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배우’ 박신양, ‘그림 작가’로 제2의 인생…그가 죽도록 그림 그리는 까닭 [신기자 톡톡]

신수현 기자(soo1@mk.co.kr) 2024. 2. 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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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 톡톡 – 5]
‘배우이자 그림 작가’ 박신양 인터뷰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엠엠아트센터(mM ArtCenter)’에 마련된 박신양 기획 초대전 ‘제4의 벽’에서 박신양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신양 씨 뒤에 있는 그림은 박신양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4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사진=이충우 기자>
“연기도 그림도 죽도록 해야 합니다. 대충하면 안 됩니다.” <배우이자 그림 작가인 박신양>

‘국민 배우’, ‘연기에 진심인 배우’, ‘이름 석 자가 브랜드’, ‘흥행 보증 수표’. 배우 박신양에게 붙는 수식어들이다.

영화 ‘편지(1997년)’, ‘약속(1998년)’, ‘달마야 놀자(2001년)’, ‘범죄의 재구성(2004년)’,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년)’, ‘쩐의 전쟁(2007년)’, ‘바람의 화원(2008)’, ‘싸인(2011년)’, ‘동네변호사 조들호’ (2016년, 2019년) 등.

박신양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작품들마다 잇달아 흥행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꼽힌다. 1996년 영화 ‘유리’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데뷔했으며, 박신양은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영화상에서 신인 남우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맡은 배역마다 완벽한 연기를 소화하며 여러 상을 휩쓸었으며, 박신양이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영화, 드라마의 제작비 규모부터 드라마 편성 채널과 시간대 등이 바뀔 만큼 그가 드라마, 영화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컸다. 일례로 드라마 ‘싸인’은 원래 케이블에 방영될 예정이었지만, 박신양이 주인공으로 확정되면서 드라마 편성이 지상파인 SBS로 바뀌었다. 특히 드라마 싸인은 지금은 드라마 업계 거물이 된 김은희 작가가 집필한 지상파 첫 드라마이기도 하다.

연기파 배우로 명성을 떨치던 배우 박신양은 2013년 개봉했던 영화 ‘박수건달’, 2019년 시즌 2로 방영한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끝으로 각각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라졌다. 대중 앞에 자취를 감추고 있었던 동안 그는 그림 작업에 사력을 다해왔다.

약 10년 전부터 계속 그림을 그려왔으며, 지금까지 그린 그림만 200점이 넘는다. 국민 배우에서 그림 작가로 살아오고 있는 박신양. 무엇이 그를 그림의 세계로 이끌었으며, 어떤 작품을 그려왔을까. 그를 만나 그림 작가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살아온 인생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눠봤다.

“10년에 걸쳐 완성한 그림도 있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끝없이 고민
-러시아 유학파다. 어떤 계기로 유학을 갔나.

1992년 대학교(동국대 연극영화학 전공) 졸업 후 대학원에 지원해 합격했다. 대학원에 들어가면 학교 부속 극장에서 연기 연습과 공연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같이 연극하던 친구 2명과 같이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대학원 입학 시험에 떨어졌다. 다 같이 연극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대학원을 그만두고 두 달 후쯤 친구들과 무작정 러시아 유학길에 올랐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혼란한 러시아에서 예술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차근차근 유학 계획을 준비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러시아어도 전혀 모르는 채 러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러시아 알파벳을 익히기 시작했다.

모교인 동국대학교와 자매결연 맺은 러시아 쉐프킨 국립 연극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러시아 슈킨 국립 연극대학교의 졸업 공연을 본 후 1년 후 슈킨 연극대학교로 학교를 옮겼다. 슈킨대학교의 졸업 공연은 충격적이었다. 대사가 한마디도 없었지만 정확한 이야기를 전달해준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1995년에 왔다.

-언제부터,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나.

