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파서 못나가겠어요” 1800만명 ‘무단결근’시킨 축제가 있다? [올어바웃스포츠]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2024. 2. 9. 1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1일(현지시간) 개최되는 슈퍼볼58의 로고 <출처-NFL>
매년 2월 셋째주 월요일, 미국에선 지독한 풍토병이 국토를 휩씁니다. 1000만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몸을 가누지 못해 출근을 포기하고, 몇몇 학교는 휴교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일부에선 이 날을 아예 휴식일로 지정해 국민들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엄청 아픈 월요일(Super sick Monday)’로 불리는 이 현상은 단일 스포츠 경기중 가장 큰 이벤트인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 ‘슈퍼볼(Superbowl)’이 원인입니다. 해마다 1억명이 넘는 미국인들은 2월 둘째주 일요일 저녁에 열리는 슈퍼볼을 즐기며 주말 밤을 보냅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모여 버팔로윙과 맥주를 즐긴 미국인들이 다음날 숙취와 피로에 못이겨 출근과 등교를 포기하는 것이죠.

이때문에 슈퍼볼이 열리는 날을 토요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광란의 토요일’을 보내고 몸과 마음을 정돈할 휴식일인 일요일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NFL 사무국은 요지부동입니다. 로저 구델 NFL 사무국장은 2018년 인터뷰에서 당분간 ‘슈퍼볼 토요일’은 없을 것이란 점을 재확인했죠. 도대체 왜 NFL은 미국인들의 ‘월요병’을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요. 슈퍼볼이 일요일에 열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월요병’으로 35억달러 손실...미국 지방 의회에선 “슈퍼볼 다음날, 공휴일 돼야” 법안 제출도
지난해 슈퍼볼 우승팀인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팬들이 거리 응원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Kyle RivasGetty Images>
슈퍼볼로 인한 ‘월요병’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지난해 슈퍼볼57을 앞두고 민간조사기관 UKG 인력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직원들중 약 2700만명이 슈퍼볼 다음날 정상적인 출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됐습니다. 1880만명은 집에서 쉴 것으로 점쳐졌고, 780만명은 소위 ‘오전 반차’를 낼 예정이었죠. 약 300만명은 사전에 연차를 내지만, 대부분은 ‘무단 결근’도 불사한다는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다보니 생산성 하락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일부 연구에선 2021년 슈퍼볼 다음날 자리에 없는 직원들로 인해 35억달러(4조6000억원)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했다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매년 전국적인 월요병 유행이 있다보니 슈퍼볼 직후 월요일을 공휴일로 만들자는 목소리가 잊을만 하면 나옵니다. 미국 근로자의 42%가 슈퍼볼 다음날이 공휴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엔 미국 테네시주 두 하원의원이 이같은 내용의 법안을 제출하기도했죠. 조 타운스 주니어 의원은 “1,6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슈퍼볼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약 800만 명이 사전 휴가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법안 발의 이유를 밝혔죠.

또 다른 방법은 슈퍼볼을 토요일에 개최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미국 플로리다의 18세 고등학생은 온라인 청원 사이트 ‘Change.org’에 슈퍼볼58(2024년 대회) 개최요일을 토요일로 변경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이는 14만5000명의 서명을 받으며 해당 사이트 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해마다 21억달러? 이건 못참지” NFL 사무국이 ‘월요병’ 치료 대신 선택한 ‘돈방석’
2013-14시즌 미국 요일별 황금시간대 TV시청자수 <출처=statista>
NFL팬들의 원성은 하늘을 이처럼 하늘을 찌를듯 하지만 사무국은 여전히 일요일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텔레비전 시청률 때문입니다. 2018년 구델 NFL 사무국장은 한 인터뷰에서 “슈퍼볼을 토요일에 개최하자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안다”면서도 “그럼에도 일요일 개최를 고수하는 것은 시청자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요일에 TV 시청자들이 훨씬 많다”며 “팬들이 슈퍼볼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원하고 우리는 그것을 만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일요일 개최가 (토요일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일요일 슈퍼볼’이 더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볼수 있도록 하는 공리주의적 선택이었다는 구델 사무국장의 말은 일리가 있어보입니다. 2013~2014년 미국의 요일별 황금시간대 TV 시청자수를 비교하면 일요일은 125만명으로 가장 높습니다. 반면 토요일은 108만명으로 금요일(10만명)과 비슷한 일주일중 최저 수준이었죠. 일요일엔 다음날 출근을 위해 약속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지만 토요일은 친구들과 집밖에서 약속을 잡거나, 잔업을 위해 직장에 출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보니 시청률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역대 미국의 일요일 최고 시청률 10개중 9개가 슈퍼볼이었던 것이 NFL 사무국의 결정을 지지하는 근거중 하나입니다.

