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부지에 이모까지…푸바오는 좋았겠네

박미향 기자 2024. 2. 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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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판다 돌본 오승희 사육사
소 30마리 키우던 집에서 자라
“동물들의 친구 꿈꿔” 직업으로
”푸바오, 4월에 잘 보내고 싶어”
몇해 전 어린 푸바오와 사진을 찍은 오승희 사육사. 오승희 제공

제인 구달이 탄자니아 야생 침팬지 연구를 시작한 해는 1960년이다. 그의 나이 고작 26살 때다. 그와 또래인 미국인 다이앤 포시도 비슷한 시기에 아프리카 고릴라 연구를 했다. 이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야생동물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경이로운 업적을 남겼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관점을 바꿔놓은 연구였다. 그 연구는 현대 동물권 확립에 초석도 되었다. 이 둘은 모두 여성이다. 여성 특유의 교감 능력이 연구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동했다. 국내에도 소수지만 이들처럼 동물과 교감하는 여성들이 있다. 에버랜드 판다월드 소속 오승희(32) 사육사가 대표적이다. 그를 지난달 19일 판다월드에서 만났다.

판다월드 출근하자마자 챙기는 것

푸바오를 포함해 에버랜드 자이언트판다 담당 사육사인 오승희씨. 박미향 기자

“푸바오가 만족스럽게 잘 먹고 잘 잤더라고요. 똥도 건강하게 잘 배설했고요, 양도 적당했어요.” 오 사육사는 아침 8시 출근하자마자 푸바오 가족들이 지난밤에 탈 없이 잘 지냈는지 확인한다. “넉넉하게 넣은 대나무를 밤에 다 먹었는지도 보고요, 변량도 보지만 똥을 눈 자리도 살펴요.” 평소 배변 습관과 다르면 걱정이 앞선다. 푸바오를 포함해 가족, 그러니까 아빠 러바오와 엄마 아이바오, 쌍둥이 동생들은 배변 습관이 모두 다르다. “실내에도 쉴 수 있는 셸터(은신처)가 있어요. 러바오가 가장 깔끔한 성격인데, 그 셸터에서 아래로 떨어뜨리는 식으로 변을 본다든지, 변 눌 곳을 정해 보거나 하거든요. 엄마 아이바오와 성격이 비슷한 푸바오는 여기저기 누는 편입니다.” 쌍둥이들 변은 아이바오가 먹어 처리한다. 야생동물의 흔적 처리법이다. “야생에서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그 흔적을 최대한 없애거든요.” 푸바오는 하루 10㎏ 정도의 변을 본다.

중국 쓰촨성 일대에 주로 서식하는 판다는 특이한 곰이다. 곰은 본래 잡식성인데, 판다는 채식을 한다. 대나무만 먹는다. 하루 10~12시간을 대나무만 씹으며 보낸다. 두 앞발로 대나무 줄기를 쥐고 나머지 발로 잎을 훑어내는 모습이 경이롭다. 이런 점 때문인지, 지금 판다는 세계적인 스타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50년 전만 해도 중국인들조차 그 존재를 몰랐다. 1869년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에 보낼 동물을 찾아다녔던 선교사 아르망 다비드 신부는 쓰촨 지방 한 사냥꾼 집에서 ‘검고 하얀 곰’ 모피를 발견했다. 며칠 뒤 그 사냥꾼은 “배 속에 나뭇잎이 가득한 곰”을 잡아왔다. 신부가 이 곰을 파리로 보내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무에서 쉬고 있는 푸바오. 박미향 기자

“판다가 자이언트판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푸바오 옆집에는 다른 종류의 판다도 살아요.” 오 사육사 말에 귀가 쫑긋한다. 레서판다를 말하는 것이다. 판다는 두 종류다. 자이언트(대왕)판다보다 몸집이 작고 너구리를 닮은 레서판다도 판다의 한 종류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에서 주인공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마스터 시푸’를 떠올리면 된다.

오 사육사가 관리했던 레서판다. 에버랜드 제공

현재 에버랜드에는 레서판다 세 마리가 산다. 오 사육사는 한동안 레서판다를 돌봤다. 각각 4살, 9살, 11살인 레아, 레시, 레몬은 생일 때마다 오 사육사가 만든 케이크를 선물로 받았다. 그는 당근과 여러 과일로 레서판다 얼굴과 똑 닮은 케이크를 만들었다. 케이크는 레서판다가 종일 즐겁게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됐다. “레서판다가 좋아할 만한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하고 만든 거죠.” 오 사육사 특유의 섬세하고 뛰어난 공감 능력이 빚은 결과였다. “사육사 일 중에 판다 장난감을 만드는 것도 있는데, 지금 자이언트 장난감은 선배님(송영관 사육사)이 전담하고 있어요. 저도 기회가 되면 도전하고 싶지만, 선배님이 워낙 탁월하게 잘 만드세요.”(웃음)

오 사육사가 사육사 생활을 얘기하고 있다. 에버랜드 제공

장난감 제작만 사육사 업무가 아니다. 판다월드 전체 부지는 7000㎡(2100평)로 광활하다. 2층 구조의 건물은 연면적이 3300㎡(1000평)이다. 이 건물에 들어선 방사장과 내실을 청소하고 나무도 관리한다. 관람객을 안내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판다 먹거리인 대나무를 챙기는 일은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판다는 육식동물 소화관을 가졌는데 채식하잖아요. 소화되는 양은 섭취량의 2% 정도밖에 안 됩니다. 지금과 같은 체형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많이 먹어야죠. 대나무를 잘 씻고 먹기 좋게 해두는 게 중요한 이유죠.”

