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마저 넘어선 유튜브…거대 블랙홀이 되다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국내 모바일 플랫폼 1위는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카카오톡’이다. 한국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메시지를 쓰고 보내는 앱이다 보니 오랜 시간 그 위상을 공고히 지켜왔다. 그런데 카카오톡이 1위에서 내려왔다. 앱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유튜브의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가 4564만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로 떨어진 카카오는 4554만명으로 그 차이는 10만명에 달했다. MAU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서비스를 쓴 이용자 수를 뜻한다.
이뿐만 아니다. 유튜브의 음원 플랫폼 유튜브뮤직은 지난해 12월 국내 음원 플랫폼 시장에서 멜론을 제치고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유튜브뮤직의 MAU는 649만6035명으로, 멜론 623만8334명에 앞섰다.
유튜브가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이들이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런데 국민 메신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명실상부했던 선두 음원 플랫폼보다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게 됐다는 것은 이젠 그 수준마저 뛰어넘었음을 보여준다. 유튜브가 국내 주요 플랫폼들을 모조리 제치고, 한국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유튜브 천하’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플랫폼, 음원, 콘텐츠 등 다양한 산업과 장르에 걸쳐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것을 담는 영상 저장소
유튜브가 국내에 들어온 건 2008년이었다. 그런데 당시 나온 기사 제목들은 이랬다. ‘유튜브의 한국 진출 ‘무모한 도전’?’, ‘유튜브, 한국서 이름값 할까?’…. 당시에도 유튜브는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이었지만 한국에서 이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 전망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튜브에서 유통되던 영상의 의미는 한국 사람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방송 등에서 고화질, 1시간 분량,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보장하는 영상들을 보다가 저화질의 짧은 영상들을 보고 특별한 기대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다양한 색깔을 가진 크리에이터들이 하나둘씩 유튜브를 했고, 그만큼 많은 영상들이 올라오게 되면서 분위기는 변하기 시작했다.
위상이 확연히 달라진 건 2015년쯤이었다. 이때 국내 대표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 연간 검색어 순위 1위가 바뀌면서 큰 화제가 됐다. 2014년까지 네이버의 연간 검색어 1위는 ‘다음’이었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한 후, 다른 포털에 들어가 관련 검색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2015년 유튜브가 돌연 1위에 올라섰다. 영상을 보기 위해, 또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에선 새로운 영상 문화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곳곳에서 유튜브를 보고, 유명 유튜버들의 이름을 곧잘 알게 됐다. 그러나 한국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금처럼 막대했다고 하긴 어렵다.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비주류가 주류 시장에 편입되는 의미 정도였다.
그런데 이젠 확실하게 한 차원 다른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유튜브는 영상을 기반으로 무한한 확장을 하게 됐다. 무엇보다 누구나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점은 큰 동력이 됐다. 이를 통해 거대한 ‘놀이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여기선 수많은 개인이 곧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처음엔 남들보다 더 끼도 많고 잘 노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산하는 창구로 활용했다. 그러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크리에이터로 변신,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알리고 있다. 판이 커지자 기존 주류에 속했던 방송인, 전문가들도 각자 자신만의 채널을 만들어 이 흐름을 더욱 확산시켰다.
변화의 기류를 파악하고 적극 수용한 것도 도움이 됐다. 2021년부터 짧은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쇼츠’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이로써 유튜브는 30분 이내의 미드폼 콘텐츠 중심에서 1분 이내의 숏폼 콘텐츠로 영역을 확장했다. 숏폼 콘텐츠는 앞서 틱톡을 시작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유튜브는 이 같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갈수록 짧고 강렬한 영상에 빠져드는 이용자들을 대거 유입시키기 시작했다. 틱톡에 비해 한발 늦긴 했지만, 이미 수많은 크리에이터와 영상을 확보한 상황인 만큼 금세 큰 위력이 나타났다. 30분 정도의 영상을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하거나 자신이 없었던 사람들도 쉽게 영상 제작에 뛰어들게 되며 규모가 더욱 커졌다. 결국 유튜브로 인해 ‘60초 전쟁’이 더욱 가열되고, 영상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는 사람들의 각종 행위에 선행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요리, 화장 등을 하기 전 유튜브에서 ‘~하는 법’을 검색하고 관련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방송이나 넷플릭스 등의 주요 콘텐츠를 보기 전, 내용을 알기 위해 관련 리뷰 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주식 투자법부터 인문학 강연까지 각종 지식을 유튜브로 얻으려는 이들도 많다. 거대한 영상 라이브러리가 곧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은 라이브러리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판을 뒤흔들어야 살아남는다
문제는 유튜브의 공략에 시장이 잠식되고, 국내 주요 업체들은 속수무책이 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여러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유튜브가 프리미엄 상품에 유튜브뮤직을 ‘끼워팔기’ 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한 당국의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처음엔 소비자에게 유리할 수 있지만, 유튜브가 프리미엄 가격을 한국에서만 대폭 인상한 것처럼 추후 다른 서비스에도 가격 인상 등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지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자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국내 업체들의 과감한 시도와 혁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기업들도 자구책을 찾으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는 있다. 네이버는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을 선보이고 있으며, 숏폼 콘텐츠를 만드는 ‘클립 크리에이터’도 대거 모집했다. 카카오TV는 2월 15일부터 앱 서비스를 종료하고, 동영상 서비스 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멜론 역시 이용자가 음악 한 곡을 선택하면 자동으로 다음 곡들을 추천하고 연속 재생되는 ‘믹스 업’ 서비스, 여러 이용자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채팅을 할 수 있는 ‘뮤직 웨이브’ 서비스 등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유튜브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의 한국 공략은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틱톡은 숏폼 콘텐츠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튜브의 강점인 미드폼 콘텐츠로 확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유튜브와 정면 대결을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애플뮤직은 ‘애플뮤직 클래시컬’ 앱을 한국 시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클래식에 특화한 플랫폼으로, 애플뮤직을 구독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조성진, 임윤찬, 손열음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독점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했으며 베를린필하모닉, 카네기홀, 예술의전당, 롯데콘서트홀 등 국내외 대표 공연장과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글로벌 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 국내 시장을 제패한 유튜브.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글로벌 업체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은 과연 얼마나,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기발한 아이디어와 뛰어난 감각, 과감한 도전으로 글로벌 시장을 놀라게 한 K콘텐츠처럼 기존의 판을 뒤흔들 만한 획기적인 생각과 피나는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더 이상 국내 시장이 거대 블랙홀에 통째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면.
김희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press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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