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국제 바칼로레아)와 체덕지(體德智)가 제주대 발전의 초석”
한국교육 정상화를 위한 입시변화 제시
의대 약대 수의대 수능 없는 선발 신설
표선고 성과와 학종 분석 보고 결심
지역 초중등-대학 발전 깊은 연관
제주 교육발전특구에도 긍정적
제주대 대학발전 전략의 핵심은 IB(국제 바칼로레아)와 체덕지(體德智)다. 이는 김일환 제주대 총장의 “초중등 교육이 정상화 돼야 대학이 발전한다”는 교육철학에서 비롯됐다.
김 총장의 의지는 입시변화로 구체화하고 있다. 우선 입시변화를 통해 초중등 교육의 ‘기본 강화’에 나서고 있다. 국가거점국립대의 책무를 시대 흐름에 맞게 확대하고, 교육 위기 돌파에 국가거점국립대가 호응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능점수 안 보고 의대·약대·수의대 선발
파격적인 입시변화에서 제주대의 의지가 읽힌다. 2026년부터 시작하는 의대·약대·수의대·교대·사범대의 ‘지역인재 전형’이 대표적이다. 이들 단과대에 수능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 지역인재를 신설했다. 총 입학정원 중 26명을 이 전형으로 선발하고 2029년까지 지역인재의 50%까지 확대·선발한다는 게 핵심이다. 김 총장은 “정부가 지역 의대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고 밝힌 만큼 증원되는 정원에 맞춰 지역인재전형 선발 인원도 늘릴 예정”이라고 했다.
제주대가 이 전형을 도입하면 강원대, 충북대에 이어 거점국립대 의대로는 3번째다. 일부 사립대도 의대에 수능 최저 없는 선발을 적용하고 있다. 이은주 제주대 입학본부장은 제주대의 수능 최저 없는 전형에 대해 “학생의 가능성과 열정에 더 포커스를 맞췄다.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학생이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대는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의대는 2029년까지 70%로 확대하고 수의대·교육대·사범대는 50%까지 늘릴 방침이다. 이와 함께 2029학년도 이후 제주대 총 모집인원의 90%까지 수능 없는 학생부 중심 전형 선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모집 단위(구분) |
‘26학년도 주요 내용 |
특수목적대학 (의·약·수의·교육·사범) |
ㅇ수능없는 학생부종합 지역인재(정원 내) 전형 신설 추진 ㅇ지역인재 특별전형 비율 확대 - 의대 : ‘29년 70%까지 - 약대·수의대·교육대·사범대 : ‘29년 50%까지 |
자율학부 |
ㅇ100% 수능없는 학생부 중심 전형 추진 |
○우수한 지역인재가 제주대 발전의 밑거름
김 총장은 “제주대의 연구중심대학 전환, 지역 산업 견인차, 지역 최고 고등교육기관 위상 강화는 우수한 지역인재가 제주대에 얼마나 들어오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제주대의 2024학년도 입학정원은 2167명으로 도내 출신이 70%에 이른다. 하지만 도내 고교생의 도외 대학 진학도 함께 증가하고 있어, 지역인재 유출이 우려된다. 제주대 구성원들은 진학 위주 경쟁 교육과 간판과 지역이라는 대학 선택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제주대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제주대의 입시변화에는 지역 학생들을 IB와 체덕지를 바탕으로 훌륭히 키워 제주대에 입학시키자는 의도가 들어있다.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가 있는 해양 바이오, 신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항공우주 해상 발사 플랫폼, 다양한 생물이 기반인 천연물 유래 의약품 개발에는 제주대의 역량이 필수적이다. 교수-대학원생-학부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지려면 우수한 지역인재 확보가 기본이라는 것이다.
○IB 학교 표선고의 성과와 학생부 종합전형의 결과가 제주대가 바뀌려는 이유
김 총장은 지난해 5월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의 표선고에서 IBDP(IB 고교과정)가 어떻게 학생들을 변화시키는지 확인했다. 김 총장은 “학생의 눈빛이 살아있고, 모든 학생이 진로에 대한 뚜렷한 생각이 있다는 데 놀랐다”고 했다. “친구가 경쟁 상대가 아니라 진정한 동료”라는 의식이 있는 것도 여느 고교와 달랐다. 아울러 2022년 표선고 2학년 학생들이 제주도 수학 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비결이 모든 교과에서 문제 풀이가 아닌 탐구력을 키워주는 IB에서 나왔음을 알게 됐다. 표선고 학생들이 ‘오지 학생들은 대부분 수포자’란 통념을 뒤집었을 때 제주의 반응은 “표선이?”라는 생각이 주를 이뤘었다.
