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도롱 또똣이 표준어로 뭐냐?”는 잘못된 질문
‘표준어로 무엇’이라는 식의 접근으론 알 수 없는 지역말의 매력… 대체 불가능한 정서·문화를 담고 우리말의 뿌리를 기억하는 큰 그릇
<한겨레21>이 세 차례에 걸쳐 표준어라는 위계적 언어 질서 속에 소명 위기에 내몰린 지역말, 즉 사투리의 매력을 소개합니다. 제1부에선 ‘지역말은 표준어로는 대체할 수 있는 착각’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이어 제2부는 ‘지역의 정서·문화를 듬뿍 담은 지역말의 아름다움’, 제3부는 ‘우리말의 보물창고, 지역 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
‘맨도롱 또똣: 제주 방언 - 기분 좋게 따뜻한.’
2015년 5월13일 문화방송(MBC)이 드라마 <맨도롱 또똣> 방영을 시작하며, 이 제주말의 뜻을 이렇게 소개했다. 항의가 빗발쳤다. 2주 뒤 국립국어원이 나서서 이 뜻풀이가 잘못됐다며 ‘맨도롱 또똣’은 ‘제주 방언으로 매지근 따뜻하다는 의미’(정책브리핑)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데…’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렇게 지역말(방언)을 ‘표준어’(서울말)로 표현할 때 지역말의 쓰임·정서·말맛 등이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제주말 ‘맨도롱 ᄄᆞᄄᆞᆺ’을 ‘매지근 따뜻’의 여러 ‘보조표현’ 중 하나로 바라보는 건 표준어 중심 우리나라 언어 질서에서 흔히 빠지기 쉬운 착각이다. 지역어가 사라지는 건 우리말로 된 표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어만 소멸? 우리말이 사라진다
“‘또똣’만 해도 실제 발음은 ‘ᄄᆞᄄᆞᆺ’으로 다릅니다. 뜻도 음식만이 아니라 날씨나 방바닥이 따뜻할 때도 다양하게 쓰는 표현입니다. ‘맨도롱 또똣’은 ‘맨도롱 ᄄᆞᄄᆞᆺ헐 때 후루룩 들이쌉서’라고 할 때 쓰는, 오랜 역사·정서·문화·유대감을 담은 관용어입니다. 어릴 때 밥상머리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따뜻한 국이 있는데 안 먹고 있으면 어머니가 자식에게 얼른 먹으라고 할 때 이 말을 하죠. 그런데 이 말을 ‘기분 좋게 따뜻한’이라고 해버리면 완전히 다른 말이 돼버려요. 제주어에 관심이 많다보니 저에게 표준어 문장을 잔뜩 보낸 뒤 제주말로 바꿔달라는 ᄋᆢ망진(야무진)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제주말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표준어는 잘 없습니다. 이 말의 쓰임을 알고 잘 살려서 그대로 쓰는 게 가장 좋습니다. ‘표준어로 바꾸면 된다’는 식으로 지역말에 접근하니 점점 쓰지 않게 되어 지역말이 사라지는 겁니다. 그러면 그 말에 담긴 말맛이나 정서도 사라질 겁니다.” 2024년 1월25일 제주도 제주시 건입동 제주학연구센터에서 만난 김순자 센터장의 말이다.
출신지 말을 쓰는 것이 한 사람의 정체성과도 같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이 아득하다. 시나브로 어느 지역에서나 표준어를 쓰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그러면서 지역말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5년마다 조사하는 ‘국민의 언어인식 조사’(20~69살 5천 명 조사)를 보면 자기 스스로 ‘방언을 쓴다’고 주장하는 인구도 2010년 52.5%에서 2020년 43.3%로 크게 줄었다. 특히 제주·강원 등 큰 도시가 없고 자본 기반이 약하며 관광 의존도가 높은 지역의 ‘지역말 소멸’이 거센 것으로 나타났다. 이 10년 새 제주도민 가운데 제주말을 쓴다고 답한 비중도 67.6%에서 46.0%로 급감했다. 강원도에서 강원말을 쓰는 비중(59.2→39.7%)도 크게 줄었다. 강원·제주에선 그 고장 사투리를 듣기가 녹록지 않다는 의미다.