시청률 차이는 NFL의 수익과도 직결됩니다. 시청률이 높을수록 중계권 계약은 천정부지로 뛰기 때문이죠. 특히 시청률이 40% 육박하는 슈퍼볼의 중계권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ViacomCBS는 3시즌의 슈퍼볼 중계를 포함한 일요일 NFL 경기 중계를 유지하기 위해 11년간 연간 21억달러(약 2조7800억원)를 지불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번 슈퍼볼의 중간광고 단가가 30초에 700만달러(약 90억원)인 이유도 1억명 안팎의 미국인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매력때문이죠.

이때문에 전체 매출의 60%에 달하는 중계권 판매금액에 의존하는 NFL 입장에선 팬들의 원성보다 TV 시청률을 더욱 신경쓸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10만명이 2억달러 쓰고 가는 ‘슈퍼볼 위크앤드’...개최 도시들도 “일요일 슈퍼볼 못잃어“
미국 방송사 NBC의 간판 프로그램 ‘선데이나이트 풋볼’ 로고.. <출처=NBC>
‘NFL=일요일’이라는 전통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번 시즌 기준 NFL은 일주일중 일요일과 월요일, 목요일 이렇게 세 개 요일에 경기를 갖지만, 경기 대부분이 일요일에 몰려있습니다. 이는 1961년 ‘스포츠방송법’이 제정되고 난 후 만들어진 전통입니다. 당시 NFL은 방송사 한 곳에 중계권을 몰아서 판매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대신 고등학교 풋볼, 대학교 풋볼이 열리는 금요일과 토요일 시간대는 침범하기 않겠다며 일요일에만 경기를 하는 것으로 합의합니다. 이 때문에 풋볼 팬들에게 NFL은 곳 일요일의 스포츠 축제로 인식됐고, 슈퍼볼 역시 이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일요일론자’들의 주장이죠. 실제로 NFL은 현재 ‘Super sunday’, ‘Superbowl sunday’에 대한 상표권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슈퍼볼을 개최하는 도시들에게도 토요일의 슈퍼볼은 썩 반갑지 않습니다. 슈퍼볼 개최지는 매년 NFL이 개최를 희망하는 도시들과 교섭을 통해 이뤄집니다. 희망 도시들은 경쟁적으로 유치전에 뛰어드는데, 슈퍼볼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슈퍼볼 주최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서 개최된 슈퍼볼57은 애리조나에서 총 13억달러의 경제활동을 창출했고, 애리조나 지역에 7억 2610억달러를 기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연중 1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창출됐고, 이로 인해 늘어난 근로소득은 4억 9410만달러였습니다.

슈퍼볼 하나를 보기 위해 미 전역에서 애리조나주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슈퍼볼 주간인 2월 9일~12일간 애리조나를 방문한 외부인은 약 10만명이었고 이들은 2억 2100만달러를 지출했습니다. 슈퍼볼을 위해 금요일이나 토요일부터 개최장소에 들어와 휴가를 즐긴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슈퍼볼이 토요일에 열린다는 것은 개최 도시에게는 슈퍼볼의 후광이 줄어든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겠죠.

치킨 7억마리 잡히고 대통령이 코치까지...슈퍼볼58 마지막 주인공은?
슈퍼볼58 중계특수를 노리고 호텔 수영장에 대형 전광판을 설치한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출처=travelweekly>
미국에서 슈퍼볼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2년 슈퍼볼에 진출한 마이애미 돌핀스의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전술을 추천한 일이 있을 정도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즐기는 스포츠 이벤트지요.

특히 슈퍼볼은 단순히 스포츠 경기에 국한되지 않은 축제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전후반 사이 열리는 하프타임쇼는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무료로 공연을 하고, 치킨 7억마리가 잡아먹히는 등 음식 소비량은 추수감사절 다음으로 가장 많습니다. 오는 11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슈퍼볼58에선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가 4년만에 재격돌합니다. 설연휴 마지막날 아침, 세계 최고의 스포츠 경기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참고외신과 웹페이지> ◎https://www.livenowfox.com/news/super-sick-monday-record-18-8m-americans-may-miss-work-2023-survey ◎https://www.challengergray.com/blog/employers-should-expect-productivity-loss-monday-after-2022-super-bowl/ ◎https://www.ukg.com/about-us/newsroom/record-188-million-us-employees-may-miss-work-super-bowl-monday-runaway-absence-sunday-night-also-likely?ms=1142.857142857143 ◎https://www.axios.com/2023/02/12/super-bowl-saturday-dream ◎https://www.sportscasting.com/why-does-the-nfl-refuse-to-move-the-super-bowl-to-saturday/ ◎https://www.azsuperbowl.com/super-bowl-lvii-produces-1-3-billion-for-arizonas-economy/ ◎https://www.nytimes.com/1972/01/04/archives/coach-nixon-sends-in-a-play-to-the-miami-dolphins-coach-nixon-sends.html ◎https://www.youtube.com/watch?v=ZIOajzvzn38&ab_channel=%EB%B9%84%EC%9A%98%EB%93%9C%EC%8A%A4%ED%8F%AC%EC%B8%A0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