2013년, 2014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러시아 유학시절(1992년~1995년) 슈킨대학교에서 같이 연극을 공부했던 친구 키릴 키아로(현재 러시아 배우), 유리 미하일로비치 얍샤로프 선생님이 정말 그리워서 어느 날 문득 무작정 근처 화방에서 붓과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유학 시절 슈킨대학교로 학교를 옮긴지 반년쯤 지났을 때 학비가 떨어져서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슈킨대학교는 국립 대학교라서 러시아 학생들은 학비 지원을 받고 있었다. 제 사정을 알게 된 키릴을 포함한 러시아 친구들이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지원금을 포기할 테니 박신양을 학교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학교에 부탁했다. 키릴이 앞장서서 학생들에게 서명을 받고 다녔다.

러시아 학생들, 러시아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에 한국인 유학생들이 모여 있는 반에서 러시아 교수님께 통역을 해드리면서 장학금을 받게 됐다. 덕분에 러시아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었다.

슈킨대학교에서 만난 유리 미하일로비치 선생님은 제게 특별한 은사님이다. 편견 없이 저를 제자로 사랑해줬고, 진심으로 신뢰해줬다. 저는 평생 두 분의 스승을 가슴 속에 담고 연기생활을 해왔는데, 그 중 한 분이 유리 미하일로비치 선생님이다.

키릴과 유리 미하일로비치 선생님이 그렇게 그리우면 찾아가서 만나면 되는데 왜 그림을 그렸을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원초적인 갈망, 인간이라면 갖고 있는 그리움이 있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야만 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소통은 중요하다. 인간은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누구나 진실한 소통을 갈망한다. 꽤 긴 세월 동안 배우로 살아오면서 진실한 소통을 하지 못했고 제 영혼이 아팠던 것 같다.

러시아 친구들이 특히 그리웠던 이유는 그때가 가장 진솔하게 예술에 관해 검열 없이 솔직한 대화를 나누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러시아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의 본질은 사실 진정한 소통을 그리워한 게 아닐까 싶다. 이번 전시회 ‘제4의 벽’에 작품 ‘키릴’과 ‘유리 미하일로비치’도 공개했다.

2022년 박신양 작가가 그린 자신의 러시아인 친구 키릴의 모습. 작품명은 ‘키릴2’.
-어떤 그리움인가. 그리움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리움은 원초적인 갈망의 상징이다. 그리움을 ‘열려 있는 마음’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 같다. 편견 없이 사람을 바라보는 열린 마음, 어떠한 계산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작품을 봐주는 열린 마음이 그립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주로 언제 그림을 그리나.

주로 밤에 그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기 때문에 밤샐 때가 많다. 오랫동안 밀폐된 작업실에서 밤새우며 그림을 그려서 건강이 나빠졌다.

이번 전시 기간 동안에는 전시장 1층 공간에서 작업한다. 관람객들이 2층에서 전시된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제가 1층에서 작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게 전시장이 구성됐다. 일종의 ‘제4의 벽(The fourth wall)’이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것이다.

‘제4의 벽’은 원래 연극 용어로, 연극 밖의 현실 세계와 무대 위에서 전개되는 극중 세계를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의미한다.

무대에 선 연극배우가 관객 앞에서 연기하듯이 화가가 관람객 앞에서 그림을 그린다. 관람객이 제4의 벽을 깨기도 한다. 위층에서 저를 부르기도, 인사하기도 한다. 저는 화가로서 그림 작업을 한다. 그런데 연극처럼 관객을 갖는 구조이기도 하다.

전시 기간 동안 제가 이곳에서 그린 그림이 전시실에 걸릴 예정이다. 마치 연극의 산물이 ‘제4의 벽’을 뚫고 관객을 만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전시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걸로 알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엠엠아트센터(mM ArtCenter)’에 마련된 박신양 기획 초대전 ‘제4의 벽’의 내부 모습. 2층에서 1층이 내려다 보이는 구조이다. 2층에 있는 관람객들이 박신양 씨가 1층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사진=신수현 기자>
-지금까지 총 몇 점의 작품을 그렸나.

