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는 도심’ 어떨까…세계는 지금 ‘혼잡세’ 실험 중

최혜린 기자 2024. 2. 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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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위협에 맞서는 세계의 노력이 자동차를 향하고 있다. 최근 세계 주요 도시들은 대기 오염을 막기 위해 자동차 이용을 줄이는 실험에 나섰다.

미국 뉴욕시는 올해부터 ‘교통체증의 성지’로 꼽히는 맨해튼 60번가 인근 도로에서 혼잡통행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로써 뉴욕은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위해 통행료를 걷는 미국 최초의 도시가 됐다.

캐시 호철 뉴욕 주지사는 “자동차 배기가스는 도로 위의 산불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통 체증으로 낭비하는 노동 시간에 따른 손실이 약 200억달러(약 26조5900억원)에 달한다며 “완전한 낭비”라고 강조했다.

뉴욕시는 맨해튼 중심가로 진입하는 길목마다 톨게이트를 설치해 승용차 한 대당 혼잡통행료를 최대 23달러(약 3만원)까지 부과할 예정이다. 이렇게 걷은 세금은 지하철 정비 사업과 학교 공기청정기 설치, 시민 천식 예방 프로그램 등에 투입된다.

차가 빼곡히 들어선 뉴욕시 도로. 게티이미지뱅크

뉴욕과 비슷한 ‘혼잡세’를 2003년에 이미 도입한 영국 런던에서는 2019년부터 초저공해구역(ULEZ)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는 2005년 이전에 제조된 가솔린·디젤 차량이 도심에 진입할 경우 12.5파운드(약 2만원)를 징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배기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차량을 점차 줄이고,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과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자는 취지다. ULEZ가 시행되고 있는 런던의 자치구는 약 32곳에 달한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중요하고 옳은 결정”이라면서 “500만명의 런던 시민들이 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파리도 자동차를 두고 고심중이다. 파리는 2030년부터 휘발유 자동차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점진적으로 규제안을 마련해나가는 중이다. 최근에는 파리 시민이 아닌 외부인이 도심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주차할 경우 요금을 세 배 올리는 정책이 주민 투표에서 통과됐다.

런던의 도로변에 설치된 초저공해구역(ULEZ) 경계를 나타내는 표지판.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이 같은 ‘자동차 줄이기’ 실험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영국 런던 일대에서는 ULEZ 확대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거리에 나선 이들은 단속 카메라를 부수는 거친 행동을 보이거나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이라고 외치며 항의했다. 지난해 말 영국 물가 상승률이 11%에 달하는 등 생활비 압박이 커지면서 추가 요금을 징수하는 것이 ‘감당하기 힘든 지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에서도 맨해튼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을 하는 인근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해 8월 영국 런던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초저공해구역(ULEZ) 확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관을 들고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차 없는 도시’ 완성한 류블랴나…비결은 “주민 소통·공간 활용”

자동차를 줄이려는 세계의 도전은 이대로 좌절되고 마는 것일까.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반대 여론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다. 2007년 시장으로 당선된 조란 얀코비치는 ‘차 없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도시 중심부에 자동차를 위한 도로 대신 보행자를 위한 도로를 놓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이내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시청을 나서던 얀코비치 시장이 시위대에 뺨을 맞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이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슬로베니아 시민의 95%가 이 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정책 입안에 참여했던 류블랴나시 교통부 공무원 마티츠 소포트니크는 “모두가 도시가 침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면서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차 없는 도로’ 정책 시행 전후 류블랴나의 모습. 류블랴나시 홈페이지 캡처

스포트니크는 성공 배경으로 주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높아진 도시 공간의 활용도, 보행자 접근성을 개선하는 추가 정책을 꼽았다.

얀코비치 시장은 주민들을 직접 만나 세부 내용을 설득하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했다. 이후에는 차도 대신 들어선 보행자 거리에서 야외 콘서트를 여는 등 ‘도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할 기회를 제공했다. 소포트니크는 “단순히 차를 제거하기만 하고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지 못하면 사람들은 불만을 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도시 접근성을 해친다는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보행자 인프라’도 늘렸다. 도심에 13개의 다리를 추가로 건설하고, 인도를 평평하게 다져 보행자들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대중교통을 리모델링하고 자전거 도로를 조성해 대안적인 선택지도 제공했다.

오늘날 류블랴나는 번화가에서도 엔진 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대신 산책을 즐기고, 자전거를 타고, 삼삼오오 모여 사교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이고 있다. 2020년 유럽연합(EU) 조사에 따르면 대기 오염은 70% 감소했으며, 도보 이동량도 19%에서 약 35%로 늘었다.

류블랴나시가 보행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 건설한 삼중 다리. 류블랴나시 제공

전문가들은 류블랴나의 사례와 같이 정책의 이점을 말로만 들을 때보다 직접 경험할 때 여론이 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많다.

영국 런던대학교의 교통정책 교수인 필립 굿윈은 도로세 정책에 대한 여론을 분석했다. 그는 정책의 예고와 발표, 시행 단계마다 변하는 여론 지형을 분석했고, 이 그래프를 자신의 이름을 따라 ‘굿윈 곡선’이라고 명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정책을 지지하는 여론은 취지를 들었을 때는 대체로 높지만 세부 계획이 발표되면서 점차 하락하고, 시행 후에는 다시 상승했다.

심리학의 전망이론 등은 정책 발표 초반에 사람들은 이익보다 변화로 인한 손실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충돌을 완화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동반될 때는 얼마든지 우호적인 여론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서는 환경을 위한 개입이 단순히 ‘자동차를 줄이라’는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환경단체 ‘레스타이어’의 전무이사인 토니 레누치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바꿀 수 있도록 더 많은 재정적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배기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디젤 차량 등을 폐차하는 사람들을 폭넓게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기후리더십그룹 ‘C40 Cities’의 전무이사 마크 와츠는 “바르셀로나는 오염된 자동차를 없애는 사람들을 위해 3년 동안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했고, 스톡홀름은 버스 노선을 확장했다”면서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전환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진짜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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