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이 애용한 ‘정력제’ 먹으면 졸려서 ‘최음제’[음담패설 飮啖稗說]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빠질 수 없는 식탁의 동반자가 있다. 상추다. 상추를 펼쳐 구운 고기를 몇점 얹고 고추, 마늘과 쌈장을 곁들여 입안 한가득 쌈을 싸 먹을 때 느껴지는 충만감이란…. 고기가 없어도 된다. 상추잎에 밥과 장만 싸서 먹는대도 그것만으로 꽤 괜찮은 한 끼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는 상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함바집’에서도 만날 수 있는 상추는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채소다. 태풍이나 흉작으로 채소가 금값이 될 때면 상추 적게 준다고 삼겹살집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광경은 심심찮게 목도할 수 있다.
상추는 고려시대부터 이미 즐겨 먹었다. 키우기 쉽고 잘 자라고 맛도 좋으니 사랑받지 않을 수 없다. 상추가 우리 조상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유는 또 있다. 정력을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상추의 줄기를 뜯었을 때 나오는 유백색 진액이 정액과 비슷해 정력을 강화시켜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추밭 이랑 사이에 심은 상추는 정력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더 크다고 여겨졌다. 남성을 상징하는 고추밭에 심어놓은 상추이니 효능이 배가되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키운 상추는 남편 밥상에만 몰래 올렸다고 한다. 예로부터 색을 밝히는 여자를 ‘고추밭에 상추 심는 년’이라고 비유했던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식문화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인용).
언론인 이규태가 쓴 <한국인의 밥상문화>에도 ‘상추는 비아그라’라고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본초강목>에서 상추가 정력에 좋다 하여 이를 많이 심으면 그 집 마님의 음욕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추는 남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도록 텃밭 가장자리에 조금씩 심어 먹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마 조선시대 여성들이 상추쌈을 싸 먹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백색 진액을 정액으로 해석
고추밭에 심으면 효능 배가’ 믿어
옛날에는 남편 밥상에만 올라가
이집트 다산의 신을 그린 벽화 등
신화와 일상 속 ‘강장 음식’으로
아스파라거스도 특유의 모양 탓
정력제·최음제 용도로 먹기도
상추의 유백색 즙과 정액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정력제, 혹은 최음제로 인식된 것은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다산의 신 ‘민(Min)’이 좋아했던 상추는 피라미드 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Michigan Quarterly Review’에 실린 ‘호루스와 세트의 권력 투쟁’이라는 글에 상추가 고대 이집트에서 어떻게 성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었는지 나와 있어 소개해본다.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호루스와 세트는 조카·삼촌지간이다. 세트는 호루스의 아버지 오시리스를 죽이고 이집트를 통치했으나 장성한 호루스가 왕권을 되찾기 위해 그에게 맞섰다. 둘 사이의 갈등은 심화됐고 급기야 세트는 호루스를 꾀어내 잠자리를 함께하며 그에게 사정한다. 이는 정액을 사정하는 것이 상대를 향한 지배력으로 여겨졌던 통념에 따른 것이다. 잠자리에서 정신을 차린 호루스는 세트의 정액을 손으로 받아내 자신의 몸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대신 호루스의 어머니 이시스는 세트의 정액으로 ‘더럽혀진’ 호루스의 손을 칼로 잘라 나일강에 버린다.