약 150점 되는 것 같다. 물감을 짜서 섞기 위해 쓰던 ‘종이팔레트’까지 작품으로 치면 300점 넘을지도 모르겠다. 200점은 넘는다.

-작품명이 ‘종이팔레트’인 작품도 여러 개 있던데.

저는 종이팔레트를 작품으로 여기지 않았다. 서양 고전학자이자 철학자인 김동훈 선생님이 제 그림을 보더니 종이팔레트도 당연히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림에는 의도가 들어가는데, 종이팔레트에는 의도가 없지만 자연스럽다며 이게 작품이 아니면 어떤 게 작품이냐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에 종이팔레트 몇 점도 전시했다.

-작품 중에 ‘당나귀’ 그림이 유독 많다. 왜 당나귀 그림을 많이 그렸나.

가장 많이 그린 작품이 당나귀인데, 당나귀가 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나귀는 짐을 지기 위해 태어났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삶의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듯이 저 또한 저만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 당나귀는 짐을 지려고 태어난 것 같아 안쓰럽고, 그런 당나귀가 저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 짐이 특별히 무겁거나 대단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묵묵히 짐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그게 예술가의 숙명 같다. 앞으로도 당나귀 그림을 그릴지 말지 잘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 당나귀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 번호를 매겼는데 숫자에 의미는 없다.

-사과 작품도 여러 개 있던데. 왜 그렇게 사과를 많이 그렸나.

초등학교 1학년 미술 공개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아무거나 그리라고 말해서 기분 좋게 빨간 사과를 그렸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게 그림이냐며 저를 엄청 혼냈다. 혼난 이유도 모르겠고 공개 수업이라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때 크게 상처받았다. 그 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프랑스인으로 1950년대에 한국에 와서 평생 한국인과 한국을 위해 헌신하신 두봉 주교님이라는 분이 한국의 트라피스트 수도원(봉쇄수도원)을 설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도대체 그 분의 헌신적인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지 궁금해서 두봉 주교님을 찾아갔다.

두봉 주교님은 텔레비전을 안 보는 분이라서 다행히 저를 몰랐다. 주교님과 오랜 시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헤어질 때 주교님이 사과 2개를 주셨다. 사과가 정말 소중해서 먹지 못하고 며칠 동안 쳐다만 봤다. 시들어가는 사과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감동의 사라짐을 멈출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사과를 그리기 시작했다. 저에게 필요한 사과가 무엇인지 깨닫는데 40년이나 걸렸다.

제가 느낀 이 감동을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고심했다. 이것은 배우가 연극을 할 때 관객에게 그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같은 것을 표현해도 표현하는 화가, 연기자에 의해 감동과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모든 예술가들이 평생 붙들어야 하는 고민이다.

‘제4의 벽’ 전시는 관람객에게 무엇인가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고민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감상자는 어떤 그림을 보고 감동받을 수도 혹은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런데 화가(박신양)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그 화가의 결과물인 그림을 보면 그림만 볼 때와 달리 또 다른 감각의 자극을 받은 상태에서 그림을 감상하기 때문에 감상자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또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색다른 경험은 감상자에게도 창의적인 생각을 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전시 자체가 예술 행위가 되고, 더 넓은 의미에서 감상자 자신이 작품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됨으로써 예술 창작에 참여하는 것이다.

-작품명 ‘투우사’는 작가님(박신양)을 그린 건가.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서 제 자신이 당나귀 같기도, 투우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술가는 본분을 다해야 한다. 달려오는 소와 마주해도 물러서지 않는 투우사처럼.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오늘도 사투를 벌인다. 유혹, 나태, 속임, 착각, 가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구나 스스로 매일 싸워야 한다. 예술가의 운명은 우리 모두의 운명이기도 하다.

-작품명이 ‘여자 얼굴’, ‘남자 얼굴’인 그림도 많던데.

