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돈 많은 태진아를 감언이설로 꼬드겼나, 아니면 제 발로 이런 걸까

정석희 칼럼니스트 2024. 2. 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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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관찰예능, 아픈 아내와 철없는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가요계 원로 태진아의 아내 이옥형이 알츠하이머 증세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지난해 아들 이루의 음주운전 관련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으니 선처를 바란다고 했단다. 그 즈음 태진아가 인스타그램에 병색이 완연한 아내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리고 한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해서 '나와 아들이 반반씩 간호를 하고 있다, 목욕도 시키고 대소변까지 받아낸다'라고 했다는데 지난달이다. MBN 건강 정보 프로그램 '건강 신호등'에서 아내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담은 신곡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를 들려줬다. 제 2의 '옥경이'라나. 거기까지는 좋다. 치매를 비롯한 노년기 질환 환자와 그 가족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나섰다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TV조선 '조선의 사랑꾼' 예고를 보니까 설 특집으로 아내 이옥형이 방송에 나온다고 한다. 사랑꾼 역할을 자처하는 태진아를 향한 진행자들의 칭송이 이어지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만약에 나라면, 정신이 또렷하지 않은 나를, 염색 못해서 머리 위가 허옇고 구부정한 자세의 흐릿한 눈빛의 나를 남편이 방송 카메라 앞에 세운다? 아니 개인 SNS에라도 올린다? 생각만으로도 치 떨리게 싫다. 방송을 봐야 알겠으나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아내 본인의 의지가 아니지 않겠나. 사진 공개만 해도 그렇다. 본인은 치레단장하고 형형색색 옷을 갈아입어 대는 사이에 아내 옷은 몇 벌이 채 안 된다. 살다 살다 자신과 아들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 병든 아내, 어머니를 이용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그야 이미지 개선이 주 목적이겠으나 그 외의 많은 연예인들은 돈 때문에 가족 예능에 출연한다. 2017년 KBS '살림하는 남자들'이 출발할 당시 가족 당 한 회 출연료가 700만 원 안팎이라고 들었다. 대체 얼마를 받기에 저렇게까지 하느냐 관계자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거기서 세월이 흘렀고 또 종편이 지상파보다 많이 주니까 회당 1000만원은 족히 넘지 싶다. 하지만 관찰 예능 스튜디오 메인 진행자들이 영상 보며 몇 마디 툭툭 던지고 천만 원 넘게 받아 가는 세상이니 가족 대동하고 나와 보여줄 거 못 보여줄 거 다 보여주고 천만 원 남짓이라,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액수다. 이 가격이 연예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그렇지 일반인이라면 '어떻게 저런 걸 보여줄까?' 싶게 탈탈 털리더라도 100만원 한참 아래라고 한다.

돈이 필요해서든 관심이 필요해서든 다 각자 소관이 아니겠나. 그러나 아이를 앞세우는 경우, 아이가 상처 받을 일이 벌어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낳은 내 자식이라 할지라도 내 소유물은 아니지 않나. 의사 결정이 불가능한 아이의 방송 출연, 특히 부정적인 사안에 노출시키는 거, 이제는 공론화해야 한다.

MBN '한번쯤 이혼할 결심'. 서로 다른 처지의 세 부부가 가상 이혼을 체험해보는 기획이다. 이혜정네는 자녀들이 이미 성인이고 류담네는 16개월 쌍둥이, 아직 어리지만 정대세네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나이다. 과연 아이들이 가상 설정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까? 왜 아이들이 굳이 그런 체험을 해봐야 하나? 3화에 이제 아빠와 따로 살게 되었다고 아이들에게 전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그걸 보고 스튜디오에서 단체로 눈물 바람들이다. 아이가 상처 받으리라는 걸 정말 몰랐을까?

어린 아이들을 방송에 이용하는 거, MBN '고딩 엄빠'가 대표적이다. 어떻게 해서 자신이 태어났는지, 얼마나 갈등이 심했는지, 누가 자신을 격렬하게 부정했는지 방송에 다 나오지 않나. 연예인들은 돈이라도 많이 받지 '고딩 엄빠'에 나와서 일반인 출연자가 얼마나 받을까. 그러나 그 돈이 필요해서 나오는 출연자가 태반일 것을. '고딩 엄빠' 영상이 유튜브만 해도 1400개가 넘는다. 엄마와 아이의 이름이 다 공개 됐는데, 아이들은 점점 커갈 텐데, 학교에 다니고 친구도 생길 텐데 어쩔 거냔 말이다. 사람들이 너무 못 됐다.

자기 이미지를 위해서, 혹은 돈이 필요해서 아픈 아내를 앞세우는 것과 철모르는 아이를 이용하는 것, 어느 쪽이 더 나쁠까? 제일 나쁜 건 감언이설로 꼬드겨서 방송에 끌어들이는 제작진이 아닐는지.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TV조선, 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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