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더 힘들다구요?…‘외주’라도 해서 일과 육아 분리해야죠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4. 2. 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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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둘째 아이를 낳고 2020년 가을 회사에 복직하고 나서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아이가 2019년생이었기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을 휴직 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보통 취재 기자들은 회사에 있는 대신 각자 취재를 담당하는 출입처의 기자실로 출근을 하지만, 모든 출입처가 기자실 문을 닫았다. 회사에서도 가급적 출근을 자제하라는 공지가 왔다. 각기 다른 곳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이 주 1회 회사로 모여 부서 회의를 하는 문화도 사라졌다. 굳이 설명을 더 하지 않아도 많은 직장인들이 겪어본 시절일 것이다. 특히 사무실에 지정석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갈 곳이 사라져 버린’ 시간이었다. 거리두기가 강화되며 설상가상 커피숍에서도 앉아있을 수 없었다. 덕분에(?) 15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처음 재택근무를 접했다.

벌써 과거의 이야기가 됐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재택근무에 환호했다. 상사가 주변에 없으니 재택 근무하는 날이 마치 휴가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역으로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재택 근무를 시행한 회사들은 재택근무로 인한 직원들의 부재(사실 엄연히 근무 중이지만)를 꺼렸다.

당시 나는 과학분야를 취재하고 있었는데, 2020년 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미국 내 재택근무자들이 집에서 일을 하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보다 오히려 근무시간이 1.5시간 늘어난다는 내용의 연구 논문이 나왔다. 실제 미국 내 재택근무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였다. 이 논문의 내용을 기사로 쓰자 꽤 많은 댓글이 달렸다. 상당수가 “나는 놀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라는 식의 글이었다.

하지만 워킹맘으로 내가 경험해본 재택근무는 절대 노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무실에서와 다름없이 아침에 보고를 하고, 취재를 했으며 마감시간에 맞춰 기사를 썼다. 어찌 보면 언론사라는 직장의 특수성이 재택근무 연착륙에 도움이 됐을 수 있겠다. 애초에 사무실에 지정된 자리가 없으니 매일 회사로 출근하지 않았고, 절대적인 업무 시간보다는 기사라는 결과물로 평가를 받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매우 어렸기 때문에 재택근무가 큰 도움이 됐다. 그 전에는 아침 출근 시간에도 시터의 도움을 받았는데 출근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드니 직접 아이들을 등원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와 육아를 동시간에 병행한 것은 아니다. 사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더라도 시터나 육아를 도와주는 분이 상주하는 게 아닌 이상 보육과 업무를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경우 업무 시작 전 긴급 보육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등원시켰고, 하원 후에는 시터 선생님이 오셔서 퇴근 시간까지 아이들과 함께 계셨다. 어린이집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을 경우 오전부터 부모님이나 시터 선생님의 육아 도움을 받아 업무를 했고 아이들의 육아는 업무가 종료된 후에 넘겨받았다. 하루 8시간이라는 업무 시간을 철저히 확보했음에도, 재택근무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에 개인적인 만족도는 무척 높았다.

과거 내가 찾았던 서던 캘리포니아대 논문에서는 특히 재택근무 여성의 우울증 발생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당시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에서 근무와 돌봄을 동시에 해야 하는 부모들이 상당히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며 “특히 업무와 보육, 회의 등으로 인해 일부 근로자는 밤잠을 희생해가며 근무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더욱 저하됐다”고 설명했다. 계속되는 일·육아·집안일 중복은 감정적인 피로를 유발한다는 게 그들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제대로 한다면 감정적인 피로도, 업무 효율 저하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일과 보육을 철저히 분리하고 가사 업무 등 회사 업무와 동시간에 병행하기 어려운 부분을 지혜롭게 ‘외주화’ 한다면 말이다.

‘제대로 된 재택근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회사가 있다.‘국민 아기띠’라 불리는 코니 아기띠를 만든 코니 바이에린이다. 많은 이들이 ‘재택근무=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인 2017년 회사를 설립해 이후 7년간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했다. 현재도 전 직원 57명이 4개국 24개 도시에서 재택근무 중이다. 지난해 말 사옥을 만들었지만 회의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출근하도록 되어있다. 창업자인 임이랑 대표가 워킹맘이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임이랑 대표에게 전 직원 재택근무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등하교길 10분 자녀와 함께 하는 것은 엄마의 특권이자 행복인데, 우리 회사가 그 행복을 뺏고 싶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철저히 업무 시간을 확보해야한다는 ‘원칙’때문이다. 코니 바이에린은 자녀의 등하원·등하교 시간을 배려해 근무시간 중 최대 1시간을 돌봄에 사용하고 이후 근무시간을 충당해 업무 집중 및 돌봄을 병행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임 대표는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반드시 참석해야 할 회의가 있으면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그 때 아이가 집에 있다면 TV를 틀어주던지, 돌봄앱을 이용해 시터와 선생님을 부르던지, 무조건 업무에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지원자 중에서 때로 재택근무에 대한 개념을 오해하거나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고도 했다. 이 경우 면접이나 채용 과정에서 대부분 걸러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3차에 걸친 채용 인터뷰와 과제를 완수해야하고, 들어와서도 3개월간 업무 평가를 받고 나서야 최종 채용이 확정된다. 그야말로 ‘감시의 눈’이 없어도 알아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셈이다.

그와 대화를 하면서 어쩌면 많은 워킹맘들이 이를 원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업무의 결과 측면에서 동일하고 공정하게 평가를 받는 것 말이다.

일하는 엄마로써, 일하는 엄마들이 다니는 회사를 만든 대표로써 임 대표가 남긴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너무 많은 공감이 되어서다.

“아기를 키우면서 필요한 건 대단한 게 아니예요. 내가 정말 곁에 있어줘야 할 때, 그 필수적인 것을 못할 때 자괴감이 드는거죠. 내가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를 보내는데 아이와 함께 5분, 10분도 걸어갈 시간이 안 나는 것, 그 부분은 기본적인 삶의 영역에서 나 조차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예요. 역으로 그건 내가 대표로써 지켜줄 수 있는 부분이죠. 다만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나 학원에 내가 직접 라이드를 해주고 싶어’, 이건 욕심인거예요. 엄마도 필요와 사치의 사이에서 적정선을 찾아내야해요. 이렇게 현명하게 스스로의 삶을 경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연장선 상에서 높은 업무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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