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 다마스 시동이 꺼졌다 [1인칭 책읽기: 이태원의 호호캄]

이민우 기자 2024. 2. 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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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한국작가회의의 「이태원의 호호캄」
도시 복판에서 사라진 사람들
누군가의 상처를 대신 말하는 무게
미국 애리조나 중부에 살던 사라진 사람들을 호호캄이라고 부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호호캄(Hohokam) 문화'라는 것이 있다. 피마 인디언의 말로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미국 애리조나 중부에서 서기 200년에서 1400년까지 살았던 이들을 뜻한다. 기다란 관개용 수로를 만들고, 갓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도자기 인형을 만들던 이들은 1400년에 갑자기 사라졌다.

이제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애리조나에 있는 '호호캄 스타디움'이란 1만2500석짜리 야구장의 이름과 그들이 걸었던 길들의 흔적뿐이다.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서울 이촌동에 사는 여자친구를 사귀며 용산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둘 다 밤늦게 업무가 끝나는 일이 많았기에 그를 집에 데려다주는 일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다마스를 타고 용산으로 향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용산에서 한강공원을 걷거나 한정판 음료를 찾기 위해 용산을 훑듯 지내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 이태원이다. 일부러 그곳을 피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발길이 향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내가 모는 다마스는 수동 기어 자동차였기에 오르막길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시동이 꺼지곤 했다. 바로 그날 오르막을 오르는 순간 빨간불에 앞차가 멈춰섰다. 시동을 끄지 않기 위해 반클러치와 액셀의 절묘한 힘 조절을 생각하던 나는 여기가 이태원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내 다마스의 시동이 꺼졌다. 나는 결혼식에 늦었다.

이야기는 쓰는 순간 특정한 상징과 의미를 갖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태원에도 '호호캄'이 있다. 2022년 10월 29일 난 촬영차 이태원에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기호 작가는 광주라는 공간이 상징화돼서 어떤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나에겐 이태원이 그런 공간이다. 어떤 기록이나 이야기는 뚜렷한 정체성과 상징을 가져 버린다. 나는 여기에 아무것도 보태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누구도 대변할 생각이 없었기에 그것을 최대한 삶에서 멀리하려고 했다. 그건 노력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워서 그날 이후 나는 USB, 이어폰 따위를 잃어버리곤 했다. 종종 홀로 앉아있을 때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지만 곧 무엇인지 기억해내지 못하곤 했다.

2023년 11월 20일 한국작가회의가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예술행동에서 발표한 시를 모아 추모시집 「이태원의 호호캄」을 출간했다. 나는 이 책을 받아들고는 애리조나에 있는 커다란 스타디움을 떠올렸다.

시집은 다소 뜨겁고, 확고했다. 그래서 조금 두려웠다. 호호캄인의 길 위에 세워진 거대한 콘크리트 스타디움처럼 생경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 아닌 다른 누군가는 어떤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어야 한다.

[사진 | 한국작가회의 제공]

내가 이 이야기를 적기까지 1년하고도 수 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문인들은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노래를 불렀다. 이유도 없이 사라진 호호캄 문화는 미스터리일뿐 누군가의 상처는 아니다. 그러나 이태원은 상처다.

나는 그날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날 나를 움직인 건 대구지하철 사건과 세월호의 부채 의식이었던 것 같다. 재난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 거기에서 기인한 어떤 상처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나는 여전히 '그날의 이태원'을 말하기 어렵지만 60여명의 문인들이 누군가의 상처를 대신 외치고 있다는 것에 위로를 느낀다. 그곳에 있었던 모든 이들도 그러하길 바란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Lab. 뉴스페이퍼 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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