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해결 안 돼” “엄마 너무 힘들어”···명절 앞 피해자들의 말·말·말
‘엄마 미안... 집주인이 돈을 안 줘 너무 힘들어.’
지난 7일 오후 7시 서울 지하철 5호선 화곡역 3번 출구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전수인씨(가명·36)가 이같이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설 명절 선물 세트를 들고 귀가하는 퇴근길 인파 사이에서 전씨는 1시간가량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전씨는 “차마 가족들에게는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며 “이번 명절에도 속으로만 끙끙 앓을 것 같다”고 했다.
전씨는 2020년 8월 전세보증금 1억500만원으로 강서구의 한 빌라 원룸에 입주했다. 2년이 지났을 때 구치소에 있던 임대인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고 전씨는 전세 대출을 연장하기 위해 은행으로 동분서주해야 했다. 2023년 6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피해자 결정문’을 받았지만 피해자로 인정을 받은 것일 뿐, 전씨가 입은 피해가 복구되진 않았다. 그는 보증금 반환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변호사와 법무사를 알아보고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고 폭발적으로 오른 은행 대출 이자도 큰 부담이라고 했다.
전씨를 비롯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새해 들어서도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릴레이 1인 시위를 전국 각지에서 이어가고 있다.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을 담은 특별법 개정안이 여당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돼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설 연휴 민심 잡기가 시작됐지만, 피해자들은 “‘전세사기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들어달라”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전씨는 “피해자 결정문을 받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그 이후에도 피해자들은 어떻게든 보증금을 복구하려고 두 발로 뛰어다녀야 한다”며 “전세사기 피해자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나가는데 그동안 뭔가 변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정치인들이 자기한테 이득되는 일만 하지 말고 두루 살필 수 있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서구 전세사기 피해자 김경재씨(가명·33)는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 누구에게도 전세사기 피해를 알리지 못했다. ‘악성 임대인’ 일당은 최근 사기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김씨는 이미 전세사기 피해로 인해 결혼을 3년간 미루고 경매 비용과 세금을 전부 부담해야 했다. 그는 “가해자들이 법적 책임을 지는 것과 별개로 전세사기는 사람을 경제적으로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김씨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의무인데 정치적 싸움을 이유로 이렇게 방치하다니 정말 안타깝다”면서 “(정치인들이) 매스컴에 나와선 ‘신경 쓰겠다’고 해놓고 정작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들어가면 ‘안 된다’라고만 하면서 특별법 논의가 제자리걸음이다. 이게 누구를 위한 정치고 나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 임명선씨(가명·39)는 “국가에서 정한 규칙대로, 면허를 가진 부동산이 하라는 대로 계약을 했는데도 사기를 당했다”면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나서도 대출 이자를 4%에서 2%로 감면받은 것 외에는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은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국가가 알려준 절차대로 하고서 사기를 당한 것인데 나라는 ‘개인 간 거래’라고만 한다”면서 “사람이 죽어야지만 법이 만들어지고 사람이 또 죽어야만 법이 개정되는 것이냐”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지난달 15일부터 서울·인천·부산·대전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특별법 개정 및 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여왔다. 오는 24일에는 ‘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추모문화제’를 개최한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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