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한 눈에 보는 ‘설 명절 변천사’ [설특집]

이나경 기자 2024. 2. 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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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 전 설빔을 차려입고 귀성길에 오르는 가족의 즐거운 모습. 경기일보DB

 

우리에게 한 해의 시작은 두 번 존재한다. 1월 1일과 설날이다.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며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 풍경 역시 바뀌고 있다. 고향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전날부터 돗자리를 펴고 노숙을 하기도 했던 ‘그때 그 시절’부터 긴 연휴를 맞아 해외 여행객들로 공항이 붐비는 오늘날까지. 설 명절 풍경의 시대별 변화상을 살펴봤다. 많은 것이 바뀌었어도 새해를 기리고 서로에게 ‘복’을 듬뿍 전달하며 축복하는 마음만은 여전했다.

■ 한때 사라질 뻔했던 우리의 설날…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설날은 본래 음력 1월 1일인 정월 초하루를 일컫는다. 지금은 태양력(양력)을 사용하지만 과거 우리 조상은 달을 주기로 시간의 흐름을 정하는 음력을 사용했다. 음력 새해 첫 달 첫날이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첫날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었다.

1896년 고종황제는 태양력을 수용했지만 조상들은 설 차례와 새해 인사 등을 나누는 신성한 날인 설날을 계속해서 기념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을 펼치며 설날 등 고유 명절을 억압하고 일본의 명절과 행사 의식을 강요했다.

양력과세는 광복 후에도 이어졌다. 전통 설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의 ‘신정(新正)’과 ‘오래된 정월’이라는 뜻의 ‘구정(舊正)’이란 표현은 이러한 배경 속 탄생했다. 1949년 양력 1월 1일이 3일 설 연휴로 지정됐고, 이후 설은 오랜 세월 공휴일 및 비공휴일 문제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현대의 정부에서는 신정과 구정 연휴를 두 번 쉬는 ‘이중과세(二重過歲)’ 등 행정 낭비가 이유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 정부는 ‘조상의 날’, ‘민속의 날’로 음력 정월 초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리고 드디어 1989년 민족 고유명절 ‘설날’은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정부가 음력 1월 1일 ‘민속의 날’을 설로 복원하고 3일 연휴를 결정했다. 그렇게 설날을 설날로 부르지 못한 설움의 역사는 회복됐다. 이후 1999년 신정 양력 1월 1일이 이틀에서 하루 연휴로 줄어들며 지금의 설날 형태가 갖춰졌다.

■ 설날 아침 풍경에 담긴 조상의 지혜

지난 2005년 설연휴 시민들이 우리의 민속놀이인 연날리기를 하는 모습. 경기일보DB

전통적인 새해 첫 달 첫날의 설날 명절에 행하는 모든 의식에 한 해를 잘 지내고자 하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일가친척과 친지를 만나면 덕담을 주고받으며 어린아이는 윷놀이와 널뛰기, 연날리기를 했다. 이러한 설날 놀이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데 보름날 연은 액연이라는 의미로 멀리 날려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잘 찾아보기 어렵지만 ‘복조리’를 걸어두는 것도 새해 대표적인 의식 중 하나였다. 정월 초하루에 파는 조리는 특별히 복을 가져다 준다 하여 복조리로 불렸는데 각 가정은 초하루 전날 밤부터 조리 장수로부터 1년 동안의 복조리를 구매했다. 쌀을 이는 도구로 그해의 행복을 조리와 같이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생긴 풍속으로 조리를 몇 개 묶어 방 귀퉁이나 부엌에 매달아 뒀다. 신년 토정비결을 보는 것 역시 전통적인 새해 풍습이었다.

■ 민족 대이동…주차장 같던 고속도로 이제는 해외로

지난 2007년 설연휴, 전국 고속도로에 귀경차량이 몰리던 가운데 서해안고속도로 매송~비봉구간(우측)의 차량들이 길게 늘어선 채 서행하는 모습. 경기일보DB

시대가 변화하며 설 명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도 변했다. ‘민족 대이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에게 설날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한 귀성객으로 가득 찼던 과거가 있다. 아침 일찍 눈도 못 뜬 어린 자녀를 태우고 우리네 아버지는 전날 저녁부터 귀성길에 올랐다. 옆자리의 어머니는 한 손에 지도를 펼치고 마치 주차장처럼 고속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 옆으로는 뻥튀기를 팔던 이들이 지나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성객들로 인해 펼쳐진 진풍경이 또 하나 있다. 서울역 등에서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예매가 열리는 날 전날부터 돗자리를 펴고 이불을 덮고 노숙하며 대기하던 이들의 모습이다. 이제는 현장 예매보다는 온라인이나 모바일 등으로 예약 시스템이 대부분 전환했는데 여전히 직장인 등은 고향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마치 ‘카운트다운’처럼 시간을 설정하고 온라인 대기 인원 몇 만명을 뚫기 위한 예매전쟁에 뛰어든다.

■ 설 명절…“꼭 가족과 보내야 하나요?”

지난해 설 연휴 해외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인천공항의 모습. 경기일보DB

전통적인 개념의 대가족 형태에서 핵가족, 1인 가구 시대로 가족의 의미가 변화하며 설 명절에 대한 의미도 변했다. 1인 가구와 핵가족 등에게 설날은 길고 긴 연휴 중 하나로 조상보다는 현재 가족 또는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는 의미가 됐다. 이러한 트렌드는 부모님을 뵈러 고향으로 내려가는 이보다 부모님이 직접 서울의 자식을 보러 오거나 연휴 기간 해외 방문객 수 증가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한 고속도로가 아닌 해외로 떠나기 위한 이들로 공항이 붐비는 것이다.

