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나문희 "임영웅은 아주 진국, 콘서트 갔다 홀딱 빠져들어" [인터뷰]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국민 배우 나문희(82)가 데뷔 64년 차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올해 관객들을 '소풍'으로 초대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활동까지 예고했다.
나문희는 지난 7일 새 영화 '소풍'(감독 김용균)으로 설 극장가에 출사표를 던졌다.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두 친구 은심(나문희), 금순(김영옥)이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와니와 준하' '분홍신' '불꽃처럼 나비처럼' 등의 김용균 감독이 연출했다.
극 중 나문희는 '삐심이' 은심 역할을 맡아 '투덜이' 금순 역의 김영옥과 명품 앙상블을 보여줬다. 가슴 따뜻한 워맨스 케미는 물론 연명치료와 존엄사 소재까지 깊이 있게 녹여낸 노년의 삶을 그리며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이야기이자, 지금 부모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큰 공감을 불러 모았다. 이에 '소풍'은 실 관람객 평점 9점대로 입소문을 타고 극장가에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나문희는 최근 아이즈(IZE)와의 인터뷰에서 "'소풍'은 철 안 든 사람은 꼭 봐야 한다. 모든 세대한테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 이 영화를 보면 인생이 얼마나 길고 힘든가, 그걸 느끼실 거 같다. 30대에겐 좀 이르겠지만 4050세대들이 '소풍'을 보면서 노년을 더 많이 준비하길 바란다"라며 이유 있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평소 자기관리에 힘쓰는 나문희 또한 '소풍'으로 새삼 느낀 바가 많은 모습이었다. 그는 "앞으로는 기계와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영화 때문에 처음으로 '인생 네 컷'을 찍어봤는데 수월치 않더라. 나라에서 하라는 거 부지런히 쫓아다니고, 무조건 집에서 나가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 많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다 미끄러지더라도 머리 다치면 그만이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나문희는 "사는 날까지는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비관적 생각 버리고 하늘에서 주신 삶, 정말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 한다. 지팡이를 짚고 일어날 수 있으면 다행이고, 혹여 지팡이를 못 짚더라도 햇빛을 찾아 그 자리에 앉아라도 있어야 한다. 함부로 죽음을 선택하진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이번 '소풍'은 뜨거운 의리를 발휘한 출연으로 연예계 대선배다운 훌륭한 품격을 엿보게 했다. 나문희는 "'소풍' 시나리오는 제 매니저 부인이 썼다. 제가 그 매니저한테 항상 내비게이션이라 하는데 상황 파악을 아주 잘한다. 어느 작품이 잘 될 거라는 것도 많이 생각하고. 그래서 이 사람이 정하는 건 제가 믿음으로 쭉 하고 있다. 그렇게 20년 넘게 날 도와줬으니, 나도 도와줘야지 싶어 일단 하겠다 했다"라고 출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이어 그는 "처음에는 (김)영옥 언니가 안 한다고 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조건이 덜 맞았나 보다(웃음). 그런데 내가 잘 기다렸다. 언니가 안 하면 나도 안 할 거라 했다. 그만큼 날 생각하는지 결국 하더라"라고 재치 있게 얘기했다.
나문희는 "이런 우정은 별거가 아니다. 친해도 조심해야 할 거 조심하고 경우를 지키면, 꼭 필요한 때 있어주고 우정이 유지가 된다"라며 김영옥과 돈독한 사이를 자랑했다.
'소풍' 속 꾸밈없이 가슴 절절한 명연기의 비결을 묻는 말엔 "우리 나이가 돼야 그 연기를 할 수 있다. 나도 내 나이가 돼서 한 거다. 사실 '소풍'에선 연기했다기보다 (의식하지 않아서) 카메라에 대드는 거 같았다. 나도, 김영옥, 박근형 우린 모두 클래식 배우라 자부한다. 연극도 했으니까. 박근형은 '고도를 기다리며'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 맨날 매진된다고 자랑하더라"라고 웃어 보였다.
이내 나문희는 "영옥 언니와 나는 상당히 배고픈 시절에 연기를 했다. 그때 이미 어느 정도 인생 공부 절실한 거는 배워서 절실한 면역력을 갖췄다. 16살 때는 너무 배고파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자꾸 연기를 하고 파고들다 보니 40대 즈음 '요술봉'이 나온 거 같다. 그 다음부터는 희화적인, 재밌는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난 항상 사실적인 게 중요하다 본다. 그래서 캐릭터의 옷을 입혀 이를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그 인물에 아주 제일 가까운 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장에 오래 가 있고 집에 와서도 그 생각만 한다. 대본 보면서도 그렇고 늘 몰입하려 한다"라고 배우로서 철학을 밝혔다.