경남 하동에 있는 한 산림조합에서 주 2회씩 대나무가 온다. 한번 오는 양은 500㎏. 판다 6마리의 끼니다. 자이언트판다가 하루에 먹는 대나무양은 대략 두당 15~20㎏이라고 한다. 국내 이름난 대나무 산지가 많은데 왜 경남 하동일까. “처음 판다가 왔을 때 중국 전문가들이 여러 곳을 다녔어요. 먹일 만한 대나무가 없으면 중국에서 가져온다 했는데, 하동 대나무를 보고 보드랍고 좋다고 했다 해요.” 자이언트판다는 설죽을, 레서판다는 맹종죽을 먹는다.

몇해 전 어린 푸바오와 사진을 찍은 오승희 사육사. 오승희 제공

“잘 보내는 게 올해 계획”

오 사육사는 대학에서 동물자원학을 전공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축산업을 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소나 개, 닭 등 동물들과 친해졌다. 소 30마리가 먹을 사료를 챙기고 출산을 돕고, 개 5마리를 키우면서 그들의 생태계를 이해하게 됐다. “동물들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사육사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 꿈은 요원해 보였다. “반려동물 산업이 발달하니깐 대학 친구 대부분은 동물병원, 애견미용업체, 반려동물업체 등에 취업했어요. 저와는 맞지 않았죠.” 하지만 그도 엄혹한 취업시장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졸업한 이듬해인 2014년 애견놀이방 운영업체에 들어갔다. “애견을 돌보면서 배운 게 많았고 재미도 있었어요.” 하지만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2017년 기회는 왔고 그는 잡았다.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사육사로 입사했다. 처음 배치받은 곳이 ‘국제화’ 부서. 안내견 훈련 등이 주 업무인 안내견학교였다. “안내견 시험에 떨어진 친구(강아지)들은 일반 분양을 하는데, 훈련이 필수였죠. 그 친구들과 교감하며 배운 게 많았어요. 강아지가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어떻게 행동을 유도할지 연구했죠.” 2020년 푸바오가 태어나면서 그는 동물원 관리팀인 주토피아팀으로 발령이 났다.

“애완동물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나무를 뚝뚝 쳐서 부러뜨리기도 하고 종일 먹고 자는 데 신기하기도 했죠. 열심히 관찰하면서 공부했죠. 선배들(강철원·송영관)에게 딱 붙어서 괴롭혔어요.(웃음) 거의 4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요.” 판다월드 소속 사육사는 5명이다. 그중 자이언트판다 담당은 3명이다.

최근 동물원에도 동물복지 개념이 주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갇혀 지내는 동물들은 자기 삶에 대해 통제권이 없다. 이런 이유로 동물원 폐쇄를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조건이 갖춰진다면 동물원 동물도 충분히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그 중심에 사육사가 있다. 1960년대부터 정립되기 시작한 ‘동물의 5대 자유’ 기준이 있다. 동물원 동물도 행복감을 느끼려면 △영양가 있는 음식과 신선한 물 제공 △쾌적한 온도에서 쉴 만한 장소 제공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절한 보살핌과 치료 제공 △넓은 공간과 호기심 자극 가능한 환경 제공 △동물이 숨을 수 있는 공간 제공과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진 사육사 등 다섯 가지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번째 항목에 ‘사육사’가 등장한다.

오 사육사의 생각이 궁금했다. “동물원을 없애려면 동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동물 (거주) 공간을 다 빼앗아버렸죠. 동물이 살 공간이 없어요. 잘 만든 동물원이 대안이 될 수 있는데, 인증 제도를 운용하는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나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 같은 단체가 생긴 이유죠.”

대나무를 먹고 있는 푸바오. 박미향 기자

말을 마친 오 사육사가 푸바오 방사장으로 안내했다. 푸바오가 와이(Y) 자 모양의 나무 한 그루에 몸을 실은 채 자고 있었다. 관람객들의 탄성과 셔터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가장 편한 자세에요. ‘푸바오 나무’죠. ‘아이바오 나무’도 있어요. 뭐든 잘 먹는 아이바오를 가장 예뻐하지만, 이제 곧 푸바오가 떠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요.” 푸바오를 중국에 “잘 보내는 게 올해 계획”이라는 오 사육사는 핑 도는 눈물을 감추려 애썼다.

오승희 사육사. 박미향 기자

*참고문헌 ‘오해의 동물원’(곰출판),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책공장더불어)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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