여행업계에서 설날을 비롯한 명절 연휴는 이제 대목 중의 대목이다. 지난해 설날 연휴 하루만 7만여명의 여행객이 해외로 출국했고 명절 닷새 간 인천공항 이용객 수는 61만명에 달했다. 특히 해외로 여행객을 위해 1월 초부터 홈쇼핑 등에서는 ‘반값’ 해외 항공권과 ‘항공&숙소’ 특가 상품 판매가 쏟아진다. 홀로 여행을 떠나는 ‘혼행족’, 반려동물과 함께 떠나는 이를 위한 상품 등은 특히 지금의 2030 MZ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난 특징이다. 설날은 숙박업계에도 대목 중 하나인데 여행을 떠나기 위해 반려동물을 맡기기 위한 반려동물 호텔의 인기 역시 최근의 현상이다.

현대인에게 설을 포함한 명절의 의미는 휴일이라는 인식이 더 강화하고 있다. 명절에 꼭 시댁이나 친정을 방문하지 않는 딩크족 젊은 부부, 직장인 1인 가구 등에게는 바쁘고 지친 일상 속 휴식의 개념인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 한 시장조사전문기업(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수도권 거주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날 등 명절에 관한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8명은 명절은 ‘휴일’이라고 대답했다. 또 10명 중 7명은 “설날에 항상 가족이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2016년 같은 질문에 61.3%가 대답했고 4년 후인 2020년엔 70.9%로 확대됐다. 다시 4년이 지난 지금 그 인식은 더 강화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난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해외 여행 수요는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지난해 주요 여행사에 따르면 설날 연휴 해외여행 수요는 최대 9천% 이상 늘어났다. 하나투어의 설 연휴 패키지 여행객은 1만5천여명으로 전년 대비 7천15%, 모두투어의 설 연휴 해외 패키지 예약객은 1만3천명으로 전년 대비 9천181%, 노랑풍선도 4천% 넘는 증가율을 나타냈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도입된 ‘온라인·비대면 추모·성묘’는 이러한 여행을 더욱 자유롭게 하는 데 한몫했다.

■ “진짜 전통은 가짓수 따지는 것 아니야”…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난 시대 변화는 차례상 위에도

여러 품목이 올라간 전통 차례상의 모습. 경기일보DB

지난해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만 20세 이상 성인 남녀 1천500명을 대상으로 한 ‘제례 문화 관련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성인 절반 이상(55.9%)은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제사 과정의 개선 사항으로는 제수 음식의 간소화(25.0%), 형식의 간소화(19.9%), 남녀 공동 참여(17.7%),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제사(17.2%) 등이었다.

조상에게 한 해 문안인사와 같은 설 차례상을 차리는 것은 설날의 대표적인 풍습 중 하나이다. 설 차례상의 변화에서 시대 흐름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가족 구성원 감소로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리는 이가 늘어났다. 친척과 친지 등 대가족이 함께 모이던 시절에서 4인 핵가족으로의 변화, 그리고 1인 가구의 등장으로 가족의 형태는 변화했다. 세대의 변화와 함께 인식의 변화도 이뤄졌다. 더 이상 전통적인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유교의 상징과도 같은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지난 2022년 추석을 앞두고 차례상 간소화 표준안을 발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 지난해에는 설을 앞두고 ‘현대화 제사 권고안’을 발표하며 차례상 간소화 캠페인을 진행했다. 과일(밤, 사과, 배, 감)과 삼색 나물, 구이, 김치, 술 등 음식은 여섯 종류였다. 전은 부치지 않아도 되고 음식 놓는 위치는 가족이 상의해서 정하면 된다. 성균관 측은 “사계 김장생(조선 중기 정치가·예학 사상가) 선생의 ‘사계전서’에도 ‘밀과나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을 꼭 차례상에 올리지 않아도 된다”며 “조상을 기리며 후손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차례의 의미”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시대 변화에 발맞춰 차례상도 변화하는데 매년 장바구니 물가를 나타내고 알뜰하게 장을 볼 수 있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정부(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차례상 비용’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해당 발표의 목적은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가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등에서 최대한 알뜰하게 장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고 이와 함께 평균적인 그 시대의 차례상 총 비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aT는 2018년부터 간소화 차례상 품목과 구입 비용을 발표했는데 전통 차례상은 총 28개 품목, 여기에 조기 및 녹두전 등이 제외된 간소화 차례상은 총 18개 품목으로 구성됐다.

과거에는 전통시장에서 품목을 하나하나 직접 사와 상을 꾸렸다면 이제는 만들어진 완제품을 사오는 이들도 늘어났다. 1인 가구의 경우 아예 ‘밀키트’나 배달을 통해 차례상을 차리는 이들도 늘어났다. 매년 명절이면 보도되는 가족 간의 다툼과 불화, 이혼 기사 등은 며느리에게 전가된 명절증후군과 스트레스를 나타낸다. 직장일을 하는 등 맞벌이 부부의 가족 등에게 주문을 통한 간편 차례상은 ‘히트 상품’이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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