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70년생 정책실장이 가져온 조용한 변화
“누구라고? 성태윤 교수?”
지난해 말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내정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7~8년 전 기자가 세종시에서 경제정책을 취재할 당시 종종 자문을 구하던, 젊은 거시경제학자였다. 그의 이력에 관직과 관련된 것은 없었기에 다소 이례적이라고 느껴졌다.
더구나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는 대통령실 참모진을 이끄는 최상위 세 축(비서실장, 정책실장, 국가안보실장) 중 하나다. 관료 출신과 정치인 출신의 쟁쟁한 수석비서관들을 이끌어야 한다. 정무적인 노련함이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책 실무 경험이 없는데다 1970년생인 그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일례로 그는 열 살이나 많은 기획재정부 출신 경제수석비서관의 보고를 받고 있다.
그런데 취임한 지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은 지금, 70년대생 정책실장이 조금씩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벌써 열 번째 이어간 대통령의 ‘민생토론회’를 통해서다. 거대 담론이 아니더라도 “그래 이런 거 진작에 했어야지” 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의 예는 지난 8일 민생토론회에서 나온 자영업자의 고충 해소다. 윤석열 대통령은 “몇만 원이면 신분증을 위조한다는 데 (술과 담배 청소년) 판매자만 처벌받는다. 자영업자들은 피해를 보면서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면서 “자영업자가 신분증을 검사한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행정처분을 면제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맘먹고 속이는 데 장사 없다고 위조 신분증으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사는 청소년을 완전히 골라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런 청소년이 업주를 신고까지 하는 사례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종종 겪는 일로 통한다. 모르는 상태로 벌어진 일임에도 업주들은 큰 처벌을 받아왔다. 대부분 남의 일이라고 개선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았던 일이다.
이 안건은 역시나 준비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주제로는 소위 ‘깜이 안 되는’ 사소한 일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서다. 성태윤 실장은 대통령실의 직원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반응을 꼼꼼히 조사했고, 과감하게 안건으로 올렸다. 결과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은 정책이라는 호응을 얻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애초 입법 취지와는 무관하게 통신사의 배만 불리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 약속으로 휴대전화 가격은 벌써 내리기 시작했다. 대형 마트의 주말 영업 제한을 폐지하는 정책도 많은 국민의 불편을 덜었다.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대상을 넓히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경제 규모가 커지고 물가가 올랐는데도 세정당국의 우려로 쉽게 되지 않던 일이다.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닌 정책이라도 대통령이 토론회를 통해 직접 챙기고 신속하게 추진하도록 독려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것들이 진짜 민생 정책 아닐까. 토론회에서 국민의 질문에 답변하는 공무원이 고위 간부가 아닌 젊은 공무원으로 바뀐 것도 그가 주문한 것이라고 한다.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젊은이들의 반응을 조사하는 것으로 소위 체감할 정책인지를 판단한다는 그의 방식은 지금까지 잘 먹혀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1973년생)을 비롯한 70년대생의 실력발휘는 이제 시작되고 있다. 모든 국민이 보고 있듯, 한 위원장은 정치 초보임에도 어느 정치인보다도 시원하게 소신을 말하며 뚜벅뚜벅 갈 길을 가고 있다. 기업에서는 진작에 있었던 세대교체가 행정부와 입법부에서는 유독 늦었는데, 이들이 전면에 서며 뭔가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화나게 하는 일만 골라서 하는 정치, 그리고 쉽게 살아나지 않는 경제 때문에 답답하게 시작할 뻔하던 새해에 그나마 기대를 갖게 된 것은 이런 새 얼굴의 약진이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불과 60일 남았다. 구태를 못 벗어나는 양당의 기성 정치인들은 아직도 선거제도를 어떻게 할 지 정하지 못했고, 선거구도 확정하지 못했다. 경기장이 어디인지 경기규칙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국민은 그저 기다리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세대교체를 확실히 이뤄야 한다. 나부터 실천할 생각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더라도 나라를 위해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이 나온다면 그에게 투표하려고 한다. 구태 정치인이 지금처럼 득실대는 한 양당 모두 고쳐 쓰기 어렵다는 것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4월10일 선거 혁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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