이어 이시스·호루스 모자는 세트를 향해 반격에 나선다. 이시스가 호루스의 정액을 단지에 담아 세트가 유일하게 즐겨 먹는 채소인 상추밭에 뿌린 것이다. 세트는 그 상추와 함께 호루스의 정액까지 먹게 됐다. 즉 세트의 정액은 나일강 어딘가에, 호루스의 정액은 세트의 배 속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왕위 계승의 정당성 다툼은 신들의 재판에서 다뤄지게 됐다. 우위성의 근거는 정액이었다. 세트는 자신만만했다. 호루스가 자신의 정액에 의해 굴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세트의 정액은 나일강에 버려져 떠돌고 있었다. 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루스의 정액이 자신의 배 속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국 세트는 힘을 잃게 된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상추에 있는 흰 진액은 락투카리움이라는 성분이다. 진정 효과가 있어 불면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최음제로 오해받게 된 것은 인류의 역사와 오랫동안 함께해온 ‘유감주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감주술은 원하는 바와 닮은 대상의 모습이나 행동을 따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미신적인 신앙관습이다. 눈이 좋은 독수리의 간을 먹으면 눈이 좋아진다고 믿었고 임신부가 오리고기를 먹으면 태어날 아이도 오리처럼 발가락 사이가 붙는다고 생각해 금하도록 했다. 미운 상대를 인형으로 만들어 바늘을 꽂으며 저주하는 것도, 아들을 낳기 위해 황소나 수탉의 생식기를 먹는 것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갈망이자 신앙의 연장이었다. 정력을 향한 욕망도 마찬가지다. 수십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물개의 생식기, 교미 시간이 긴 뱀, 늠름하게 우뚝 선 코뿔소의 뿔이 오랫동안 정력제로 각광받았던 것은 과학과는 거리가 먼, 주술적 신앙에 기반하고 있다. 하긴 우린 지금도 장어구이집에 가면 꼬리 부분을 두고 누가 먹을지 은근히 눈치싸움을 하지 않나. 과학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고대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같은 믿음이 지금까지 꽤나 견고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나약한 인간의 욕심이 그 이유라고 설명해야 할까.
생김새 때문에 정력제, 혹은 최음제로 ‘오해’받아온 식물들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아스파라거스다. 아스파라거스 머리 부분이 남자의 성기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플리니우스가 쓴,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박물지>에서는 아스파라거스를 성욕을 증진시키는 채소라고 설명한다. 고대 인도의 성애 교본 <카마수트라>에도 정력과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데 도움이 되는 아스파라거스 요리 레시피가 나와 있다. 미국의 과학사 작가 리베카 룹은 “아스파라거스의 외설적인 생김새 때문에 19세기 프랑스 여학교에서는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들의 상상력을 자극할까 두려워 배식을 금지했다”고 말했다.
생김새보다 향기 때문에 최음제로 여겨졌던 것은 트러플(송로버섯)이다. 미생물학자 멀린 셸드레이크는 <작은 것들이 만드는 거대한 세계>라는 저서를 통해 트러플의 독특한 향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양에서 오랫동안 미식가들을 사로잡아온 트러플은 그 유혹적이고 야릇한 향기 때문에 아프로디테에게 봉헌됐다. 나폴레옹과 사드 후작은 트러플을 최음제로 사용했고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은 트러플이 에로틱한 쾌락을 불러온다고 했다.
1981년에는 독일 과학자들이 수퇘지가 분비하는 성호르몬과 같은 물질이 트러플에서 분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때문에 암퇘지를 이용해 땅속에 파묻힌 트러플을 찾아내는 현상이 설명됐다. 하지만 이후 연구 논문에서 이 같은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결과들이 꾸준히 나오면서 트러플이 가진 유혹적인 향기 성분의 비밀은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를 던지고 있다.
냄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밤꽃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포털사이트에 ‘밤꽃 냄새’라고 치면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검색 결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뭘 좀 아는, 연식 있는 사람들이라면 괜히 민망해질 법한 단어.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도대체 왜?’ 하고 궁금증이 들 만도 하다. 밤꽃 냄새는 예로부터 비릿한 정액의 냄새와 비슷하다고 여겨져 성적인 비유로 많이 사용됐다. 밤꽃이 만발해 그 향이 절정에 이르는 6월이면 조선시대에는 부녀자들이 외출을 삼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산림학자 김외정 박사가 쓴 <천년도서관 숲>에 따르면 밤꽃 냄새의 진원지는 수꽃이다. 이 수꽃에는 동물 정액에도 있는 스퍼미딘과 스퍼민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다. 즉 정액에 있는 것과 동일한 성분이 밤꽃에도 있으니 비슷한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또 밤꿀은 꿀 중에서 항산화 효과가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선 밤이 기를 북돋우고 정력을 보하는 데 좋다고 한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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