명불허전 연기 장인답게 일상에서도 배움을 놓지 않는 나문희였다. 그는 "저는 우선 배우가 건강하고, 연기할 수 있으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회를 유지하려 집에서 매일 운동을 하는 거다. 대중탕에 가서 목욕도 하고, 일상에서의 저는 조그만 사람이다. 거기서 감정과 소통을 배운다. 연기할 때 되도록이면 보편적인 사람을 연기하려 한다. 보통의 엄마들, 할머니들. 그래서 제가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인간극장' '6시 내고향' '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이런 거다. 할머니들 생활이 어떻나 봐야, 그래야 나도 내복을 입고 출연하더라도 거기에 가깝게 내복을 입지. 이렇게 나 같지 않은 배우도 있겠지만 나는 주로 보통의 인물이 하려는 걸 한다"라고 대단한 열의를 전했다.
나문희는 "연기자는 적당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물론, 나한테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해선 솔직할 수 없겠지만 웬만하면 솔직하게 표현하려 한다. 저는 이 영화에서 과감히, 솔직하게, 용기 있게 표현했다 생각한다. '소풍'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다른 데 가 있지 않았다. 집에 수돗물이 고장 났는데, 그것마저 영화 개봉하면 고쳐야지 하고 내버려 뒀다. 영감님이 많이 아파서 가셨는데 마음도 거기에 분산되는 게 싫었다. 드디어 '소풍'이 개봉을 했으니, 이제 나는 내 거 하려고 한다"라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소풍' 촬영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나문희의 남편은 결국 작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이에 나문희는 "'소풍' 찍을 때 나는 저녁마다 '여보 사랑해' 하며 잠들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절실하진 않았다. 영화 찍고 와서 보니까 (남편의) 상황이 나빠졌더라. 그 다음엔 (남편이) 나한테 사랑할 시간을 줬다. 우리 영감님과 보낼 시간이 생긴 거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라는 가사의 '백만 송이 장미' 노래가 있지 않나. 정말 그 백만 송이 꽃은 아주 미워하는 마음 없이, 순수하게 사랑할 때 피는 거 같다. 그런 꽃을 나는 한 번 피워 봤던 거 같다"라고 고백해 뭉클함을 자극했다.
남편상 이후 국민 가수 임영웅의 노래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임영웅 자작곡 '모래 알갱이'는 '소풍' 배경음악으로 삽입되어 화제를 얻기도 했다.
나문희는 "임영웅이 우리 영화를 보고 OST 제안을 승낙했다고 하더라. (김)영옥 언니가 임영웅 '찐팬 1호'다. '저 언니 왜 이렇게 임영웅 좋아해', 그랬는데 같이 콘서트에 갔다가 내가 임영웅한테 홀딱 빠져들었다(웃음). 사람을 그렇게 녹여낼 수가 없다. 아주 진국이고 똑똑하고 배려 잘한다. 마치 나한테 노래해 주듯이 잘하더라"라고 팬심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나문희는 '소풍'과 같은 날 영화 '도그데이즈'로 컴백한 후배 윤여정에 대해서도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나는 윤여정 팬이다. '윤식당' 예능도 보고 '미나리'도 열심히 봤다. 그 사람의 장점이 많지 않나. 윤여정이라든지 우리가 활발히 해야 그만큼 (원로배우들이) 기운을 얻지 않겠나. 너무 욕심을 내면 젊은 배우들이 설자리가 없는지는 모르겠다만, 다들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라고 응원을 보냈다.
특히 나문희는 해외 활동을 깜짝 예고,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할리우드 도전 생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할리우드는 모르겠고 어떤 감독님이 외국에서 교포 작품을 하신다고 한다. 할머니가 필요하다 해서 너무 좋다고 그랬다. 이제 영감을 안 봐도 되니까, 집에 식구들이 없어서 날개 달고 그 자리에서 연기하다가 죽어도 되는 그런 팔자가 되었다. 예전에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때 미국에서 한참 촬영을 하며 현지의 제작 환경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우리와는 달라서 신기했다. 아직 구체적으로는 말씀을 못 드리는 게, 제작진이 지금 메주를 열심히 쑤는 중이다"라고 귀띔했다.
이러한 비결로는 "제게 '요술봉'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너무 감사하다. 우리 손주가 11살인데 친구들에게 사인 부탁받았다 해서, 얼마 전에도 12장 해줬다. 단 '소풍'을 다 보러 오라는 조건으로"라고 너스레를 떨며 유쾌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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