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갈등설’ 군 총사령관 전격 경질...美 언론 “자충수될 수도”

박근태 기자 2024. 2. 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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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8일 공개한 유인물 사진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회의에서 발레리 잘루지니 우크라이나 군 총사령관과 악수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잘루지니 사령관을 해임했다. /EPA 우크라이나 대통령 언론 서비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일(현지 시각) 그간 불화설에 휩싸였던 발레리 잘루지니 군 총사령관(대장)을 경질하고 새 지휘부를 발표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지난해 ‘대반격’에 대한 평가부터 전쟁 전략, 전시 부패 대응 등 여러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을 보여왔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적전(敵前) 내부 분열설’에 휩싸였던 두 사령탑 간의 관계가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미국 CNN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잘루지니 총사령관을 만나 2년간 우크라이나를 지켜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 이후 가장 큰 변화로 군 지휘부를 새롭게 해야 한다”며 “오늘부터 새로운 지휘부가 우크라이나군 지휘를 맡게 될 것”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군이 요구하는 혁신과, 누가 군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며 “지금이 바로 그 혁신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잘루지니 전 총사령관은 2022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군을 이끌며 대러 항전을 지휘한 인물로 우크라이나군과 대중에게 신뢰받는 인물이다. 특히 전쟁 초기 키이우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물리치고 러시아가 점령했던 영토의 약 절반을 되찾으면서 국가영웅으로 떠올랐다.

잘루지니 총사령관의 경질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가장 큰 지도부 개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이를 염두에 둔 듯 “잘루지니 장군에게 지휘부의 일원으로 남아 달라고 요청했다”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잘루지니 전 총사령관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전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올해를 결정적인 해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군에는 즉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전쟁 현실을 고려한 군의 상세한 계획을 기대한다”며 “전선 관리·동원·모병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2022년, 2023년, 2024년의 전투는 세 가지 다른 현실이며 전쟁은 변화를 요구한다”며 “2024년은 새로운 접근법,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에 군 지휘부를 변경할 필요성에 대한 결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새로 총사령관에 임명된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중장은 방어전과 공격에 모두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시르스키 장군은 2022년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 당시 수도 키이우의 수비를 이끌었다. 그해 여름 우크라이나 동부 최대 도시인 하르키우에서 반격을 지휘했고 이후 동부 전선 전역의 군사 작전을 총괄했다.

잘루지니에 대한 경질설은 지난해 하반기 반격 실패 이후 러시아의 공세가 더욱 거세지고, 미국 의회 분열로 추가 군사 지원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난달 처음 제기됐다. 50만명 규모의 추가 병력 동원을 둘러싼 대립, 잘루지니 전 총사령관이 미국을 비롯해 서방과 몰래 휴전 논의를 하다가 들통난 것이 해임 사유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 평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보다 지지도가 높게 나타나 차기 권력의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의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안팎에선 이번 군 수뇌부 경질 사태는 전쟁을 이끄는 지도층 내 갈등을 그대로 노출된 결과로 평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야당 소속 의원인 올렉시 호차렌코는 이번 조치가 대통령의 “거대한 실수”라고 평가하고 “이 실수로 인해 나라에 위험이 따르며 우리 모두가 이 실수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트키우시나당 소속의 또 다른 야당 의원인 발렌틴 날리바이첸코는 “전쟁 중 군 지휘부를 보존하고 지원하며 비판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도와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서방 언론의 반응도 대체적으로 냉담하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쟁 중 군 고위 지휘부를 해임하는 결정은 작전계획 차질 같은 위험을 초래한다”며 “우크라이나에는 일반 참모직을 맡을 고위 지휘관이 없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잘루지니 장군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불리지만, 본인은 공개적으로 정치적 야망을 표명한 적은 없다”며 “이번 조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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