지금은 고인이 된 독일 출신의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 같이 알려진 인물들도 그렸지만,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을 그렸다. 인터넷에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가장 힘겹게, 쉽게 그린 작품은.

작품을 완성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짧거나 길다고 해서 쉽거나 힘겹게 그렸다고 말할 수 없다. 당나귀 작품 중에 ‘당나귀13’이 있는데, 이 작품을 약 14시간 만에 완성했다. 그런데 완성 후 약 3개월 동안 거의 쓰러져 있었다. 몸이 심하게 아팠다.

작품을 그리기 전 생각하고 준비하는 데 꽤 긴 시간이 소요된다. 3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그림도 많았다. 10년에 걸쳐 완성한 그림도 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저는 누구인지 등을 고민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관람객이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무엇을 느끼길 원하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냥 마음대로 보면 된다. 즐겁고 쉽고 편하게 보면 된다.

-미술 작품 등에 관한 견해를 담은 책 ‘제4의 벽’도 최근 출간했다. 글 솜씨가 매우 뛰어나서 놀랐다. 글이 정말 좋다.

아주 오래전부터 저 혼자만의 일기처럼 써 놓은 조각글들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쓴 글은 아니었다. 작업실에 찾아오는 분들에게 같은 대답을 반복하다보니 차라리 책을 내서 읽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술에 관해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왜 이토록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왜 그토록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파묻혀 살았는지 제 스스로 돌아보고, 또 조금이라도 같은 열정을 가진 독자들을 만나고 싶어서 책을 냈다.

책을 펴내기 위해 글을 정리하다보니 제가 과거에 어떤 마음의 경로를 밟아왔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같은 고민을 하겠지만.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가.

보는 사람의 상상력이 가능한 한 무한히 작동되면서 이성 또한 최대한 작동하도록 단초를 제공하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느낄 때 가장 좋은 그림은 자신에게 가장 큰 자극을 주는 그림일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마다 좋다고 여기는 작품은 다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그림은 분명히 있다. 그 자극은 편견을 깨는 생각일 수도, 과거에 대한 이해일 수도, 색과 형태가 주는 즐거움일 수도, 숭고한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런 작품이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 같다.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엠엠아트센터(mM ArtCenter)’에 마련된 박신양 기획 초대전 ‘제4의 벽’의 외부 전경. <사진=신수현 기자>
“배우는 남의 이야기를,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 전달해야”
-어떻게 배우가 됐나.

정확한 영화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중학생 때 가족과 같이 영화를 보고 감동받아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이때의 감동이 연극영화과 진학으로 이끈 것 같다. 그렇다고 당시에 나중에 커서 반드시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카메라를 다루는 일을 배워보려고 했는데 당시 연극영화과 학생들은 무조건 연극을 해야만 하는 분위기였다. 자연스럽게 연극을 배우게 됐고 배우가 됐다.

-주인공으로 출연한 작품마다 흥행하면서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가장 애정이 가는 역할, 가장 힘들었던 역할은.

그런 건 없다. 쉬운 역할이 하나도 없었다. 전부 힘들었다. 영화, 드라마 속 인물을 살아 숨쉬는 인물처럼 만들기 위해 정말 죽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배우에 집중하면서 살았을 때 실제 성격과 가장 비슷한 배역은 어떤 작품에서 어떤 배역.

실제 성격과 비슷했던 역할은 없었던 것 같다. 제가 만들어낸 배역(캐릭터)이지 제 자신은 아니다. 연기할 때마다 그 역할에 몰입해 연기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했다.

박신양은 그저 박신양일 뿐인데 드라마,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은 저를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로 생각하고 제가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해서 힘들었다. 제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들어낸 캐릭터 때문에 현실에서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졌다. 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림 작업에 더 매진하게 된 것 같다.

-또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는지.

