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고 있는 '플랫폼법'…쟁점은 무엇인가
이희경 2024. 2. 9. 17:02
공정거래위원회가 법제화를 추진 중인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을 두고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플랫폼법 추진 방침이 보고된 뒤 공정위가 속도전에 나섰지만 업계와 학계, 미국 상공회의소 등은 물론 국회에서도 “총선 전 추진은 부담스럽다”는 기류가 나타나면서다. 특히 공정위가 플랫폼법의 핵심인 ‘시장 지배적 사업자’ 사전지정 방안과 관련해 전문가 의견 등을 반영 다른 대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발표 시점이 기약 없이 미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공정위는 다만 플랫폼법 원점 재검토가 아니라 국회 공청회를 앞두고 업계와 소통을 강화하는 ‘전략적 후퇴’ 성격이 짙다는 입장이다. 플랫폼법이 대체 무슨 법안이길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걸까.
9일 공정위에 따르면 플랫폼법은 거대 플랫폼 업체들의 독과점 폐해가 현행 법체계로는 제어하기 힘들다는 판단 아래 추진되고 있다. 거대 업체들이 낮은(약탈적) 가격으로 경쟁업체의 진입을 가로막아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결국 가격도 인상돼 소비자 후생이 침해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 플랫폼법 추진의 배경이 되고 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2년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플랫폼 시장의 독점 문제를 지적한 이후 지난해 11월1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도 카카오택시의 독점에 대해 “아주 부도덕한 행태”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28일 “독과점화된 대형 플랫폼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고, 공정위는 플랫폼법 뼈대를 만들어 지난해 12월19일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플랫폼법은 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힘이 센 극소수의 플랫폼 업체를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 지정하고, 이들을 집중 규제하는 게 핵심이다. 그간 카카오T의 알고리즘 조작을 통한 콜 몰아주기(자사 가맹택시 우대), 구글의 국산 앱마켓 원스토어에 대한 게임사 입점 제한 행위 등 거대 플랫폼 업체들의 반칙행위가 확인됐지만 조사 기간이 길어져 ‘뒷북 제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자사 우대 등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 조사는 해당 사업자가 시장지배력을 가진 사업자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경쟁제한 효과를 따지는 과정을 거친다. 공정위는 플랫폼법이 통과돼 시장지배력을 가진 사업자를 미리 지정하면 조사 속도가 예전보다 더 빨라져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다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는 지배적 사업자는 극소수의 업체만 대상이 될 뿐이고 이들에게 자료제출 의무 등이 새롭게 부과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규제인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과도 다르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특히 플랫폼 시장의 경우 초기에 다수의 이용자를 선점한 업체에 더 많은 이용자가 몰리는 ‘쏠림효과’가 발생하고 그 속도도 빨라 ‘손 쓸 수 없을 정도’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플랫폼법이 더욱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이 “이 법의 제정이 늦어지면 공정위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1월)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하지만 플랫폼법은 법제화 추진 발표와 동시에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공정위가 지난해 초 지배적 플랫폼 업체의 남용행위 규제를 보완할 수 있는 규정인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마련하는 등 현행 제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에도 성급하게 사전규제 성격인 플랫폼법을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 토종 플랫폼이 없는 유럽과 우리는 상황이 다른 데 섣불리 플랫폼법을 도입하게 되면 국내 업체만 집중적으로 규제를 받는 ‘역차별’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대두됐다. 미 재계를 대표하는 미국 상공회의소도 성명을 통해 “투명성을 갖추고 대화해야 한다”면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지난 5일 연구보고서를 통해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 지정은 ‘남용행위 잠재기업’을 사전에 정하는 소위 ‘낙인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플랫폼 사업자가 스스로의 성장 기회를 포기토록 유인하는 한편 ‘민간 자율 존중 원칙’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여당 내에서도 업계의 반발이 커 총선 표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논란이 커지자 지난 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플랫폼법의 핵심인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지정하는 방안도 포함해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법 강행 입장에서 사실상 한 발 물러선 셈이다.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정부)안을 (당장) 공개하기보다는 좀 더 학계나 전문가 의견을 반영 (사전)지정제도 포함해 다양한 대안을 열어 놓는게 낫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효과는 비슷하면서도 논란은 줄일 수 있는 대안을 만든 뒤 사전지정제도를 포함해 업계와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플랫폼법이 재정법인 만큼 국회 공청회가 예정돼 있는 데 그 전에 업계의 불만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기 위한 전략적 후퇴에 가깝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오랜 기간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는데도 여전히 추가 소통에 나서는 모습 자체가 ‘졸속 입법’을 방증한다면서 이제라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쟁법 권위자인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플랫폼법은 시장에 가해지는 충격이 상당히 큰 방법인데 거기에 따른 부작용도 있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공정위는 부작용이 얼마나 클 것인지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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