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파서 못나가겠어요” 1800만명 ‘무단결근’시킨 축제가 있다? [올어바웃스포츠]
‘엄청 아픈 월요일(Super sick Monday)’로 불리는 이 현상은 단일 스포츠 경기중 가장 큰 이벤트인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 ‘슈퍼볼(Superbowl)’이 원인입니다. 해마다 1억명이 넘는 미국인들은 2월 둘째주 일요일 저녁에 열리는 슈퍼볼을 즐기며 주말 밤을 보냅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모여 버팔로윙과 맥주를 즐긴 미국인들이 다음날 숙취와 피로에 못이겨 출근과 등교를 포기하는 것이죠.
이때문에 슈퍼볼이 열리는 날을 토요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광란의 토요일’을 보내고 몸과 마음을 정돈할 휴식일인 일요일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NFL 사무국은 요지부동입니다. 로저 구델 NFL 사무국장은 2018년 인터뷰에서 당분간 ‘슈퍼볼 토요일’은 없을 것이란 점을 재확인했죠. 도대체 왜 NFL은 미국인들의 ‘월요병’을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요. 슈퍼볼이 일요일에 열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다보니 생산성 하락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일부 연구에선 2021년 슈퍼볼 다음날 자리에 없는 직원들로 인해 35억달러(4조6000억원)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했다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매년 전국적인 월요병 유행이 있다보니 슈퍼볼 직후 월요일을 공휴일로 만들자는 목소리가 잊을만 하면 나옵니다. 미국 근로자의 42%가 슈퍼볼 다음날이 공휴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엔 미국 테네시주 두 하원의원이 이같은 내용의 법안을 제출하기도했죠. 조 타운스 주니어 의원은 “1,6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슈퍼볼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약 800만 명이 사전 휴가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법안 발의 이유를 밝혔죠.
또 다른 방법은 슈퍼볼을 토요일에 개최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미국 플로리다의 18세 고등학생은 온라인 청원 사이트 ‘Change.org’에 슈퍼볼58(2024년 대회) 개최요일을 토요일로 변경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이는 14만5000명의 서명을 받으며 해당 사이트 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일요일 슈퍼볼’이 더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볼수 있도록 하는 공리주의적 선택이었다는 구델 사무국장의 말은 일리가 있어보입니다. 2013~2014년 미국의 요일별 황금시간대 TV 시청자수를 비교하면 일요일은 125만명으로 가장 높습니다. 반면 토요일은 108만명으로 금요일(10만명)과 비슷한 일주일중 최저 수준이었죠. 일요일엔 다음날 출근을 위해 약속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지만 토요일은 친구들과 집밖에서 약속을 잡거나, 잔업을 위해 직장에 출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보니 시청률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역대 미국의 일요일 최고 시청률 10개중 9개가 슈퍼볼이었던 것이 NFL 사무국의 결정을 지지하는 근거중 하나입니다.
시청률 차이는 NFL의 수익과도 직결됩니다. 시청률이 높을수록 중계권 계약은 천정부지로 뛰기 때문이죠. 특히 시청률이 40% 육박하는 슈퍼볼의 중계권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ViacomCBS는 3시즌의 슈퍼볼 중계를 포함한 일요일 NFL 경기 중계를 유지하기 위해 11년간 연간 21억달러(약 2조7800억원)를 지불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번 슈퍼볼의 중간광고 단가가 30초에 700만달러(약 90억원)인 이유도 1억명 안팎의 미국인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매력때문이죠.
이때문에 전체 매출의 60%에 달하는 중계권 판매금액에 의존하는 NFL 입장에선 팬들의 원성보다 TV 시청률을 더욱 신경쓸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슈퍼볼을 개최하는 도시들에게도 토요일의 슈퍼볼은 썩 반갑지 않습니다. 슈퍼볼 개최지는 매년 NFL이 개최를 희망하는 도시들과 교섭을 통해 이뤄집니다. 희망 도시들은 경쟁적으로 유치전에 뛰어드는데, 슈퍼볼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슈퍼볼 주최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서 개최된 슈퍼볼57은 애리조나에서 총 13억달러의 경제활동을 창출했고, 애리조나 지역에 7억 2610억달러를 기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연중 1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창출됐고, 이로 인해 늘어난 근로소득은 4억 9410만달러였습니다.
슈퍼볼 하나를 보기 위해 미 전역에서 애리조나주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슈퍼볼 주간인 2월 9일~12일간 애리조나를 방문한 외부인은 약 10만명이었고 이들은 2억 2100만달러를 지출했습니다. 슈퍼볼을 위해 금요일이나 토요일부터 개최장소에 들어와 휴가를 즐긴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슈퍼볼이 토요일에 열린다는 것은 개최 도시에게는 슈퍼볼의 후광이 줄어든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겠죠.
특히 슈퍼볼은 단순히 스포츠 경기에 국한되지 않은 축제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전후반 사이 열리는 하프타임쇼는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무료로 공연을 하고, 치킨 7억마리가 잡아먹히는 등 음식 소비량은 추수감사절 다음으로 가장 많습니다. 오는 11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슈퍼볼58에선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가 4년만에 재격돌합니다. 설연휴 마지막날 아침, 세계 최고의 스포츠 경기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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