역할에는 크게 관심 갖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담은 영화, 드라마인지 그 내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역할은 그 다음이다. 촬영을 시작할 때까지도 역할보다는 영화, 드라마가 어떤 내용인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전달 방법 등에 먼저 집중한다.

-모든 역할에서 연기가 정말 완벽한데, 대사를 어떻게 암기하나. 암기 방법이 궁금하다.

사람들은 제가 대사를 잘 외우는지 아는데, 사실 대사를 잘 못 외운다. 나오는 대로 말한다.

-연기를 잘하기 위해 매일 발성 연습했다고. 발성 연습 덕분에 목소리도 하이톤에서 중저음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엥엥’ 거리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는데 발성 연습을 통해 바꿨다. 지금도 매일 발성 연습을 한다.

-괜히 배우가 됐다고 후회한 적은 없었나.

안 해본 것 같다.

-연기와 그림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배우는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해야 하는 이야기 사이에서 균형 잡힌 적합한 감정 표현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표현한다는 것은 오로지 배우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직면하는 것과 같다. 여러 배우, 촬영 관계자 등과 함께 일하지만 표현하는 그 순간에는 혼자다.

반면에 그림은 표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협력, 협의하지 않아도 된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 더 무게중심이 있다. 작가는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본인 스스로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연기와 그림의 공통점은 표현 앞에서는 오로지 혼자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표현의 순간에는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없다.

-왜 연기도 그림도 죽도록 해야 하나. 최선을 다하게 하는 그 원천의 힘은 뭔가.

제가 관객이라면 배우가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것 같다. 제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이라면 작가가 죽을힘을 다해 그린 그림을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래서 죽도록 해야 한다.

예전에는 사력을 다해 매진하는 이유가 사명감, 책임감, 의무감 때문이었데, 지금은 이 감정들을 뛰어넘는, 이 감정들 이전의 그 어떤 감정 때문인 것 같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연기와 그림 작업 중 어떤 것이 더 어렵고 힘든가.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둘 다 매우 힘들다.

“예술가 지망생들 계속 도울 것”
2009년부터 장학회 운영
-만약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안 돌아가고 싶다.

-고등학생 시절과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약 3년 동안 거의 말을 안 하고 지냈다고.

제가 하는 대화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다. 입을 닫고 있으니까 오로지 생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허무해지지 않기 위해 허무하게 사라지는 말을 뱉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으니 대사를 말해야만 했다. 그래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기역, 니은, 디귿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호흡법도 다시 배워야 했다. 그런데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말하려고 하니 사실 제게는 한마디의 대사를 하는 것도 버거웠다.

-허리 수술 4번, 갑상선 제거 수술도 받았다고. 건강은 어떤지.

한창 배우로 살아갈 때 무리한 촬영 일정 때문에 여러 번 응급실에 실려 갔고 허리 수술도 4번이나 받았다.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시즌2(2019년) 촬영할 때 무리한 촬영 일정을 소화하느라 진통제를 맞아 가며 몸을 혹사시켰다. 그때 마지막으로 허리 수술을 했다. 그때보다는 건강이 좋아졌지만 그림 작업에 몰입하면서 건강이 나빠졌다. 갑상선 기능을 제거하면서 호르몬 생성 기능에도 영향을 미쳐 성격이 침착해졌다.

-2009년 장학회 ‘박신양FUN장학회’를 설립하고 연기자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지금 16기를 선발 중이다. 예술가 지망생들이 연극, 영화, 드라마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앞으로 작가, 배우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각각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영화, 드라마에 언제 출연할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에 촬영했지만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 ‘사흘’이 있긴 하지만. 연기든 그림이든 무엇인가를 계속 표현하고 싶다. 그 표현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계속 답을 찾아가고 있다.

신수현 기자

* 신기자 톡톡은 화제의 인물, 특정 분야에 성공한 사람, 독특한 인생을 살고 있거나 살아온 분, 특수 직종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연재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의 ‘+구독’을 누르시면 놓치지 않고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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