큐멘터리의 단골 방법론이다. 도미니크 앤느캥이라는 프랑스 언론인은 2006년 북한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 국제 구호기구 활동을 명목으로 입국 허가를 받은 그는 북한 주민들의 생생한 일상을 '몰래 카메라'로 찍어 이듬해인 2007년 1월 프랑스 M6 텔레비전 '독점 취재'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 일상화된 지옥'이라는 제목으로 내보냈다. 75분 짜리 다큐멘터리였다. 필수 의료품이 부족한 병원, 북한의 전력난과 식량난을 '몰카'로 폭로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건 가뜩이나 호시탐탐 공화국의 안위를 노리는 자들의 '정치 공작'일 것이다. 그리고 몰래 카메라로밖에 촬영할 수 없는 북한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을 것이다. 북한은 사과를 할 생각도 없고, 주민들의 삶을 개선할 능력도 부족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다큐가 '몰래 카메라'로 촬영해 보도한 그 가치에 주목한다.
이번 '대통령 다큐'는 앞선 흥행작 '몰카 다큐'를 뛰어넘을 정도의 파격적 형식이나 내용이 담겼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흥행작 '디올백 다큐'의 대항마로서 기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른바 파우치. 외국회사 그 뭐 쪼만한 백"은 결국 "300만 원 짜리 명품 크리스찬 디올 백"의 대항마가 되지 못했다. 이 다큐는 '엔터테인'에도 실패했고, '소통'에도 실패했다. 물론 이런 흥행 실패가 제작 단계부터 이미 예상 가능했다는 점은, 하여튼 쫌 아쉽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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