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김예지 의원 가방 속을 들여다보다[인터뷰]

이두리 기자 2024. 2. 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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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자 피아니스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의 이름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MZ세대, 강아지 집사, 여당 비상대책위원. 김 의원은 자신이 여러 가지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해 심부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미래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1호 영입인재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 김 의원은 ‘최초의 시각장애인 지역구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김 의원을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 의원의 가방 속 소지품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도 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피아노 치는 국회의원’이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아와 정치인으로서의 자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나.

“피아노는 관객과 호흡해야 하고 정치는 국민과 호흡해야 한다. 자기 연주를 하는 것으로 끝이면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렵다. ‘자기 정치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정치도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함께 호흡하는 게 중요하다. 피아노 독주를 할 땐 내가 연주를 주도하지만 반주를 할 땐 상대를 서포트(후원)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이끌어야 하는 부분에는 나서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땐 내 목소리를 줄이는 건 정치인의 덕목이기도 하다.”

-의정활동 내용을 그림과 쉬운 언어로 풀어 설명한 ‘이지 리드’ 형식의 의정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지 리드 의정보고서는 원래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쉽게 하려고 만든 거다. 그런데 글씨가 커서 보기 편하고 그림과 설명이 함께 있으니까 결국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자료가 됐다. 이처럼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이라는 한 집단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지난해 천하람 개혁신당 최고위원(당시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의 ‘국회의원은 정상적인 국민이 보기에 정신병자들’이라는 발언을 “장애인 혐오 표현”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정치인들의 부정적인 부분을 비유하는 데에 정신질환자를 이용한 것은 지적받아 마땅하다. 공적인 행보를 하는 정치인의 이러한 발언은 굉장히 안 좋은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천 최고위원의 표현이) 지금 정치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걸 왜 모르겠나.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손가락이 누군가의 눈을 찌를 수도 있다.”

-깜깜이, 절름발이, 벙어리 등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장애 혐오성 표현이 많이 쓰인다.

“그게 잘못된 표현인 줄 몰라서 그런다. 그래서 인식 개선 교육이 필요한 거고 누군가 잘못을 끊임없이 지적해 줘야 한다. 이제 ‘일반인’과 ‘정상인’을 구분하는 표현도 잘 안 쓰지 않나. 그것도 처음에는 소수자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이라는 걸 다들 잘 몰랐다. 상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로잡는 데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건 삽시간에 일어난다.”

-지난 5일에는 수어의 날(2월 3일)을 맞아 비상대책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수어로 인사를 했다. 김예지가 생각하는 ‘지도부의 언어’란 무엇인가.

“우리는 여당이다. 좀 더 많은 분을 우리가 다 포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자와 수어 모두 우리의 언어인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 수어는 시각장애인인 나에게도 굉장히 어렵다. 나는 내 표정이나 동작을 볼 수 없으니까 일일이 수어 표현법을 만져보고 익혀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당이 이런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21대 국회가 저물어 간다. ‘초선 비례대표’를 넘어 재선에 도전할 생각이 있나.

“국회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고, 지금 하던 것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기회가 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아직 숙제다. 종로에서 13년간 학교에 다녔고, 용산에서 대학교를 나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런데 초선 비례대표로서 도전할 수 있는 지역구인가 생각해 보니 부담이 있어서 고민하다가 지역구 공천 신청은 하지 않았다. 선거구 획정도 안 된 상태라 혼란스럽다. 누군가 조언을 해 주면 좋겠다.”

국민의힘 김예지의 ‘왓츠 인 마이 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자 피아니스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의 가방 안에는 안내견 조이의 배변봉투, 시각장애인용 흰지팡이를 비롯해 다양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박민규 선임기자

①시각장애인용 흰지팡이. 안내견 ‘조이’가 없을 때 김 의원은 흰지팡이를 펼쳐 길을 짚으며 걷는다. 노인 보행용·지체장애인용 지팡이와 구분하기 위해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는 흰색으로 만든다.

②지난해 여야 청년 국회의원들이 호주 정부의 초청을 받아 호주를 방문했을 때 구입한 캥거루 인형 파우치.

③지난 1월 퇴사한 보좌진이 김 의원에게 선물한 엽서. 직접 찍은 바다 사진 위에 사진을 설명하는 점자가 인쇄돼 있다.

④김 의원이 직접 만든 향수. 향수 이름은 ‘조이’라고 지었다.

⑤각종 상비약. 김 의원은 2020년 의약품·의약외품의 용기나 포장에 점자 표기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고, 해당 법안은 2021년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사진 속 의약품의 포장에는 아직 점자가 표기돼 있지 않아 김 의원은 포장 용기의 모양으로 약들을 구분한다.

⑥김 의원의 의정활동 자료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 겉면에는 ‘국립아시아 문화전당’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 김 의원은 지난 4년간 쭉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했다.

⑦김 의원이 2019년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던 당시 더블베이스를 맡았던 발달장애인 연주자가 선물해준 열쇠고리.

⑧안내견 ‘조이’의 배변 봉투.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자 피아니스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퇴직한 직원이 직접 찍어서 선물한 바다 사진의 점자 문구를 읽어주고 있다. “아주 가까이에 옥빛 바다에 파도가 치고 있고 하얀 포말이 부서지고 있다. 사진 하단에는 물에 쓸어내려가 고운 표면을 자랑하는 모래 바닥이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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