표선고는 개교 이래 진학에서 ‘역대급’ 성적을 냈다. 105명의 IBDP 졸업생은 속칭 SKY 대학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각 1명, KENTECH(한국에너지공대) 1명, UNIST(울산과학기술원) 2명,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2명, 거점국립대 12명이 합격하는 등 202개 대학에 합격했다. (수시 기준) 더 의미 있는 것은 재수생이 단 2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재수는 필수’라는 세간의 통념과는 거리가 먼 결과다. 사교육 수혜 없이 뛰어난 입학 성적을 거둔 것도 주목받고 있다. 자기 탐구를 바탕으로 논·서술형 평가가 이뤄지는 IB 프로그램 특성상 문제풀이식 사교육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주대가 IB의 사교육 절감 효과에 긍정적 시선을 갖는 이유다.
제주대가 최근 실시한 2017년도 이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입학한 학생과 정시 입학생 간의 다양한 성취도 조사 결과도 김 총장이 “제주대가 변해야 한다”라는 결심을 굳히게 했다. 조사에서는 대학 성적(GPA), 중도 탈락률, 취업률, 대학원 진학률에서 학생부 종합전형 입학생이 정시 입학생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탈락율은 학종 입학생이 정시 입학생보다 낮았는데, 이는 전공과 진로 만족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IB 확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박차
제주대는 2025학년도부터 대학 부설 초중고에 IB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제주대의 행보는 제주도교육청의 IB 확대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학은 또 IB 프로그램 운영 교원 전문성 강화를 위해 IBEC(IB 교육자 인증) 과정과 가칭 ‘글로벌 IB 교사양성센터’를 올해 안에 사범대 안에 개설할 예정이다. 서귀포시 대정면의 제주영어교육도시에 있는 IB 프로그램 운영 국제학교와 협력해 학생 및 교사의 IB 실무능력을 높일 계획도 추진 중이다. 제주대는 거점국립대 가운데 IB 인프라 구축에 가장 적극적인 만큼 향후 IB 확대에 사범대가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
○왜 체덕지인가?
제주대가 체덕지를 강조하는 것도 눈에 띈다. 건강과 바른 인성을 가진 인재 양성을 교육의 기본으로 강조하는 건 김 총장의 “진학 교육을 받치고 있는 지덕체 이념을 깨야 교육의 본령을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만 강조하다 보니 결국에는 순위와 경쟁이 주가 되는 교육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체덕지로 바꿔 아이들이 숨 쉴 수 있고 잃었던 많은 걸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주대가 한국교육이 마주한 많은 문제를 풀기 위해 초중등은 물론이고 대학에서도 건강과 인성을 강조하겠다고 나선 이유다. 그는 “미래세대들이 초중고 12년간 경쟁을 거치면서 몸도 마음도 아픈데 체육 중시 교육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에서 부실한 몸과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대학에서의 연구는 물론이고 졸업 후의 삶도 제대로 살 수 없기에 체덕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학은 이 같은 취지를 구체화하기 위해 건강을 키우고 진로코칭에도 도움을 주는 과정을 올해 처음으로 개설했다. ‘제주올레길과 자아 성찰’이라는 1학점 비교과 교양과목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는 학생에게 자아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수준 높은 진로 멘토링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수업의 전부는 학생들이 교직원과 외부 초청 명사와 대화를 나누며 수 시간씩 올레길을 걷는 것이다. 첫 수업은 다음 달 29일 올레길 6코스에서 열린다.
○제주대 입시변화는 교육발전특구에도 긍정적
제주대의 IB와 체덕지를 강조하는 입시변화는 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발전특구에도 긍정적이라는 전망이다. 교육을 통한 국가균형발전, 공교육 강화, 사교육비 절감, 초중등 교육과 대학 연계 등 정부가 제시하는 교육발전특구 조건이 제주대의 입시변화가 추구하는 데 상당 부분 들어있기 때문이다. 총장의 강력한 리더십, 입시변화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일치된 의견, IB에 대한 제주도민의 호감도 상승도 제주대 입시변화의 동력이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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