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집, 설이라고 다를 바 없어요”…우리 동네 ‘주택 이외 거처’

김한울 기자 2024. 2. 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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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주택 이외 거처’ 12만 가구 …지하·옥탑도 10만 달해
전체 가구 중 ‘주택 이외 거처 비중’ 포천 1위 …가평, 연천 순
설 연휴를 앞둔 8일 수원특례시 팔달구 남수동 쪽방촌 골목을 한 할머니가 지나가고 있다. 김한울기자

 

“여기에 산 게 몇 년째더라…. 처음에는 외롭다고 느꼈지만 이젠 하도 익숙해져서 명절이라고 해도 별다른 마음이 들진 않아. 이웃들도 똑같이 하루하루가 비슷해. 우리가 설이어서 어디 갈 데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수원특례시 팔달구 남수동 부근 쪽방촌. 설 연휴를 목전에 둔 8일 오후 쪽방촌 입구에 들어서자 다닥다닥 비좁게 붙어 있는 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근 ‘통닭거리’에서 북적이던 인파는 어느새 사라지고 가끔 지나가는 트럭소리만이 적막 속에서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이곳에 얼마나 살았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는 70대 이 모 할머니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골목을 가볍게 지났다. 그리고 성인 남성이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낮은 현관문을 열더니 “얼마나 대수로운 얘기를 들으려고, 이제 그만 가”라고 했다. 이 할머니의 손에는 반쯤 남은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가족과 함께 지내며 평소에 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나누는 설 명절.

쪽방촌, 비닐하우스, 고시원 등 ‘주택 이외 거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북적거리는 연휴가 아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에 불과하다.

경기일보는 갑진년 설 명절을 맞아 경기도 내 주택 이외 거처 실태를 짚어보며 지역 사회 지원이 더해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봤다.

골목을 거닐다가 마주친 쪽문의 모습. 김한울기자

■ 늘어나는 ‘주택 이외 거처’···경기도에만 12만 가구

9일 주택법 등에 따르면 영구 또는 준영구 건물이면서 부엌과 한 개 이상의 방, 독립된 출입구를 보유하고 관습상 소유 또는 매매의 한 단위인 거처를 일반적으로 ‘주택’이라 칭한다.

반면 해당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한 가구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어진 집 이외의 생활 장소는 ‘주택 이외의 거처’라 부른다. 오피스텔, 기숙사, 특수사회시설, 판잣집, 비닐하우스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선 2005년부터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해 ‘주택 이외 거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이는 5년마다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 통계를 살펴보면 주택 이외 거처는 꾸준히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기일보가 한국도시연구소로부터 받은 ‘2005년~2020년 경기도의 시군별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 현황’에 따르면 경기도내 ‘주택 이외 거처’는 현재(2020년 기준) 오피스텔을 제외하고 12만1천271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2005년 1만8천830가구과 비교하면 6.44배 늘어난 수치다. 경기도내 31개 시·군별 평균적으로 3천911가구가 주택 이외 거처에 살고 있다는 의미다.

경기도 내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자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2005년 0.6%, 2010년 0.8%, 2015년 2.2%, 2020년 2.4% 등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 3가구 중 1가구 ‘저소득층’…대부분 혼자 사는 50대 이상

이러한 ‘주택 이외 거처’는 ‘주택’에 비해 주거비가 저렴한 축에 속해 상대적으로 재정 상황이 취약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2년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 이외의 거처 가구민 10명 중 6명 이상(66.3%·28만5천285가구)이 소득 1~2분위인 ‘저소득층’에 속했다.

이들이 머무는 주택 이외 거처의 면적은 6.5~14㎡이 14만9천425가구(33.7%)로 제일 많았다. 이어 ▲14~26㎡ 11만9천708가구(27.0%) ▲36㎡ 이상 9만8천852가구(22.3%) ▲26~36㎡ 5만5천149가구(12.4%) ▲6.5㎡ 미만 1만9천992가구(4.5%) 순으로 나타났다.

