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지 않는 품질·완벽한 우아함’ 전통 고수[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로로피아나②
이탈리아에서 소재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한 럭셔리 브랜드는 아뇨냐, 제냐, 로로피아나가 있다. 1953년에 설립된 아뇨냐는 초창기 피에르 가르뎅, 샤넬, 발렌시아가 등 전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울 원단을 공급하는 제조업체로 시작했다. 기성복 사업은 1970년대부터 시작해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1999년 제냐 그룹이 인수했다.
제냐와 로로피아나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좋은 소재를 찾아다녔다. 호주산 메리노 울, 네이멍구산 캐시미어, 아프리카산 모헤어, 인도산 파시미나 캐시미어, 페루산 비쿠나 등 원사의 종류도 여러가지였다. 제냐의 중심이 되는 것은 양모다. 제냐는 직접 그해 최고의 양모 생산자를 선정하고 황금 양털과 트로피를 수여한 후 우승자와 독점으로 계약을 맺어 최고의 재료로 만든 최고의 슈트를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벨루스 오레움 컬렉션이고 이 컬렉션은 한 해에 고작 50여 벌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반면 로로피아나는 매년 호주와 뉴질랜드의 최고급 메리노 울 목장을 대상으로 로로피아나 소재의 탁월함을 알리는 로로피아나 레코드 베일(Lolo Piana Record Bale) 행사를 열고, 최고의 울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로로피아나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4가지 소재가 있다. 캐시미어 소재, 더 기프트 오브 킹스®( The Gift of Kings®) 울 소재, 비쿠냐 소재, 베이비 캐시미어 소재 등이다. ‘타협하지 않는 품질과 완벽한 우아함’이라는 로로피아나 브랜드의 명확한 특성을 바탕으로 브랜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동맹 강화 위해 메리노 양 한 쌍 선물 관습
로로피아나의 더 기프트 오브 킹스®( The Gift of Kings®) 울(사진①)은 스페인 왕가가 타국 군주와 관계를 도모하고 동맹을 강화하고자 메리노 양 한 쌍을 선물하던 관습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울 섬유의 평균 직경이 놀랍도록 얇고 탁월한 소재다. 희게 빛나는 순수한 색상, 주름진 구조, 천연 신축성, 피부에 닿는 최상의 부드러움을 선사하며, 습기를 배출하고 과도한 열을 흡수하는 기능이 있다. 고객은 기프트 오브 킹스® 울 소재의 제품 라벨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목장이 위치한 곳에서 매장에 이르기까지 고유한 스토리를 살펴보고 의류의 진품성과 추적성을 확인할 수 있다.
로로피아나 소재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는 비쿠냐 소재이다. 고대 잉카인들에게 ‘신들의 섬유’인 비쿠냐는 오직 왕을 위한 것이었다. 구름처럼 가벼우면서도 극도로 따뜻하고 매우 부드러우며 희귀한 비쿠냐 섬유는 왕이 아닌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었다. 야생동물인 비쿠냐(사진②)는 해발 4000m 이상의 안데스 지역에서 서식한다. 혹독한 겨울과 맹렬한 여름을 견디기 위해 적응한 비쿠냐의 털은 평균 직경이 12.5미크론(1미크론은 100만분의 1m)에 불과한 매우 미세한 섬유로 구성된다. 독특한 골드 톤의 비쿠냐 섬유는 극도로 가늘고 짧으며 밀도가 매우 높아서 탁월한 체온 조절 기능을 제공한다.
로로피아나는 비쿠냐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비쿠냐의 개체수는 희귀한 비쿠냐 섬유를 노린 밀렵꾼들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심각한 위기를 인식한 로로피아나는 1994년 페루 정부 및 안데스 지역사회와 계약을 체결하고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규정을 준수해 전 공급망에 걸쳐 살아 있는 상태의 비쿠냐에서 얻은 섬유를 구매, 가공, 유통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가졌다. 2008년 로로피아나는 프랑코 로로피아나의 이름을 딴 페루 최초의 민간 자연보호 구역을 조성하기도 했다.
기온 상승의 여파로 특히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물 부족과 가뭄 현상이 확대되었고, 그 결과 풀을 뜯는 초원과 목초지가 줄어든 비쿠냐는 건강과 생존을 위협받고 부자연스러운 이동 패턴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로로피아나는 2018년 페루의 아레키파 지역에서 수자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해당 지역의 가용 수자원을 늘리고 지역사회의 생계를 지원하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로로피아나는 이에 따라 방수막과 주변 지역으로 물을 보낼 수 있는 관개수로와 함께 여러 개의 빗물 집수조를 설치했다. 이렇게 힘들게 얻어진 비쿠냐 소재는 가격대도 하이엔드급이다. 국내에 수입된 비쿠냐 카디건은 1300만원대의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사진③).
베이비 캐시미어, 생후 1년 미만 염소서 채취
로로피아나 소재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는 베이비 캐시미어 소재(사진④)다. 캐시미어는 다 큰 카프라 히르쿠스 염소의 솜털에서 채취하지만, 베이비 캐시미어는 생후 1년 미만의 어린 염소에서만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소재를 직경이 13.5미크론에 불과한 매우 가늘고 부드러운 30g의 섬유로 가공한다. 공기를 가두어 추위로부터 효과적으로 몸을 보호하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이 부드러운 한 층의 솜털이 캐시미어 소재가 된다.
베이비 캐시미어는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그는 어린 카프라 히르쿠스 염소의 베이비 캐시미어 섬유를 발견하고, 뛰어난 안목을 발휘하여 이 섬유가 ‘아기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미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이비 캐시미어는 생산량이 매우 적어 다 큰 염소와 어린 염소의 섬유를 분리하도록 선택된 농가를 설득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그동안 로로피아나는 이탈리아에서 베이비 캐시미어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여 이 소재의 매우 섬세한 텍스처를 보존하고 자연적 특성을 강조하는 최적의 방적과 직조 방법을 연구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제작 기법이 완성되었고, 놀랍도록 부드러운 베이비 캐시미어 소재의 니트웨어를 시작으로 패브릭과 아우터웨어가 완성되었다. 로로피아나의 새롭고 탁월한 소재인 베이비 캐시미어는 즉각적인 성공을 거뒀다.
참고자료: loropiana com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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