지역어 사용의 질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08년 제주대 국어상담소가 조사한 ‘제주지역어 생태지수 조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20~60대 제주도민 312명에게 농업·문화 관련 176개 어휘의 사용 정도와 이해도를 조사해보니, 조사자의 50%가 여전히 사용한다는 어휘는 36개(20.5%)에 그쳤다.
특히 10대 등 젊은 세대의 자기 지역말 이해는 비경한 수준이다. 2010년 제주대 국어문화원이 중·고교생 400명에게 ‘제주도민의 제주어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것을 보면, 조사한 120개 일상생활 어휘 가운데 90% 이상 이해한 어휘는 아방(아버지), 어멍(어머니), 하르방(할아버지), 할망(할머니) 4개뿐이었다. 10% 미만 이해한 어휘는 45개(37.5%)였다. 난시(냉이)·둑지(어깨)·부루(상추)·어욱(억새) 등 자주 쓰이는 비교적 쉬운 어휘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유네스코는 제주말을 2010년 12월 ‘소멸 직전 언어’로 분류했다.
“표준어 대응 방언 찾기론 방언 이해 못해”
표준어로 대체할 수 없는 우리말이 사라진다는 점은 지역말 소멸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힌다. 강릉말 ‘ ᅌퟂ’(요+ㅣ)라는 말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말은 표준어로 ‘누군가의 몫’ 정도로 바꿀 수 있다. 아버지가 늦게까지 돌아오시지 않으면 “아버지 ‘ ᅌퟂ’(요+ㅣ) 떠놨나?”고 하거나, 시제(제사)에 참석한 사람에게 떡 등을 싸서 줄 때 “내 ‘ ᅌퟂ’(요+ㅣ) 좀 받아좌”라고 쓰는 말이다.
한글학회 회장과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 원장 등을 지낸 이익섭 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는 “지금도 방언 조사가 1천~2천 개 단어 목록을 놓고 표준어에 대응하는 방언을 찾아서 채우는 식으로 숙제하듯이 이뤄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표준어에 없는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방언을 하나의 온전한 언어체계로 보고 깊이 들어가서 분석할 때 ‘ ᅌퟂ’ 같은 말을 찾아낼 수 있고 우리말을 살찌울 수 있죠”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경상도 말은 ‘고저’(높낮이)가 중요합니다. 새끼를 꼰다고 할 땐 ‘끼’를 높게 말하지만, 돼지 새끼를 말할 땐 ‘새’를 높입니다. 특히 경상도 방언 조사에서 글자 위에 고저를 안 찍으면 말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경상도 방언에서도 고저를 찍지 않은 조사 결과가 대부분입니다. 방언이 중요하다면서도 정작 그 가치를 발굴하는 일은 제대로 하지 않죠. 단어만 있고 예문이 없는 경우도 많아요. 예문이 없고 단어만 있는 게 살아 있는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방언의 뜻을 잘못 풀이하고, 이것이 사전 등에 등록돼 굳어지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강원 영동지방 방언인 ‘개락’에 대해 ‘우리말샘’(국립국어원 온라인 국어사전)은 “‘홍수’의 강원도 방언”이라 규정한다. 하지만 ‘홍수’에 해당하는 강원 영동지방 방언은 ‘포락’이라고 따로 있다. 개락은 오히려 ‘뭔가가 너무 많아서 넘쳐난다’는 뜻으로 쓰인다. ‘돈이 개락’ ‘쓰레기가 개락’으로 쓰인다. ‘아랫도리만 벗는 것’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인 ‘꾀벗다’는 ‘발가벗다’로 정의됐다. ‘꾀’는 바지를 의미하는 고의(袴衣)가 ‘고이→괴’로 바뀌면서 만들어진 어휘다.
강릉·제주=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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