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사령관 자른 젤렌스키 분열노출…푸틴은 서방언론 앞 자신만만
푸틴, 개전 후 첫 서방언론 인터뷰서 "러 패배 불가능"…휴전협상 촉구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그간 불화설에 휩싸였던 발레리 잘루즈니 군 총사령관을 8일(현지시간) 전격 경질하자 최악의 시점에 내부 분열상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에 비해 올해 대선에서 5선이 예상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첫 서방 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패배는 불가능하다며 미국에 협상 전제조건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등 자신감을 과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우크라이나군에 혁신과 즉각적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잘루즈니 총사령관에게 해임을 통보하고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장군을 후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대러 항전을 지휘해온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은 전쟁 초기 키이우를 방어하고 러시아에 점령됐던 영토의 약 절반을 되찾아 국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젤렌스키 대통령의 군사 정책에 공개적으로 이견을 밝히며 갈등을 빚다 경질됐다.
이번 총사령관 교체는 2022년 2월 개전 이후 가장 큰 지도부 개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잘루즈니의 경질이 최악의 타이밍에 이뤄졌다며 이로 인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궁지에 몰린 지도자가 될 위험이 있다"고 전망했다.
전쟁이 곧 3년 차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지도부는 최근 러시아의 공세에 고전하고 있다.
주요 무기가 고갈된 가운데 미국 등 동맹국의 추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내부 갈등도 다스려야 하는 등 여러 싸움에 직면해 있는데 이런 시점에 잘루즈니 해임으로 분열상을 극명히 드러내는 악수를 뒀다는 지적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우크라이나 전문가 오리시아 루체비치는 전쟁 초기에는 우크라이나가 "아드레날린의 힘으로 운영됐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실망이 있고 쓰라린 감정도 있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푸틴 대통령은 잘루즈니 총사령과의 해임 소식이 공식 발표된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공개된 개전 후 첫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는 등 자신감을 피력했다.
푸틴 대통령은 9일 공개된 터커 칼슨 전 미국 폭스뉴스 앵커와 인터뷰에서 미국을 향해 "러시아와 협상해서 합의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라면서 "당신들은 우크라이나 지도부에 싸움을 멈추고 협상에 나서라고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또한 "우리는 미국 지도자에게 '당신이 군사 행동을 중지시키길 원한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며 미국의 대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이 중단되면 휴전 조건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최근 러시아에 유리해지는 전황에 고무된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반응을 떠보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와 이를 지원해온 서방의 단일대오에 균열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통제권 유지 등 요구사항을 관철하고자 '휴전 협상'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나 침공 이후 서방의 각종 제재에도 군사적·경제적으로 잘 버티고 있다는 내부 인식도 푸틴 대통령의 자신감을 더하는 요인이다.
블룸버그는 젤렌스키의 잘루즈니 경질과 푸틴 대통령의 서방 언론 인터뷰가 별개의 사안이지만 몇시간 간격으로 진행되면서 전쟁 중인 두 국가 지도자의 이 같은 대조적 상황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선과 관련해서도 두 지도자의 입지가 엇갈린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3월 대선에서 딱히 적수가 없어 5선이 유력시된다. 서구 언론에서는 이번 러시아 대선이 선거라기보다는 '대관식'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오는 5월 임기가 끝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계엄령으로 모든 선거가 유예된 상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는 3월로 잡혀 있는 대선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미국 등 서방은 그의 통치 능력 입증을 위해 예정대로 선거를 치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푸틴의 3월 대선 승리는 이미 예견된 결론으로, 그는 표트르 대제 이후 최장기 집권자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반면 "변화를 불러일으키겠다며 집권한 젤렌스키는 올해 선거를 건너뛰겠지만 대선을 치르지 않아도 정치는 돌아온다"고 블룸버그는 논평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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