3.3㎡가 1평임을 고려하면 주택 이외 거처의 거주민 3명 중 1명이 2∼4.2평 남짓의 공간에 사는 셈이다.

또, 거주자들의 평균 연령은 52.5살로 집계됐다. 연령대별로는 만 60세 이상(40.0%)과 만 50~60세 미만(22.8%)가 절반 이상이었다.

평균 가구원 수는 1.4명으로 1인 가구(32만1천516가구·70%)가 제일 많았다. 가족 단위보다는 ‘나 홀로’ 사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2005~2020년 사이 도내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 현황. 한국도시연구소 제공

■ ‘전체 가구 중 주택 이외 거처’ 포천 8.4%로 1위…가평>연천 뒤따라

경기도 어떤 시·군에 주택 이외 거처가 많을까.

‘전체 가구 대비 주택 이외 거처’ 비율을 분석해 본 결과, 1위는 포천으로 전체 가구의 8.4%(5천22가구)가 주택 이외 거처로 나타났다. 이어 가평(6.2%·1천595가구)과 연천(5.2%·936가구) 순으로 높았다.

반대로 전체 가구 대비 주택 이외 거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광명(1.0%·1천85가구), 의왕(1.2%·724가구), 구리(1.4%·1천47가구) 순이었다.

경기도 전체 가구 대비 주택 이외 거처 비율이 3%임을 고려하면 포천이 2.8배, 가평이 2.1배, 연천이 1.7배씩 높은 비율이다. 반대로 광명, 의왕, 구리는 각각 0.3배, 0.4배, 0.5배 더 낮았다.

쪽방촌 내 나뭇가지들과 버려진 각종 쓰레기들이 한데 뒤엉켜 있는 모습. 김한울기자

이번에는 경기도를 남부와 북부로 나눠 비교해봤다.

경기북부, 경기남부를 각각 10개, 21개 기초지자체씩 나눠 전체 가구 대비 주택 이외 거처 평균 비율을 내보니 북부는 3.74%, 남부는 2.52%로 확인됐다.

북부의 주택 이외의 거처 비율이 남부보다 더 높은 이유로는 남부 지역에 비해 개발이 덜 이뤄졌고 열악한 정주 여건을 가진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전체 가구 대비 주택 이외’ 거처가 아닌 총 가구 수만 봤을 때는 도내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수원이 1만1천223가구로 가장 많았다.

2005년 699가구였던 수원의 주택 이외의 거처는 2010년 3천668가구, 2015년 6천578가구로 뛰더니 2020년 1만1천223가구를 기록하며 15년 만에 16배 이상 늘어났다.

뒤이어 화성이 1만161가구로 2위, 성남이 7천145가구로 3위를 기록했다.

■ 주거안전 담보 못하는 비주택 가구 ‘22만’···“관심 가지고 지켜봐야”

비단 ‘주택 이외 거처’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하(반지하)와 옥탑(옥상)은 행정상 주택 이외 거처에 포함되지 않지만 낙후 주거 공간으로 손꼽히는 거처다.

해당 거처의 앞 글자를 딴 ‘지옥’ 가구만 경기도에 10만 가구가 넘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도내 지하(반지하)방은 8만8천936가구, 옥탑방의 수는 1만1천567가구다.

앞서 주택 이외의 거처 12만 가구와 합치면 도내에만 약 22만 가구가 ‘주택이 아닌 집’, 즉 ‘비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주택 거주자에 대한 지역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불안한 환경 속에 살아가는 비주택 거주자들에게 관심을 두고 꾸준히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으면 한다”며 “우리 주변에 있는 취약계층을 지역 사회에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중심이 돼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주임교수 역시 주택 이외 거처 등의 거주자들을 이주시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보탰다.

임 교수는 “주택 수가 부족해 단순 이주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궁극적으로 주택 이외의 거처 수를 줄이고 더 많은 주택 확보에 나서야 한다”며 “‘이주-자립-정착’이라는 정책 방향을 유지하면서 주택 이외의 거처 수를 서서히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한울 기자 dahan810@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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