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취약차주 127만명과 연체율 8.6% : 위험한 뇌관 [視리즈]
한국경제 폭탄해체➊ 취약차주
사상 최고치 기록한 가계부채
크게 우려할 필요 없다는 정부
빠르게 치솟는 취약차주 연체율
취약차주 부채 해결책 필요해
금융‧사회적 안전망 강화해야
취약차주 위한 재정 지원 필요
# 고물가·고금리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월 기준금리를 3.5%로 인상한 이후 1년째 동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불었던 기준금리 조기 인하 기대감은 물거품이 됐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월 기준금리를 4차례 연속 동결했지만, 금리인하 가능성은 입에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되레 금리인하 가능성을 차단하고 나섰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향하고 있다는 더 큰 확신을 갖기 전에는 금리인하를 기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밝혔다.
# 문제는 앞으로의 한국 경제다. 고물가·고금리 기조를 버티기엔 곳곳에서 경고음을 울리는 폭탄이 너무 많다. 고물가는 여전히 서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가계부채도 마찬가지다. 치솟은 대출 금리에 취약차주는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2022년 이후 불거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우려는 2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고 있다.
# 이 폭탄들은 가뜩이나 우울한 한국 경제를 더 침울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 경제는 얼마나 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에 시달려야 할까. 한국 경제를 흔들 폭탄을 해체할 방법은 없을까. 더스쿠프가 고물가, 가계부채, PF대출 부실 폭탄의 해체법을 살펴봤다.
고금리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가계부채를 향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취약차주의 부채 폭탄 문제가 심각하다. 취약차주의 수가 늘고 있는 데다 연체율도 치솟고 있어서다. 한국 경제의 밑단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할 만한 문제가 아니다.
"과거 어느 시기와 비교해도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갈수록 증가하는 가계부채 탓에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내놓은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875조7000억원(가계대출 1759조1000억원+판매신용 116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 3분기 1871조1000억원을 기록한 이후 1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정부는 가계부채를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국제기구의 평가를 늘어놓는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가 높은 수준이지만 금융자산과 소득이 견고해 부채 문제가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낮다(국제통화기금 2023년 10월 14일)."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은 오랫동안 주목받았지만 금융에 구조적 위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국제신용평가사 피치 2023년 10월 20일)."
한편에선 "대출 상환능력이 높은 고신용자의 대출 비중이 높아서 별문제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고신용자 차주借主의 대출은 전체의 77.3%를 차지했다.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이 모조리 틀린 말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우려할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출 연체율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46%를 기록했다. 2019년 11월 0.48%를 기록한 이후 최고치다.
그 결과, 국내은행의 신규 연체채권 규모는 2021년 11월 9000억원에서 지난해 11월 2조7000억원으로 3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과 신용대출 연체율은 각각 0.11%에서 0.25%, 0.36%에서 0.76%로 두배 이상 높아졌다.
서민과 중·저신용자가 많이 찾는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내 79개 저축은행의 지난해 3분기 연체율은 6.15%를 기록했다. 2022년 말 3.41%와 비교하면 2.74%포인트 치솟았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4.74%에서 5.40%로 뛰었다. 저축은행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경제의 밑단인 취약차주가 겪는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다른 통계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인 취약차주 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분기 기준 6.4%를 기록했다. 가계대출자 수가 1978만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127만명이 취약차주라는 거다. 연체율도 높다. 취약차주의 연체율은 8.6%를 기록했다. 2021년 5.8%에서 2.8%포인트 상승했다.
이같은 취약차주는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취약차주로 이어질 수 있는 다중채무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다중채무자 수는 역대 최대치인 448만명을 기록했다. 다중채무자의 연체율은 2022년 2분기 0.9%에서 지난해 2분기 1.4%로 치솟았다.
이 때문인지 취약차주의 부채 폭탄을 해결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가장 좋은 방법은 취약계층의 재기를 지원하는 채무조정방안이다. 빚을 성실하게 갚은 취약차주의 채무부담을 덜어주거나 탕감해 주는 방식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취약차주의 가계대출 부실 문제가 가져올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채무를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일 수 있다"며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아직 이뤄내지 못해 '모럴해저드'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모럴해저드 논란은 최근에도 있었다. 금융위원회가 "2000만원 이하의 대출을 연체했다가 모두 상환한 차주의 연체 이력을 삭제하겠다" 밝히자, 논란이 일었다. 성실하게 돈을 갚은 사람만 바보가 됐다는 게 논란의 골자였다.
이에 따라 취약차주의 빚을 탕감해 줄 게 아니라 대출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저소득 차주가 부채의 덫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한 금융안전망과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을 비롯한 취약차주의 대출 목적이 주로 생활비, 주거비, 부채 상환 등에 사용하는 필수 비용이라는 이유에서다.
김상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취약차주의 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비금융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취약차주의 대출 목적과 용도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를 통해 취약차주의 대출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참에 취약차주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윤수 서강대(경제학) 교수는 "취약차주는 가계부채가 아니라 소득의 문제"라며 "대출로 대출을 막을 것이 아니라 취약차주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03년 한국 경제를 뒤흔든 신용카드 대란의 원인은 취약차주에 있었다. 국내 카드사는 소득이 없고,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도 신용카드를 대량으로 발급했는데, 이들이 현금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부실 뇌관에 불이 붙었다.
결국, 신용카드 대란이 터졌고 2000년 44만명 수준이던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 수는 2003년 239명으로 5.4배가 됐다. 당연히 한국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해 경제성장률은 3.1%를 기록했는데, 2022년 7.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였다. "가계부채는 별문제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정부가 취약차주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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