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마현이 허물지 못한 '강제징용 추도비를 지키는 마음'
"日정부는 외압에 약해…한국인들도 목소리 높여 달라"
(서울=뉴스1) 권진영 박동해 기자 = 일본 군마현(県)이 현립 공원에 세워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를 강제 철거한 지, 8일로 열흘이 지났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새겨진 비석은 중장비에 산산조각이 났고, 휑한 빈터만이 남았다.
◇'강제 연행' 언급이 정치활동이라는 日정부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의 이시다 마사토(石田正人)씨는 "분노·슬픔, 분함과 우리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으로 가득 차있습니다"며 허무한 심정을 토로했다.
현은 추도비 앞에서 추도 행사를 연 시민단체가 규정을 위반했다며 철거를 정당화했다. 행사에서 언급된 "강제 연행"이라는 언급이 해당 시민단체가 하지 않기로 약속한 '정치 활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시다씨는 이같은 현의 논리가 부조리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철거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단순히 하나의 단어일 뿐인 '강제 연행' 발언이 정치 활동에 해당한다는 논리·주장이 공적 기관인 현과 재판소에서 인정됐다는 점"을 꼽았다.
이어 통상적으로 "정치 활동이라는 것은 정당의 선거 활동과 세력 확장을 목표로 하는 선전 활동"을 의미하는데,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은 공원 안에서 이같은 활동을 한 적은 "일절 없다"고 했다.
어째서 '강제 연행' 발언이 정치 활동에 해당하는지 이유를 묻자 기관들은 "현 정부가 '강제 연행'이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정권 비판에 해당하므로 정치 활동이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이시다씨는 "이렇게 정권이나 권력자에게 유리한, 잘못된 논리는 아웃"이라고 비판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 사상·신조의 자유를 현과 재판부가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제 연행은 단지 역사학·사회학에서 사용되는 객관적 학술 언어라는 점도 재차 지적했다.
아울러 일본 내 조직화된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움직임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치인과 일부 언론, 학자 등과 손을 잡고 지자체 등 행정부에 항상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경계했다.
기우가 아니다. 실제로 군마현 추도비 철거를 촉구하며 이의를 제기한 세력은 '소요카제'라는 극우·역사 수정주의 성향의 시민단체다. 이시다씨는 이들이 군마현 추도비 철거를 "성공사례"로 간주해 다른 곳에서도 철거 촉구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비석은 허물어도 '기억하려는 마음'은 그대로
이시다 씨는 1990년대 중반, 전쟁 가해 역사를 조사하는 활동에 참가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외국인등록법 철폐 운동 및 중국인 강제 연행·강제노동 피해자 구제 등에 힘써왔다.
"한 명의 일본인으로서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 문제는 일본인 스스로의 생명·평화·인권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외국인의 목숨과 인권을 잘라 버리는 것을 용인하면 일본인도 그런 취급을 받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시다씨뿐만이 아니다. 철거된 추도비 원형을 본떠 만든 모형을 놓고 간 한 이름 모를 학생도, 나무에 "잊지 않겠다"는 문장과 함께 추도비 사진을 붙여둔 이도 모두 같은 마음이다.
온라인 청원페이지 'change.org'에는 "'군마의 숲'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 정지를 요구한다"는 서명 운동에 1452명이 참여했다.
목표 수 1500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서명란에는 "과거의 과오를 없었던 일로 만들면 또 전쟁이나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평화로운 미래 따위는 없다" "이런 조형물은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등의 댓글이 가득 적혔다. 이 청원은 일본인이 아닌 독일 사학자 라인하르트 죌너가 시작했다.
한국 국민의 목소리도 필요하다. 이시다 씨는 "일본 정부는 전부터 외압에 약하다"며 "지난날의 악법이었던 외국인등록법이 철폐될 수 있었던 것도 한국 정부와 한국 여론, 세계 종교 교단과 인권 단체 등이 일본 정부에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 내 외국인과 많은 일본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부디 많은 한국인들이 군마현에 한 번 더 추도비를 세우자고 일본 정부와 군마현 지사에게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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